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인식이란 것이 이래서 중요하다. 예지원은 예전에 <뽕>이라는 영화에 출연을 했다. 물론 나도 그 때 안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그런지 드라마건 영화건 예지원이 출연한 영화는 보지 않았다. <귀여워>때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랬고, <생활의발견>에서의 예고편이 좀 그랬고, <올드미스><대한민국헌법제1조>도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분위기였다. 3류 배우라는 것이 아니고, 코미디를 찍어도 나와 맞지 않는 그런 부류의 여배우였다. 게다가 다른 배우처럼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할 영화도 없었지만)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모를 뽐내는 배우도 아니다. 그래서 예지원이 나온다고 해서 극장가서 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물론 <죽어도 해피엔딩>도 우연찮은 기회로 봤다. 무대인사를 왔는데도 "임원희" "정경호" 때문에 기대를 좀 했지, 예지원은 뒷전이었다. 그 생각이 <죽어도 해피엔딩>으로 확 바뀌었다.
예지원이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다고는 함부로 말 못하겠다. 그러나 그가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너무 잘 맞는 듯 하다. 예지원 집에서 4명의 남자가 모여, 프로포즈 하려고 할 때 그 남자의 가슴을 안달나게 하고, 살랑살랑 꼬리치는 장면들에서 그녀의 연기의 진가가 빛난다. 그러나 그 장면 이후 사건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그녀에게 보였던 그런 매력은 없어지고, 매니저한테만 큰 소리치는 공주병 배우로 나온다. 결단력이나 추진력, 카리스마 등이 없는 살인사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여자의 입장을 봐서 그런지 다소 맥이 빠지긴 하다. 그러나 황당한 에피소드를 나름대로 맞추려는 감독의 노력이 보였고, 그 상황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웃음을 보여준 다른 배우들에서 만족을 많이 얻었다. 4명의 한 집에서 죽는황당사건뿐만 아니라 그 집을 털려고 했던 도둑과 밖에서 그 도둑놈을 기다리는 형사와, 형님과 같이 왔던 조폭 똘마니들까지 합세하여 웃음을 증폭시킨다. 이미 예상했겠지만, 따뜻한 드라마와 감동 이런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냥 신나게 웃는 것도 더운 기운을 날려버리기엔 충분하다.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를 리메이크한 코믹 스릴러 <죽어도 해피엔딩>. 역시나 그 웃음의 과장은 우리나라 영화가 더 심하다. 프랑스 영화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우리 식으로 잘 풀어서 영화에 옮겨 놓은 강경훈 감독의 첫번째 장편 데뷔작은 성공이라고 해도 되겠다. 사람이 4명이 죽는만큼 죽는 상황도 4가지 에피소드가 순서대로 전개되고, 그 사이에서 시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여배우와 매니저는 정신이 없다. 침착하게 시체를 숨기려고 하지만, 그 때마다 집에 쳐들어온 남자들이 도와주질 않는다. 횡설수설 종횡무진 하는 에피소드가 쭉 진행되는데에 긴장감을 주는 것은 순간 순간 들이닥치는 형사때문이다. 다음날 파리에 상 받으러 가야 해서 물론 다른 사람한테도 들키지 말아야 겠지만, 형사는 특히 경계대상이다. (자기 잘못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서 긴장감을 놓지 않고, 불쑥 형사를 등장시키고, 마지막은 아예 단체로 쳐들어와서 "으악! 들키는 거 아냐?" 했지만, 해피엔딩으로 가기 위해 앞에서 예상한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처음 사건이 터지고 나서부터는 그냥 끝까지 한결같이 웃으면서 영화의 흐름에 맡기기만 하면 된다. 조금의 긴장감 뿐이지, 무서운 장면이나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봐서 이해를 해야 하는 그런 어려운 장면들도 없다. 사건 팡팡 터지는 걸 웃고 즐기면 끝이다. 이런 만찬을 쭉 즐기다 보면 마지막 똘마니들의 크리스마스 노래가 나오는데, 이건 가장 맛있는 디저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상한 여배우의 사생활" 메인카피와 많은 홍보로 인해 이 영화는 엽기적인 영화라는 것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엽기적인 영화에 당연히 화장실유머가 빠지면 곤란하다. 외국영화중에서 화장실 유머가 많이 먹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영화는 어느 정도 먹힌다. 이 영화도 화장실 유머 코드가 있다. 대소변이나 토하는 장면들이 많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지저분하고 더럽게 보여 흔히 싸구려 3류 코미디로 오해할 수 있다. <죽어도 해피엔딩>에서의 "정경호"는 이런 장면으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대변으로 막힌 변기에 얼굴을 처박는 연기로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것이다. 게다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마지막에 감전사로 죽는 것으로 끝까지 웃음을 주었다. 물론 화장실유머는 여기까지다. 다양한 해프닝이 나오지만, 역시 가장 큰 웃음을 준 것은 이 화장실 에피소드였다. "정경호"의 리얼한 연기와 예지원의 호흡이 절묘하게 들어맞아 실신하는 이 장면에서 배꼽잡았지만, 그 변기에서 올라오는 실제같은 묘사에 헛구역질이 날 수도 있다. 대변까지 등장해 "수위 조절"에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과감함을 보임으로 영화를 본 사람이 크게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강경훈" 감독이 첫번째 작품이라 "수위조절"에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비위가 약한 사람은 식후 2시간 이후에 보라고 권장까지 하니 그 점을 참고하고 영화관에 들어갈 때 팝콘을 초반에 다 먹거나 사 갖고 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대부분의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내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영화는 이 힘든 세상에서 영화라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를 많이 찾는다. 물론 다른 나라 영화도 마지막에 슬프거나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 않으면 본 사람도 영 찜찜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죽어도 해피엔딩> 또한 제목 그대로다. 무려 4명의 사람이 죽지만, 이 영화는 깔끔한 해피엔딩으로 막이 올라가며 주인공의 행복한 결말까지 암시한다. 영화는 그 결말까지 가는 과정의 험난함을 웃음과 함께 보여주어서 가슴 졸였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하는데, 마지막에도 기분 좋게 영화관에 나올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에피소드가 하나씩 떨어져 있어 연결이 안 되면 영화가 집중이 안 되겠지만, 이 영화는 우려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제목으로 이미 결말은 알고 가기 때문에 그 과정의 독특함과 재미가 없으면 이런 영화는 더 비호감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바탕 웃음으로 우리를 이끌고, 우리는 거기서 웃다가 시간이 다 되면 홀가분하게 나오면 되는 그런 유쾌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