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n(2004)
Directed by Olivier Assayas
Starring Maggie Cheung, Nick Nolte
Clean이라는 말은 형용사로 깨끗하다는 뜻 말고도 영어권에서는 ‘마약을 하지 않는’이라는 뜻으로 관용적으로 많이 쓰인다. 락커로서의 인생이라는 시놉시스와 함께 생각했을 때 제목 clean은 당연히 후자의 관용적 뜻으로 생각되기 마련이다. 정말 마약에 대한 영화였다면 제목은 drug이었을 것처럼, 이 영화는 마약에서 벗어 나면서부터의 인생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독이 말했듯 영화 플롯의 시작은 매우 보편적이고 간단하다. 인생에서 힘든 부분을 극복하고 struggle하려는 시도와 그 과정을 겪는 한 여자, 에서 시작한 이 영화에서 락 뮤지션들의 생활과 삶 같은 것이 일종의 환상처럼 전반에 걸쳐 나온다. 주인공인 ‘에밀리’ 역시 락 뮤지션이고, 또 다른 뮤지션의 리와 사실혼의 관계였고 그녀가 다시 일어서고 돌아가려는 세계도 음악의 세계이다. 영화 초반의 클럽의 모습에서처럼 영화는 락 뮤지션을 어딘가 환상적 분위기로 이끌어내지만 그 역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실적인 세계의 단면일 뿐이었다.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여자인 에밀리의 인생을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찍이 지켜보고 따라붙고 응시하는 영화는 보는 내내 다큐멘터리 같다는 인상을 받게 만들었다. 꽤나 감동적일 법도 한 아들과의 상봉(!)장면에서도 음악 하나 없이 담담하게 그녀의 감정만을 보여주려는 클로즈업, 말 한마디 없이도 빠른 속도로 그러나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좌절감을 맛보는 모습을 멀리서 비추는 것 등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바쁜 삶의 단면이나 아들을 사랑하는 모습의 위화감, 그리고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감정의 폭포수를 감당하고 사는 모습을 어찌나 잘 드러내는지. ‘에밀리’와 정말 일체가 된 듯한 장만옥의 연기가 정말 일품이었다. 그 연기를 잘 드러내주는 한 장면 한 장면, 카메라 웍 또한 완성도 높았다고 보인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주는 만큼 이 다큐멘터리적인 필름에는 ‘인정’이 큰 비중으로 존재한다. 건조하고 충동적인 에밀리의 인생에 인정을 가져다주는 역할은 나의 예상외로 바로 닉 놀테가 연기한 ‘알브레히트’, 에밀리의 시아버지였다. 자신의 부인, 자신의 손자, 그리고 며느리인 에밀리의 삶까지 모두 배려하고 걱정하는 노인의 마음이 딱 알맞은 온도로 영화를 뎁혀준 느낌이었다. 주름 하나하나에 인생이 녹아든 듯, 눈썹을 떨며 진중한 눈빛으로 말하는 그의 연기는 정말이지 최고였다. 장만옥과 닉 놀테의 사실감이 높다 못해 영화 속으로 뛰어들고 싶게끔 만드는 연기는 영화가 가진 최고의 가치였다.
이 영화에 대해 이것저것 뒤져보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의 평이 ‘재미없다’는 것이었다. 영화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듯이 표현법에도 다양한 길이 있다. 눈에 즐거움과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 한 방법이라면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인생의 부분을 잠시 보여준 격이었다. 온전히 에밀리의 감정과 고난, 과정을 지독히 사실적이게 그려낸 이 작품은.. 글쎄, 난 깊이 이입했고 아주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의 탁 트인 하늘처럼 시원한 날들이 인생에 얼마나 있을까. 극복하고, 나보다 먼저 그 힘든 일을 겪고 일어난 사람과 만나고,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 새로운 가능성에서 빛을 보는 것이 에밀리의 두 시간, 나에게 내준 두 시간이었고. 나의 인생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덧. 올리비에 아싸야스, 닉 놀테, 장만옥의 인터뷰까지 쭈욱 보고 나니 더 영화를 깊이 본 기분이 들었다. 감독인 아싸야스는 장만옥의 전남편으로 인혼한 후에 같이 작업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장만옥의 재능과 내면에 대해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품고 있음이 느껴져서 정말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랬기에 그녀에게 맘껏 맡길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