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어버린 시도... ★★★
이 영화는 네 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챕터 'Happiness'. 성실하게만 살아왔던 펀드매니저 포레스트 휘태커는 조직 승마에 돈을 걸었다가 갱두목 핑거스(앤디 가르시아)에게 빚을 지고 은행을 털기로 계획한다. 은행을 털고 도망치다가 누군가의 차에 부딪친 후 경찰에 쫓긴다. 두 번째 챕터 'Pleasure'. 핑거스의 부하 브랜든 프레이저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에 고통 받지만, 자신이 본 미래가 어긋나자 묘한 기쁨을 느낀다. 세 번째 챕터, 'Sorrow'. 핑거스에게 학대당하는 젊은 팝스타 미셀 겔러. 브랜든 프레이저는 그녀의 사진을 보고도 미래를 알지 못한다. 묘한 이끌림에 그녀를 숨겨주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네 번째 챕터, 'Love'. 의사 케빈 베이컨은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친구의 아내인 줄리 델피를 살리기 위해 희귀 혈액 소유자인 미셀 겔러를 찾아 나선다.
<내가 숨쉬는 공기>는 우리에겐 배우 김민의 남편인 한국계 이지호 감독의 첫 연출작이란 점에서 큰 화제가 됐었다. 너무 과도하다 싶은 관심은 애국적 심리에 근거한 것으로도 보이지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과연 어느 정도의 시나리오이기에 이렇게나 많은 헐리웃의 잘 나가는 배우들이 집단으로 출연하게 되었을까. 헐리웃 배우들은 배우로서의 이미지 구축과 확립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 내에서는 광고 출연조차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광고에 나오면 돈을 밝히는 배우라는 이미지가 생길까봐 꺼리는 것이고, 대신 그들은 한국이나 일본에 와서 광고를 찍는다. 단 조건이 붙는다. 미국 내에서 상영하지 말 것. 그러다보니 그들의 출연료는 의외로 저렴한 편이어서 한국의 특급 배우보다 낮은 경우도 다반사다. 배우로서 그들의 또 다른 전략은 거액의 출연료를 받을 수 있는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한 다음엔 대체로 낮은 출연료 또는 출연료를 받지 않고 독립 영화, 예술 영화 내지는 작가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모든 배우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많은 헐리웃의 잘 나가는 배우들이 이지호 감독의 <내가 숨쉬는 공기>에 출연한 건 무엇보다 배우로서의 캐리어 구축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여겨지는 건 일단 이야기 구성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서양 배우들이 출연하는 동양적 인연을 주제로 한 영화. 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특히 현대는 동서양, 장르의 뒤섞임. 즉, 크로스 오버의 시대가 아니던가. 잘만 나온다면 제2의 <크래쉬>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11시 14분>이라는 끔찍한 괴물이 나올지도 모른지만 말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분명히 <크래쉬> 또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21그램>, <바벨>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다. 즉, 이 말이 의미하는 건 <내가 숨쉬는 공기>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 이미 몇 차례 시도된 바 있는 구성이라는 점이고, 기존의 영화를 뛰어 넘지 못한다면 인정받기 힘들다는 기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의 영화들이 단지 시도에서 끝난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결과물을 선보여 왔다는 것이다.
<내가 숨쉬는 공기>의 각 챕터 주인공들은 마치 옷깃을 스치는 듯한 인연으로 다른 챕터의 주인공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인연을 형성하는 듯 보이지만, 어떤 인연은 좀 과하고, 어떤 인연은 사소하거나 억지스럽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연결해보면 고작 6단계 안에 포함된다고 하는 작은 세상 이론도 있고(Six-Degrees), 내가 숨 쉬는 공기가 같이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숨 쉬는 그 공기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연의 중요성이 과장될 때, 자칫 그 인연은 스토커로 돌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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