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겨우 27년 전, 한반도의 남쪽은 둔탁한 곤봉으로, 대검으로, 귀청을 때리는 총소리로 시민들이 쓰러지며 피에 물들었다. 그것도 자신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자국 군대에게..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2·12로 군 권력을 장악한 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통해 사실상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이후의 과정은 형식상의 요식행위였을 뿐. 5·17을 맞아 군이 일제히 주요 도시와 대학에 주둔했으며, 대학에 남아 있던 학생들은 개처럼 맞으며 끌려 갔다. 모두가 숨죽이며 두려워하던 그 때, 광주 전남대 앞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폐쇄된 교문을 향해 계염군 철수를 외치기 시작했고, 얼마 후 소총을 등에 메고 곤봉을 손에 든 공수부대원들은 학생들 사이로 진격해 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우발적인 듯 싶었던 첫 충돌은 그후 10일 동안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 넣은 광주민중항쟁의 시발점이었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비극의 역사를 영화화한다는 건 꽤나 힘든 모험임에 분명하다. <다이하드 4.0>의 매클레인 말처럼,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인데, 아무도 하지 않는 일.. 그 일 중의 하나가 아마도 광주민중항쟁의 영화 작업일 것이다. 자칫 비극의 역사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거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특히 광주 시민들이나 유관 단체로부터 비난 받을 우려가 있고, 반대로는 좌익 영화라는 식의 정치적 공격에 직면할 위험도 있다. 물론 후자의 공격이야 일부 수구 세력을 제외하고 노골적으로 제기하기 힘든 주장이지만 말이다. 물론 이 영화가 처음 광주를 다룬 영화는 아니지만 광주항쟁 그 자체를 다룬 영화로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너무 늦게 나온 충실한 재현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공수부대의 작전명을 일컫는 영화 <화려한 휴가>는 전남 인근 담양으로 보이는 한적한 가로수 길을 포니 택시가 달리면서 시작한다. 마치 세상 아무런 걱정 하나 없다는 듯 민우의 표정을 보면, 천국이 따로 있을 것 같지 않다. 이 장면 바로 뒤를 이어 공수부대원들의 이동이 보여지면서 새삼 '아 드디어 시작이구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본격화될 비극을 더욱 비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치로 공수부대가 진주하기 이전의 광주를 너무나 평온하고 행복만이 그득한 이상적 모형으로 그리고 있다. 당시의 시국 상황을 돌이켜보면, 의아할 정도로 비정치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왜 이래야만 했을까? 아마도 영화의 의도는 마지막 부분 '우린 폭도가 아니다'라는 민우의 외침에서 보듯 아무런 죄도 없는 광주시민들이 공수부대원들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식의 묘사가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살리는 길일까? 아니면 오히려 훼손하는 길일까? 난 살리는 길은 아니지만 자칫 훼손할 우려가 있는 묘사라고 생각한다. 다른 식으로 보자면 광주민중항쟁에 정치적 성격을 배제하는 것은 전혀 정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야 그 정당성이 부각될 수 있다. 난 이렇게 본다.
기본 전제부터 내가 생각했던 바와 영화의 의도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영화를 기대했던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 비로서 내가 기대했던 건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랜드 앤 프리덤>에서의 민중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제를 제시하고 토론에 참여한다. 소농민의 토지 소유를 인정할 것인지, 모든 토지를 국유화할 것인지를 두고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파시스트를 앞에 두고 내분에 휩싸인 좌파를 꾸짖는다. 이에 비해 <화려한 휴가>의 민중들은 싸우면서도 자신들에게 의도적으로 자꾸 정치색을 배제시키려 한다. 이 두 영화의 민중은 왜 이토록 대비되는 것일까? 그건 김지훈 감독의 두려움이다. 정치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곧 의도가 순수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흔히 그렇듯 정치라는 용어에 대한 환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 정치적으로 비춰짐으로서 또 다른 정치적 논쟁을 불러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100억이나 든 제작비 회수의 가능 여부에 대한 두려움도 한 몫했으리라.
그러다보니 우리의 광주 민중들은 거의 유일하게 지식인으로 나오는 김신부(송재호)나 예비역 대령인 박흥수(안성기)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비주체적 존재들로 그려진다. 아니 그렇게 오해된다. 유일하게 토론이 가능했던 미국의 항공모함 부산 주둔과 관련해 거기 모여 있는 시민군들은 김신부의 긍정적 해석에 '와'하며 좋아하다가 박흥수의 부정적 해석에 금방 우울해진다. 내가 켄 로치 영화를 떠올렸던 건 바로 그 지점에서 였다. 아마 켄 로치였다면 미국이 광주민중항쟁에 미친 영향과 역할에 대해 진지한 토론의 장을 벌였으리라.
전남대 앞에서 첫 충돌 이후 전남대 학생들은 도심 중심으로 도망치며 간헐적 시위를 벌였고, 공수부대는 따라가며 초죽음을 만들어 놓는다. 바로 잔혹한 진압의 모습이 시민들 눈에 보이면서 광주 민심이 흉악해졌음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다른 도시도 사정은 비슷했는데, 왜 광주에서만 유독 전 시민의 참여 속에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었을까?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우선 광주는 금남로가 거의 유일 중심지 역할을 하는 작은 규모라는 점이 우선 거론된다. 광주시민들은 너나 없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또는 볼일을 보기 위해 금남로로 모여든다. 그러다보니 다른 대도시와는 달리 눈으로 확인되고 귀로 전해 들은 얘기는 순식간에 광주 전역을 넘어 전남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당시 광주의 독특한 성격을 들 수 있다. 현재까지도 광주는 생산도시보다는 소비도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광주는 전남에서 생산된 물건이 주로 소비되는 도시였으며, 겅제적으로 낙후되어 있고,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도시였다. 그러다보니 광주 전남은 마치 전체가 하나의 친족사회같은 분위기가 지배적인 도시였다.
영화에서는 자신의 피붙이에 대한 죽음이 광주시민들을 촉발시키고 시위에 참여시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실제 광주시민에겐 두들겨 맞는 대학생이 알고보면 옆집 대학생이거나 알고 지내는 사람의 동생이거나 하는 식의 작은 사회를 구현하고 있었다. 가족이 죽어가는 데 앉아 있을 수 만은 없다. 바로 이런 점이 공수부대의 가혹한 진압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들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된 것이다. 반대로 보면, 한국 군대가 베트남에서 철군한 게 74년이고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의 지휘관들이 주로 베트남 전쟁을 경험하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보면 베트남에서의 경험이 광주에서 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에서의 경험이란 무엇일까? 그건 베트콩으로 의심되는 마을이 있으면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일단 조져라???
영화는 도청 앞 상황을 중심으로만 전개되다 보니,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좀 생뚱맞게 느낄 지점이 있다. 학생들이 시위하다가 맞았다. 시민들이 분개했다. 그런데 도청 앞에 가득한 시민의 모습. 좀 널뛴 듯한 모습이다. 이 때문에 광주를 잘 모르는 어린 학생들로부터 내용 파악이 힘들다는 푸념을 듣기도 했다. 게다가 영화 처음에 검은 화면에 하얀색 글씨로 당시 사회적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 놓았는데, 그 시간도 매우 짧아 꼼꼼히 읽기엔 부족했다. 세삼한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었을 듯. 어쨌거나 도청 앞을 중심으로 하다 보니 영화는 광주민중항쟁의 결정적 분수령을 이룬 차량시위라든가, 방송국 방화 등이 빠져 있어 좀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 배역의 캐릭터를 보면,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훨씬 감동적이긴 했지만, 일하는 형, 형의 기대를 받고 있는 동생, 형이 사랑하는 여인 등 인물 구도가 너무 전형적이라는 생각이다. 꼭 이런 식으로 전형적인 캐릭터로만 가능했을까 싶은 아쉬움. 거기에 이 인물들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들을 하다 보니(굳이 예비군 무기고 부수는 일을 민우가 해야만 했을까) 굉장히 작아진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배우들의 연기에도 딱히 점수를 많이 주긴 힘들어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면 무난했지만, 가끔씩은 좀 오버한다 싶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연극한다는 느낌?? 그래도 동생이 쓰러져 있을 때 달려나간 김상경의 그 넋을 잃은 표정 하나는 일품이었다. 당연하게도 공수부대가 최후의 공격을 하는 27일 새벽에 울려퍼진 이요원의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애끓는 연설도.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5월 21일 국기 하강식에 맞춰 실시된 공수부대의 발포장면이었다. 이상하게도 발포 당시를 기록한 사진이나 영상 자료가 전무한 상태에서 누구 말마따나 이후 광주를 다루는 영상물에서 두루 활용될만할 정도의 가치를 보인 이 장면은 특히 배경으로 깔린 애국가로 인해 더욱 잔인한 느낌이었는데, 애국가 소리가 잡음이 섞인 실제 도청에서 들리는 듯한 소리였다면 더 충격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에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가사에 맞춰 사람을 죽이다니.....
영화를 보고 나서 여기저기 살펴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코믹스러움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누구는 좋다고도 하지만 특히 광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들 중심으로는 과다한 코믹 요소가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불만인 듯 싶다. 약간 오버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다른 부분은 잘 모르겠고 집단 발포 직전의 노래와 장난기 다분한 질펀한 농담은 특히 그 직후의 학살 장면과 대비되어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기억은 어렴풋한데, 당시 현장 분위기는 실제로 그랬다고 한다. '잘 가세요'라는 노래를 불러대고, 농담을 하고. 왜냐하면 시민들은 지금까지의 가혹한 진압이 일부 우발적 실수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믿었고, 곧 공수부대가 물러나면 모든 게 정상화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마 우리 군대, 국군이 자신들에게 총을 쏘리라고 그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하여튼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너무 늦게 나온 것을 탓할지언정 꼭 나와야 될 영화였다고 본다. 많은 예산을 투입한 충실한 재현의 힘은 일부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광주를 잘 모르거나 잘 알거나 상관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되돌아봄의 게기를 던져 주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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