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소녀를 만난 첫사랑의 비극적 기록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소녀가 소녀를 만난 첫사랑의 비극적 기록이다. 난청으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육상부원 시은과 가끔 이상한 소리를 듣는 중창반 반주자 효신은 둘만의 방을 짓고 빗장을 지른다. 하지만 서로의 다리를 묶고 고요한 물속에 잠겨 있던 두 소녀 중 하나가 짝을 뿌리치고 수면으로 떠오르는 영화 도입부대로, 언약은 깨어진다. 효신의 지독한 애정으로 봉인된 ‘밀실’에서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시은은 “뭇사람 앞에서 연인에게 등 돌리지 말라”는 사랑의 첫 번째 계율을 어긴다.
우리 스크린에서 소외되어 온 10대 소녀들의 공간을 매혹적인 영화 소재로 발견한 전편에 이어, 속편은 괴담보다 일기에 가까운 문체로 여고생들의 하위 문화에 관한 보고서를 쓴다. 감독과 연출부가 6mm 카메라를 들고 채록했다는 10대 소녀들의 일상이 녹아 든 디테일에서는 과연 ‘진짜배기’ 냄새가 난다. 예컨대 “세상에서 새가 제일 싫어!” 같은 단순한 대사, “우리 사이가 이것밖에 안 되니?”하며 투닥이는 조연들의 연기는 여성 관객의 무릎을 치게 한다. 대체 어디에 쓰일까 궁금하게 만들던 문구점의 수많은 필기구와 예쁜 스티커들도 소녀들의 소통 채널인 일기장 속에서 참된 쓰임새를 드러낸다. 잘 모르는 친구의 자살에 너도나도 통곡하고는 금세 속살대며 간식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도 얄밉거나 슬프기 이전에 그저 생생하다.
한편 여인 같은 소녀 효신과 소년 같은 소녀 시은의 캐릭터는 사회가 10대 여자애들에게 주는 스트레스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나를 지키려면 다른 하나를 위반하기 십상인 청소년의 규범과 여성적 규범 틈새에 끼어 있는 10대 소녀들은, 흔히 서둘러 성숙한 여자가 되거나 남자를 닮는 방식으로 숨통을 트려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고괴담 두번째…>는 ‘여고’를 전편보다 훨씬 중요한 키워드로 구사하면서 색다른 여성영화로도 발돋움한다.
사실 공포영화를 표명한 이 영화의 공포 장치는 그다지 내세울 만한 게 없다. 삐걱대는 마룻장도 교실 벽을 타고 흐르는 피의 커튼도 없으며,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도 정작 의도된 것은 공포나 쇼크 효과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교육 제도를 ‘적’으로 선명히 지목한 전편과 달리, 삶의 모든 시기가 그렇듯 10대 시절의 괴로움도 하나의 절대악에서 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속 깊게 짚어내면서 청춘영화의 경계를 넘어선다.<씨네21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