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만큼 평이 극과 극인 영화도 드물것이다.
그러나 시사회 때도, 또 PIFF 폐막작으로 선정되었을때도 모두의 관심을 끌었으나 막상 개봉이 되자 찬사보다는 혹평에 더 무게가 실렸던 것 같다. 어느 정도의 관객은 동원했으나 흥행도 하지 못했다.
주홍글씨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인물의 내면심리를 그 어느 영화보다 디테일하게 잘 그려냈다. 이 영화는 김영하의 "거울에 대한 명상" 이라는 작품과 김형경의 "사진관 살인사건" 이라는 아무 공통분모가 없는 두 소설을 짬뽕한 것인데 그 때문에 오히려 작품의 전체적 통일성을 많이 흐트려놓았다. 알다시피 전자는 이은주와 한석규, 엄지원의 이야기고 후자는 성현아와 한석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많은 사람들이 성현아가 왜 등장했는짐 모른다. 나도 모른다.
어쨌든 이은주가 "다 가질거야." 라며 울부짖던 것, 트렁크 신에서 펼쳤던 그 열연. 모든 것이 너무나 가슴깊이 와닿는다.
정말 그렇게 독특한 매력, 아우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배역을 척척 자신의 것처럼 해낼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이은주 또래 배우중에는 물론 없다. 이나영? 손예진? 김태희? 한가인? 한예슬? 전지현? 김하늘? 솔직히 이런 배우들이랑, 아니 배우라고 말하기 조차도 힘들다. 그녀들은 탤런트 이거나 CF 스타지, 결코 배우가 아니다. 그녀들에 비하면 이은주의 연기력은 월등하다.
전도연, 김혜수 등 연기파 배우라고 일컬어지는 그녀들과 비교해서도 이은주는 결코 꿀리지 않는다. 그녀들은 자신만이 잘하는 그런 색깔의 연기가 있다. 그러나 이은주는 다르다. 그녀가 출연한 작품들을 보면 해보지 않은 역할이라곤 없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매번 연기력 면에서 극찬을 받았다. 참 대단한 배우다.
그녀는 생전에 "충무로 캐스팅 1순위", "감독들이 가장 고마워하는 배우" 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였고, 그녀가 죽고 나서 한 감독은 감히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배우" 라고 까지 했다.
주홍글씨를 찍을때 변혁 감독이 공사도 시키지 않고 이은주에게 베드신을 찍기를 강요했고, 한석규는 수십번의 베드신 끝에 졸도를 했다고 한다. 따로 빼서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강렬했던 마지막 트렁크신을 찍기위해 전 스텝들과 한석규, 이은주가 3일동안 밤낮으로 열연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남겨졌을 짐... 나도 상상이 간다.
생전에 변혁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겨우 25살의 여자인데, 감독님이 자꾸 이상한 것을 강요하시고 한석규 선배님도 처음에는 우려하다가 나중엔 나에게 너무 많은 것(베드신이나 그런 것들)을 기대하셔서 솔직히 기분이 많이 상햇다", "감독님은 참 특이하신 분이다" 라고 말한 것을 보고 정말 왜 사람들이 그녀를 그렇게 push 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안타깝게도 이은주는 이 작품을 찍고도 여우주연상을 놓쳤다. 그렇게 받고 싶어했던 상인데... 김혜수나 전도연에게 넘어갔다면 이해는 한다. 그러나 하필 청룡영화제에서 이나영이라니.... 거듭 말하지만 이나영은 내가 이은주와 같이 무척 좋아했던 연예인이지만 나는 단 한번도 아는 여자 이전까지 그녀를 배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녀는 CF스타요, 탤런트(네 멋, 아일랜드..)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스크린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아는 여자로 신인상도 받지 않은 이나영에게 여우주연상이라니...(물론 이나영이 이전에 영화를 몇편 찍었다. 그러나 흥행은 고사하고라도 연기가 형편없었다) 이나영이 호명될 때의 이은주 표정이 자꾸 생각난다.
이은주는 참 대단한 배우였다. 내 인생에서 그녀와 같은 배우를 다시 볼 일도 없거니와 내가 어느 여배우를 그토록 좋아했던 일도 없을 것이다. 한 배우의 영화가 그토록 기다려지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그녀는 갔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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