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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다. 음란서생
jack9176 2007-06-21 오전 3:18:56 1302   [2]
 파퓰리즘에 대한 우화/음란서생


한석규가 나온다기에 무조건 보아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극장에 갔다.

그건 내가 한석규를 열렬히 사모하는 팬이어서가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런대로 괜찮은 배우 하나가 흥행의 검증을 받지 못하여 배우생활의 내리막을 걷는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의 한석규가 출연했던 일련의 영화들이 계속해서 흥행을 못하고 막을 내리니 그의 그 편안한 웃음과 부드러운 목소리가 왠지 애처롭기도 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겠다.

결과는 대만족!

한석규가 아니면 아무도 이만큼은 못 했겠다는 최선의 성실한 연기가 나왔고 화면은 뽀사시하니 때깔이 고왔고 적절한 유머와 시의적절한 문제의식 또한 나무랄 데가 없었다.

이만하면 대박이 날 수도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어서 극장을 나왔으나 결과는 대박까지는 아닌 모양이다.

나는 정말 재미있게 보고 많이 웃었는데 극장을 나서면서 대략적인 관객의 반응을 살펴보니 일군의 남자들이 제목과 다르게 하나도 안 음란하다고, 김민정이 관객의 기대에 부응할 정도로 충분히 벗어주지 않았다고 배신감에 화를 내며 마구 욕을 해대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음란이 목적이라면 집에서 포르노 동영상 한편 다운받아 보면 될 것을 대명천지에 왜 극장에 와서 음란을 찾는지...

이모저모 다 종합해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우선 내용과 걸맞지 않게 너무 제목이 세게 나갔다는 거다.

사실 음란함에 대해 한번 사유해 보자는 영화는 아니지 않은가?

제목 때문에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했든, 아니면 그나마 제목 때문에 이 정도라도 관객이 들었든 내가 재미있게 봤으니 일단은 그걸로 자족이다.


약간이라도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 인간이라면  그 재능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찾는 것처럼 당연한 욕구일 것이다.

음란서생은 많든 적든 재능을 가진 인간이 그 재능을 발현해 내면서 타인으로 부터 인정받고자하는 공명심의 허와 실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에서 윤서가 가진 재능은 바로 글쓰기이다.

당대의 알아주는 문장가이나 남성적 패기는 부족하기 이를 데가 없이 그저 온건하고 유순하기만한 소극적 자유주의자 윤서가 우연찮게 음란서적을 보고 낙서 비슷하게 몇자 끄적였다가 그것이 익명의 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되면서 전문 직업 음란소설 작가로 전업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 내용이다.

낮에는 근엄하고 점잖은 사대부의 문장가로 경전을 읽다  밤만 되면 직접적 음란함을 육두문자로 휘갈기는 윤서는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창작자와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간의 다이나믹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실제로 윤서가 알아주는 문장가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정통 유교사회의 식자계급 내에서 제한된 독자를 거느리는 작가로서 일 뿐 독자의 수에 관한 윤서의 양적 포만감을 채워주기에 역부족일 것이다.

주류, 또는 정통의 문단으로부터 비켜나 있는 언문의 세계, 그 시정잡배들의 음담패설과 욕망으로부터 소외된 부녀자들의 분출하는 리비도가 보여주는 광대한 생명의 세계는 윤서에게 새로운 세계가 다시 열리는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였을 지도 모른다.

또한 그들의 세계가 보여주는 즉물성과 즉각성은 엄청난 독자의 숫자로 윤서를 압도했을 것이고 익명의 독자들은 후기 감상문을 책에다 바로 ‘댓글’로 표현함으로서 창작자와 그것을 향유하는 독자와의 일대일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윤서는 자신의 창작물이 가져다주는 직접적인 독자의 반응과  숫자의 매혹에 사로잡혀 하루가 다르게 새롭고 신선한 소재와 볼거리를 동원하는 수고로움을 마다않으며 심지어는 목숨을 건 일탈까지 감행하게 된다.

마치 현대의 연예인이 자신의 팬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성형수술을 하고 홈페이지를 관리하며 댓글을 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윤서의 재능은 글쓰기이고 연예인의 재능은 미모라는 점이며 윤서의 글쓰기는 철저하게 자기 만족적 욕구에서 출발하나  연예인의 모든 활동은 오직 돈을 벌고자 하는 욕구로 집약된다는 점일 것이다.

근대이후 예술이 대중화되면서 자본과 결탁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자기 만족적 표현의 욕구 또는 대중을 순수하게 즐겁게 해주고 그 재능을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어떻게 물화 되면서 문화산업이라는 거대 구조가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유추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런거다.

어느날 내가 재미삼아 인터넷에 글 하나를 올렸는데 예상치 않게 네티즌들의 반응이 좋아 조회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댓글이 줄을 잇는거다.

내가 글을 잘썼든, 재미있게 적었든, 신선한 소재가 있어서든 사람들이 내 글을 많이 읽어주고 이런 저런 직접적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매일 매일 인터넷의  내 글을 확인하고 새로운 글을 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더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게 도가 넘으면 밤잠을 자지 않고 글을 올릴 것이고 온갖 자극적인 그림도 넣을 것이고 나보다 더 인기가 많은 어떤 사람의 글을 분석하고 시기하고 경쟁하기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게 꼭 나쁘거나 천박한 것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독자를, 관객을 의식하지 않은 순수한 자기 만족적이고 폐쇄적인 창작물은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이 자신의 재능으로 말미암아 타인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재능이 있어서 독자를 많이 확보하고 필사본을 많이 팔수는 있을지언정 윤서의 음란 소설을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윤서의 창작물이 음란물이어서가 아니고 윤서가 소설을 씀에 있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의 작품이 예술이 되기 위해선 적어도 나는 왜 글을 쓰는가 하는 본질적 질문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윤서가 집착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숫자와 세간의 인기일 뿐 그 이상의 것은 아니다.

그 인기를 위해 윤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을 삽화의 모델로 삼기까지 하는 비열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윤서와 정빈과의 연애담을 펼치는 종반부로 갈수록 처음의 선명한 빛이 흐려진다.

윤서는 애시당초 정빈을 이용하기만 했을 뿐 다른 사사로운 감정이 없어야 처음의 문제의식이 날 선채 살아있는 것인데 거기에 사랑이니 삼각관계가 더해지면서 뒷심을 잃고 식상한 신파로 빠지고 마는 것이다.

차라리 우리가 흥미롭게 바라보아야 할 관계는 바로 윤서와 광헌(김범수분)과의 관계이다.

죄인을 취조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요즘으로 치면 강력계 형사나 검사?) 광헌이 죄인을 주리 틀고 남는 시간에 취미생활 비슷하게 그린 그림을 윤서가 알아보고 결국 자기 소설의 삽화를 그리게 함으로 우정 이상의 동지적 관계를 맺은 두 사람이야 말로 사랑이라 이름 부치기에 손색이 없는 관계이다.

광헌 또한 그림에 숨은 재능이 있었으나 그것을 알아주는 윤서를 만나고서 비로소 자신의 재능이 세상의 빛(비록 야설시장에서지만)을 보게 되었고 두 사람의 합작품이 대중에게 어필하는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둘은 동일한 욕망에 포섭된다.

그래서 윤서와 광헌은 죽음을 불사하고 서로를 지켜주고자 하는 것이다.

엄숙과 위선의 베일 뒤에 숨은 인간의 욕망을 유려한 문장과 박진감 넘치는 그림으로 엿보는 관음의 쾌락에 심취하고  그것이 불특정의 다수에게 폭발적인 공감을 끌어내어 천군만마의 지원군을 얻게 되면서 둘은 생의 이면을 함께 탐험하는 필생의 형제요 일탈의 공범자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빈과 윤서, 임금을 포함한  셋의 연애담은 억지스럽고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며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고 한 임금의 말을 빌린다면 이 영화에서 최후의 승자는 바로 윤서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림 그리는 광헌 일수밖에 없다(이 영화의 사각관계에 대한 전혀 새로운 해석).


몇 가지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음란서생은 대중문화와 예술에 대한, 그것을 생산하는 자와 소비하는 자의 역동적 관계에 대한, 흥미진진하고 유쾌한 한편의 우화이다.

자신의 적극적 의지는 아니었으나 본의 아니게 윤서는 음란함을 무기로 시대의 폭압적 엄숙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윤서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의 전위적 투쟁(?)으로 말미암아 지금의 우리는 충분히 음란하지만 윤서보다 결코 자유롭지 못한  시대를 살고 있다.

역시 음란은 흥미로운 일탈이기는 하여도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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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서생(2006, 淫亂書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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