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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바람직한 복수극 오션스 13
jimmani 2007-06-12 오전 12:56:11 17193   [13]

홍콩영화가 한창 전성기를 이룰 90년대 초, 즉 내가 초등학생에서 유치원생 정도 시절일 때 <호문야연>이라는 홍콩영화를 비디오로 본 적이 있다. 내용은 사실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여전히 기억하는 건 이 영화에 나왔던 어마어마한 출연진들이다. 유덕화, 장학우, 주성치, 왕조현, 장만옥, 홍금보, 양가휘, 장국영, 공리, 관지림, 곽부성, 여명, 양조위 등등 홍콩의 모든 배우들을 다 끌어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초특급 캐스팅이었다. 수재민 기금 마련을 위해 제작된 영화였지만 정작 영화의 내용은 상당히 가벼웠던 걸로 기억난다. 수많은 유명배우들이 나와서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듯했다고나 할까.

"오션스" 시리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아마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한 영화 속에서 만난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호화로운 출연진을 자랑하지만 정작 이들이 벌이는 일은 뭔가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라기보다는 카지노를 턴다는, 이렇게 쟁쟁한 배우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라 하기에는 다소 소모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배우들이 모였다고 해서 꼭 뭔가 막중한 일을 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을까. 각각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도 묵직할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유머러스한 농담과 무릎을 치게 되는 트릭으로 나름 중요한 임무를 완수해가는 과정은 기분 전환에는 확실한 효과를 가져다 주었음은 분명했다. 1편은 이런 역할에 충실했고, 2편은 스타들의 약발이 더욱 세진 나머지 영화의 만듦새는 많이 헐거워진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번에 나온 3편 <오션스 13>은 그렇지 않다. 흔히 범죄영화에서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을 "마지막으로 크게 한 탕 하자"고 꼬드기듯이, 이 영화 역시 아주 깔끔하고 세련되지만 화끈한 마지막 한 탕을 준비했다.

각자 자기 직업(?)에 충실하던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과 러스티 라이언(브래드 피트), 라이너스 캘드웰(맷 데이먼)을 비롯한 일당들이 다시 모이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던 루벤 티쉬코프(엘리엇 굴드)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기 때문. 루벤이 라스베이거스의 소문난 큰손 윌리 뱅크(알 파치노)와 손을 잡고 대박 호텔을 짓기로 했지만 뱅크가 루벤을 매몰차게 배신하고 혼자 낼름 호텔을 드시게 되면서 심장에 충격이 온 것이다. 자신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그가 쓰러진 모습을 보고 오션 일당은 이전까지 숙적이었던 테리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까지 투자자로 끌어들여 뱅크에게 복수를 계획한다. 그러나 생명존중사상이 투철한 이들은 뱅크를 죽이는 정도의 단순무식한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바로 뱅크가 자신의 호텔을 여는 첫날, 완벽하게 빈털터리가 되게 만드는 것. 눈치와 술수가 보통이 아닌 뱅크는 호텔을 최신 디지털 보안 장치로 무장한 가운데,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와 친한 오션 일당은 과연 통쾌한 복수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

카지노와 사기, 복수극 등 만만치 않은 무게를 지닌 요소들이 산재하고 있지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그런 요소들이 모두 모인 이 영화를 결코 인상쓰고 무겁게 이끌어가지 않는다.(물론 전편들도 그러지 않았지만) 쿨한 사고방식과 친절한 규칙, 세련된 매너를 겸비한 사기꾼과 도둑들이 펼치는 행각은 전혀 어둡지도 않고 유머러스하게 전개되며 세련되면서도 부담없는 오락영화의 모범을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의 특성은 배우들의 연기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알 파치노, 앤디 가르시아, 돈 치들 등 중량감 있는 배우들이 모였음에도 이들의 연기는 절대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상당한 완성도를 지닌 감독작을 만들어내며 영화인으로서 묵직한 면모를 보이던 조지 클루니도, 점차 꽃미남 스타에서 진지한 연기파로 거듭나려 하는 브래드 피트도, 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제이슨 본의 이미지가 강한 맷 데이먼도, 이 영화에서는 막중한 임무를 앞두고도 여유롭게 농담 따먹고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며 훌쩍거리는 부담없는 남자들일 뿐이다. 이렇게 각자 나름의 무게감을 지닌 배우들이 그 무게감을 싹 걷어내고 보여주는 수시로 옆구리를 간지르는 유머와 재치는 이 영화가 정말 부담없이 쿨한 재미를 지닌 오락영화라는 인상을 뚜렷하게 심어준다.

이들 뿐 아니라 은근히 불만 많고 말 많은 배셔(돈 치들), 임무상 멕시코에 갔다가 감정이 격해져 오히려 임무에 장애물을 안겨주는 다혈질 길로이 형제(스콧 칸, 케이시 애플렉), 대담성이 필요한 임무 앞에 식은땀과 서툰 실수부터 앞서는 리빙스턴(에디 제미슨), "Shit!"(젠장) 이외에는 시종일관 중국어만 쓰는데도 다른 멤버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기이한 언어능력을 지닌 곡예사 옌(샤오보 칸) 등 오션 일당 한명 한명의 개성이 뚜렷하게 살아있어 잔재미를 준다.

영화는 오션 일당에 2명이나 더 추가시키며 등장인물을 보다 풍성하게 했지만, 등장인물이 추가되면서 반대로 극적 완성도가 부실해진 2편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았다. 등장인물은 많지만 이야기는 집중력이 있다는 얘기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동지도 없다는 무한이기주의의 윌리 뱅크를 향한 지능적인 복수극이라는 하나의 큰 줄기를 줄곧 따라간다. 물론 여기서 각 멤버들의 활약 속에 여러 잔가지들이 쳐지긴 하지만 그 가지들은 곧 원만히 큰 줄기로 수렴될 뿐, 또 멋대로 뻗어나가 이야기를 수습하기 힘들게끔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다. 때문에 관객들은 오션 일당의 시원한 복수극을 가슴 졸이며 따라가는 가운데 곳곳에서 양념처럼 터지는 여러 에피소드에 예상치 못한 웃음보를 터뜨리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게 된다. 여름 성수기를 맞아 어김없이 등장하는 헐리웃 대작의 속편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꼼꼼한 이야기의 만듦새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영화가 카지노와 사기, 복수극과 같은 자극적이면서도 식상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거부감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맛깔스럽게 접수되는 이유는 이렇게 막중한 임무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숨쉬는 여유로움 덕분이다. 정말 정색하고 대단한 임무를 시작할 것처럼 보이다가도 곳곳에서 멤버들이 터뜨리는 예상치 못한 난관들은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하면서도 심각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냉철한 작전 속에 어쩔 수 없는 인간미가 느껴져서 절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주사위 만들러 멕시코 공장에 투입되었다가 갑자기 격해진 감정에 파업을 일으켜버리는 길로이 형제의 에피소드나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작전 수행 도중 시시각각 애로사항을 겪는 리빙스턴의 진땀 나는 상황들이 대표적인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오션 일당의 폼나는 작전 수행 뒤에 숨겨진 다른 사람들의 난감한 상황들이 후일담처럼 펼쳐지며 웃지 못할 상황들을 연출하기도 한다. 윌리 뱅크를 속이고자 가짜 심사원을 심는 과정에서 진짜 심사원이 겪는 연속적인 불운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이러한 여유로움 속에서도 오션 일당이 펼치는 화려한 두뇌플레이는 여전히 녹슬지 않고 관객들에게 풍성한 재미를 안겨준다. 윌리 뱅크의 호텔 곳곳에서 잠복하며 각자의 임무에 충실한 멤버들이 아귀가 딱딱 들어맞게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가짜 심사원을 심음으로써 "파이브 다이아몬드" 상을 받으려는 윌리 뱅크의 계획을 무산시키는 과정이나 대망의 호텔 오픈일에 그동안의 계획들이 총체적으로 합해지며 결과물을 빚어내는 과정은, 앞에서 행했던 일들에 궁금증을 품고 있다가도 뒤에 가서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절묘함, 온전히 그들의 복수극이면서도 절대 그들에게 혐의를 씌울 수 없게 하는 지능적 계획에 그들의 한두번이 아닌 꼼꼼한 플레이를 실감하며 무릎을 치게 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참 파렴치한 일을 하는데도 저렇게 여유들을 부리고 있다면 오션 일당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을 진정 아낄 만한 이유는, 사기나 도둑질 등 언뜻 보면 범죄로 보이는 일들을 일삼으면서도 이런 일들을 도덕적으로 최대한 손상이 덜 가게, 무고한 피해는 최대한 줄이며 행한다는 것이다. 오션 일당이 평소에 고수하는 원칙은 세 가지. 사람을 해치지 말 것이며, 무고한 사람의 재산을 털지 말 것이며, 한번 맡은 작전엔 미친듯이 돌진하는 것. 이러한 원칙은 <오션스 13>에서의 윌리 뱅크에 대한 복수극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그들의 복수 대상은 오로지 윌리 뱅크와 그의 측근일 뿐, 보복이랍시고 이라크 국민들을 무차별 희생시키는 부시 대통령처럼 엄한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윌리 뱅크에게만 최대한 많은 피해를 안겨줄 뿐, 우연히 그의 호텔에서 게임을 하게 된 무고한 손님들에게는 피해를 끼치기는커녕 오히려 함박웃음을 안겨준다. 설사 작전 수행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큰 피해를 입게 되었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그에 충분히 상응하는 보상을 안겨주는 것이 오션 일당의 원칙이다. 이렇게 뭔가 도발적인 범죄행위를 하는 듯하면서도, 그 속에서 철저히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 도덕과 매너는 지키며 깔끔한 뒤끝을 보여주는 이들을 우리가 아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이 복수에 나서게 된 것도 결국은 윌리 뱅크가 아무리 돈놀이하는 사람들이라도 최소한 지켜야 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이렇게 도덕적으로 최소한의 도리는 갖추고 있는 오션 일당은 심지어 그들이 접하는 어마무시한 작전과는 어울리지 않게 감성이 풍부하기까지 하다. 팀의 리더로서 그저 카리스마 있는 모습만 보여줄 줄 알았던 대니 오션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오프라 윈프리 쇼" 에피소드나 변장 기술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아버지와 어린아이같은 말다툼을 일삼는 라이너스의 모습 등 무지막지한 작전 뒤에 숨겨진 그들의 참 시시콜콜하면서도 인간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면모는 이 영화를 단순한 카지노 영화, 범죄 영화의 범주를 넘어서 한 편의 유쾌한 총체적 코미디로 만들고, 더불어 살벌한 작전의 세계에 담백한 인간미를 불어넣는다.

올해 나온 헐리웃 기대작들의 속편들이 대체적으로 전편들보다 못하다는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오션스 13>의 경우는 전편이 엄한 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지 정신차리고 세련되게 만들어진 영화다. 긴장감 넘치는 작전 속에서도 유머는 풍부하고, 이야기 전개는 끝까지 집중력 있다. 전형적 선악 구조 속에서 뭔가 식상한 장면이 나올 것만 같은 결말마저도 유쾌한 반전과 예상치 못한 웃음으로 관객들을 끝까지 기분 좋게 속인다. 거기다 복수극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깔끔한 매너와 인간미까지.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이라지만, 이렇게 기분 상쾌하고 친절하고 바람직한 복수극도 있다니 새삼 즐거워진다. <오션스 13>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두 시간이라는 딱 적절한 러닝타임 속에서 그 어떤 물량공세도 두렵지 않은, 지금까지 나온 올 여름 헐리웃 기대작들 중 가장 담백하고 세련되고 화끈한 재미를 안겨주는 영화다. 이제서야 제대로 매력적인데 이게 마지막 편이라니, 보내고 싶지 않아!

+ 맨 첫번째 사진, 다소 평범하게 보이시는가? 영화 속에서 가장 웃긴 장면 중 하나이다.

+ 영화 속에서 삼성 휴대폰이 상당히 중요하게 언급된다. 그저 상표가 화면에 나오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입에서 "삼성 셀 폰"이라고 상당히 소중하게 언급된다는 얘기다.


(총 0명 참여)
iamjina2000
사기꾼이나 악당이나 이렇게 멋져도 되는거야?   
2007-06-23 03:45
qowjddms
너무보고싶당   
2007-06-22 14:11
skh0822
아, 보고싶다 ㅠ ㅠ   
2007-06-21 19:44
skh0822
아, 보고싶다 ㅠ ㅠ   
2007-06-21 19:44
comjirak
멋진 녀석들..ㅋㅋ   
2007-06-20 20:48
leadpow
멋졌어요~ +ㅁ+   
2007-06-20 16:28
egg0930
보고싶네요~   
2007-06-19 11:50
lisbela
잘 만든 영화!   
2007-06-19 11:14
engnsdl81
뚱뚱한여자 좋겠다!!   
2007-06-19 08:39
szin68
겉멋만 부리는 영화는 아니었군요~   
2007-06-19 00:30
1


오션스 13(2007, Ocean's Thirteen)
제작사 : Section Eight Ltd. / 배급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수입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 공식홈페이지 : http://www.o13.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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