이 영화에 숨겨진 더러운 정치색을 고발하는 내용의 통렬한 영화평입니다.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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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反美영화- '님은 먼 곳에'
이준익 감독, 그는 '왕의 남자' 와 '라디오 스타'를 통해 독특한 연출력을 과시하면서 단번에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영화감독이다. 그의 영화에 매료된 많은 영화팬들이 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님은 먼 곳에'를 고대하였다. 나 역시 그 중의 한사람으로서 어제(23일), 개봉 첫날 '님은 먼 곳에'를 보았다. 재능있는 감독이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단돈 칠천원에 편안히 앉아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 일인가.
평일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만원이었다. 영화는 스피디한 장면전환을 관객의 이해에 맡긴 채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여주인공 수애(순이)의 도시적 청순함이 일부종사하는 사대부 집안의 며느리 역으로는 맞지 않았지만 그 어색함도 격변하는 스토리에 쉽게 파묻힌다. 이준익 감독의 페르소나 정진영의 연기는 일품이었고, 순이의 남편(박상길) 역을 맡은 엄태웅도 손색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시어머니의 의지인지 자신의 의지인지 애매모호하지만 남편을 꼭 만나야겠다는, 그래서 무조건 월남에 가야겠다는 순이의 강인한 열망은 마침내 엉성한 위문공연단을 급조해 내고, 베트남 파병이 한창이던 70년대식 이별의식과 더불어 거대한 군수송 선박에 몸을 싣는다. 경쾌한 군가를 배경으로 영화는 본무대인 월남에 안착한다. 화염과 총성이 가득한 전쟁터와는 달리 사이공은 술과 여자로 흐느적거린다.
베트남 파병 위문공연단이란 게 실은 얼마나 부실하고 우스꽝스런 것이었는지를 영화는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전쟁통에 한몫 잡으려는 치열한 욕망과는 달리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위문공연단 단장 정만(정진영)의 교활한 생존본능 때문에 순이를 포함한 단원 전체가 고생길에 접어든다. 마침내 순이가 고이 간직하던 패물로 트럭을 구입한 뒤, 공연단의 활로가 열린다. 한국군 중대공연, 연대공연으로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순이의 마음은 오로지 남편 상길이 있는 '호이완'으로 가기 위한 열망 하나로 똘똘 뭉쳐있다. 남편이 먼저인 순이와 돈이 먼저인 정만의 갈등이 폭발하면서 위문공연단이 와해되려는 순간, 난데없이 단원 전체가 월맹군(베트콩)의 포로가 된다. 여기서부터 이준익 감독의 치밀하게 준비된 反美 시나리오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이준익 감독에 대한 나의 기대감도 배신감으로 바뀌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나에게 기대감을 안겨주었던 봉준호 감독이 '괴물'이란 反美영화로 실망을 안겨주었던 것과 같다. 월맹군의 포로가 된 단원 일행은 카타콤과 흡사한 열악한 환경의 굴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지만 월맹군의 따뜻한 인간미에 동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장의 굴속에서도 어린아이들을 모아 놓고 야학(夜學)을 하는 광경, 월맹군 대장이 어린아이를 가슴에 안고 순이의 노래를 즐겁게 듣는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이준익 감독이 월맹군(베트콩)의 인간미를 부각시킨 것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베트콩은 사람이 아닌가? 그들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다. 문제는 월맹군에 비하여 미군을 상대적으로 악마시한 이준익의 의도적인 편협성이다. 미군이 월맹군의 카타콤을 덮쳐서 순이 일행을 포함하여 살아남은 월맹군 모두가 미군의 포로가 되었는데, 부대를 지휘한 미군 중령이 약식 재판도 없이 포로들을 권총으로 즉결처분한다.
순이 일행은 간신히 신원확인을 거쳐 죽임을 면하는데, 정만의 애절한 간청이 받아들여져서 순이 일행은 미군들을 상대로 위문공연을 벌이게 된다. 순이가 미군복 상의에 핫팬티를 입고 환호하는 미군들 앞에서 '수지 큐'를 부르는 장면은 압권이다. 흥분한 미군들은 순이의 앞가슴에 달러를 쑤셔박고 앞자리에 앉은 미군 중령은 욕정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순이를 쏘아본다. 마치 미국의 거대한 자본력과 정복력을 상징하듯이.
하루 밤 공연에 순이 일행은 거액(?)의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순이는 남편 상길을 만나기 위하여 미군 중령에게 몸을 상납하고, 미군 중령의 명령에 의하여 실종된 상길에 대한 수색이 시작된다. 순이의 성상납에 분노한 단원 용득이 미군들에게 받은 달러를 전부 불에 태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에 분노한 촛불시위대가 떠올랐다. 양쪽이 전부 미국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을 표출하고 있었다.
영화는 마침내 순이와 상길의 극적인 만남으로 막을 내린다. 특히 순이가 애증이 교차된 눈빛으로 상길의 뺨을 몇 차례 후려치고, 상길이 통곡을 하며 순이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은 보는 이에게 만감을 교차케 한다.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기억될만 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특히 월남전 이후 세대- 포악한 미국이 오손도손 잘 사는 월남에 쓸데없는 분쟁을 일으켜 제국주의적 욕망을 배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판단할 때 '님은 먼 곳에'는 감독의 악의를 관객에게 강요한 나쁜 영화의 전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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