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고생하는 아날로그 영웅의 귀환!!!!
NYPD 존 매클레인이 돌아왔다. 그것도 52살이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강력함을 앞세워서. 사실 12년 만에 이 시리즈의 4탄이 나온다는 기사를 처음 봤을 땐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게 다가왔다. 그래도 <록키 발보아> 때문에 우려의 강도가 낮아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존 매클레인은 80년대를 상징하는 액션 영웅 중 한 명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브루스 윌리스의 분신과도 같은 존 매클레인은 다른 액션 영웅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독특함이 있다.
우선 그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라거나 대단한 신념의 소유자가 아니다. 특수한 부서에 근무하는 것도 아니고, 특수임무를 부여 받은 적도 없다. 포와로 형사가 있는 곳에선 무조건 살인사건이 발생하듯이 재수 없게 가는 곳마다 테러리스트들과 꼬일 뿐이다. 그런데 왜 그 죽을 고생을 하며 싸우는 것인지? -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인데, 아무도 하지 않아서'라는 게 그의 대답이다. 그리고 존 매클레인은 돌아갈 줄을 모른다. 그냥 우직하게 정면 돌파만 고집한다. 그래서 천상 아날로그의 전형으로 비치는 것일까? 나쁜 놈 한 명을 처치한 후 무전기를 통해 실실 약올리는 건 그의 전매특허가 된지 오래다. 또 그에겐 인간다움이 있다. 얻어 터지고, 넘어지고,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시니컬하게 상대를 비웃어주는 여유가 있다. 아마도 그래서 유독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것 아닐까 싶다.
<다이하드 4>가 아니라 <다이하드 4.0>으로 돌아 온 이번 영화에서 존 매클레인은 딸을 만나기 위해 뉴저지에 들렀다가 블랙 리스트에 오른 해커 매트 패럴(저스틴 롱)을 FBI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고 매트의 집에 갔다가 중무장한 프로 암살자들의 공격을 받는다.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워싱턴에 도착하지만 디지털 테러로 교통과 통신은 마비되고 주요 기관은 사태 파악 조차 하지 못한 채 아우성이다. 또 다시 테러 집단과 부딪치게 된 존 매클레인은 매트를 데리고 다니며 네번째로 죽을 고생을 한다.
우선 이 영화의 재미를 꼽자면 액션 영화인만큼 당연하게도 액션을 빼고 얘기할 수 없다. 총알이 떨어졌다며 차로 헬기를 박살내기도 하고, 여성 테러리스트에게 호되게 당한 후에 자동차를 몰고 그대로 돌진해서 엘리베이터를 박살내며, 앞을 가로막는 전투기 위로 뛰어 올랐다가 그대로 미끄러져 뛰어 내리는 등 1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의 단순무식함은 여전하다. 나이가 들면 좀 얌전해질만도 하건만.. -,-;; 더군다나 그런 액션 장면이 CG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실제 자동차와 헬기를 충돌시켰다고 하니 제작진의 무식함도 막상막하인듯.(대체 제작비가 얼마냐...) 그래서 생생한 질감의 화면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긴 했지만. 물론 단순무식한 액션만 있는 건 아니다. 소방 파이프를 터트려 그 물줄기로 헬기의 저격수를 떨어트리는 식의 재밌는 아이디어도 만끾할 수 있다.
액션이 이 영화의 하드함이라면 아날로그를 대표하는 존 매클레인과 디지털을 대표하는 매트 패럴과의 조화는 이 영화의 소프트함이자 숨통을 튀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를 마이클 잭슨이 흑인이었던 시절로 멋지게 풍자하는 매트 패럴은 아마 다른 영화라면 흑인이 주로 맡았을 듯한 배역인데, 시종일관 존 매클레인의 아날로그적 사건 해결 방법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세상에'를 연발한다. "대체 어떻게 한 거죠?" 반면 존 매클레인도 매트를 보며 놀라기는 매 한가지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그렇다고 영화는 아날로그적 방식이 좋다든가 디지털 방식이 좋다든가 라는 식의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디지털 테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날로그 육체와 디지털 두뇌가 합체되어야 가능함을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1편부터 쭉 이어져 오는 존 매클레인의 말빨도 줄긴했지만 여전하다. "봤어요? 자동차로 헬기를 박살냈잖아요." "총알이 떨어져서"... 여기에 덧붙여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의 역대 대통령 연설로 짜집기한 정부에 대한 선전포고, 그 중에서도 부시 대통령의 '승리할 것이다'란 연설을 테러단체가 인용한 건 정치적 메시지로도 읽힐 수 있을 만큼 꽤나 위트있는 장면이었다.
반면, 초반 강력하게 보였던 테러범들의 마지막은 예상 외로 무력하게 막을 내려 기존 시리즈의 악당이나 존 매클레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약해보였는데, 이것은 어쩌면 현실의 반영이란 생각도 든다. 키보드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키보드로 세상과 만나는 디지털형 인간이 실제로도 우락부락하고 근육질이며, 싸움도 잘한다면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꼭 악당들은 동료들을 죽일 때는 말 한마디 없이 신속 정확하게 해치우다가 존 매클레인만 만나면 이것저것 물어보며 말이 많아지고 그러다 되려 당하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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