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남아> 나문희의 진한 '모성애' 느껴보세요 '복수는 부메랑'..조폭 영화 한층 업그레이드
건달 세계를 떠돌던 탕아가 생애 가장 마지막에 부르는 이름은 뭘까. 설경구-조한선, 터프한 남자 두 명이 주인공으로 나선 영화 <열혈남아>(감독 이정범 제작 싸이더스FNH), 굳이 장르를 말하자면 갱스터 느와르라고 생각했던 당초 예상을 뒤엎고 TV 드라마에서 억척스럽고 따스한 '어머니' 상을 보였던 중견배우 나문희의 가슴아픈 모정 연기가 돋보인 '휴먼 느와르'로 다가온다.
또한, 짐 자무시 감독의 <천국보다 낯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비열한 거리> 속 건달 캐릭터를 모티브로 해 가 지난 1980년대 말, 97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홍콩 젊은이들의 방황과 고뇌 그리고 고향으로의 회귀를 주제의식으로 그린 홍콩 영화 <열혈남아>와 많이 닮아 있다.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 <열혈남아>는 과거 홍콩 액션과 달리 패배주의가 만연했던 시절, 홍콩의 구룡 뒷골목을 배경으로 폭력조직의 중간보스 소화(유덕화 분)와 형 몰래 범죄조직에 뛰어든 창파(장학우 분) 두 남자의 삶을 거칠게 그렸다. 특히, 극중 소화의 연인 아화는 마치 중국에 반환하려하지 않는 홍콩인들의 고향의 또 다른 이미지이기도 했다.
이점범 감독의 <열혈남아> 역시 마치 왕가위의 영화 속 창파의 복수를 위해 나선 소화의 피투성이 된 상처를 치료해주는 아화처럼, 자신의 실수로 동료 민재가 죽은 후 조직에서 소외된 주인공 재문(설경구 분)이 동료의 복수를 위해 벌교 땅에 데려온 신참 건달 치국(조한선 분)에겐 자신을, 그리고 복수 상대인 대식 엄마(나문희 분)를 통해 돌아가신 어머니를 느낀다.
▲ 영화 속 모자 관계(?)가 된 재문(설경구)과 대식 엄마(나문희)©싸이더스FNH
재문과 함께 실수로 엉뚱한 사람을 죽인 민재가 경쟁 조직의 중간보스 대식(윤제문 분)으로부터 칼을 맞고 쓰러진 채 어느 여름, 월드컵의 거센 함성 속에 쓰러진 채 죽음을 맞이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민재의 복수를 위해 신참 건달 치국(조한선)과 함께 전라도 벌교에 내려온 재문은 대식 엄마가 운영하는 국밥집에 들르면서 복수의 대상과 새로운 '가족 관계'가 형성된다. 대식의 근황을 수소문 할 목적으로 대식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는 재문과 손님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퉁명스럽게 대하는 대식 엄마 사이가 그 것.
영화 속 공간적 배경이 되는 드 넓은 갯벌과 황무지로 대변되는 벌교는 언제 집 나간 자식들이 사고를 당할까 걱정하는 건달 부모나 희망없이 범죄의 사슬에 휩쓸려가는 건달에겐 '힘 자랑 해서는 안되는 듯' 다소 힘겨운 상대처럼 보인다.
또한, 별교라는 거친 자연 앞에 인간의 의지 또한 무력해지는가 보다. 복수하기를 주저하는 재문과 이를 눈치채고 막으려하는 대식 엄마에게서 재문은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느끼지만 이러한 행복감도 잠시, 대식이 조직을 이끌고 벌교에 나타나면서 일촉즉발의 사건을 벌이려는 재문으로 인해 둘 사이 위기감이 고조된다.
왕가위의 영화 <열혈남아>에서 소화와 아화(장만옥 분)의 연인 관계는 한국 영화 <열혈남아>에서 재문과 대식 엄마 간으로 치환되면서 영화 속 극적인 주제를 암시하는 주제곡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는 아들같은 재문의 비극을 보지 않으려는 엄마의 서정을 노래한 듯하다.
더욱이 순천 갯벌에서 대식 엄마가 전하는 한 마디 "부모 가슴에 못 박는 짓일랑 하지 말라"는 것과 동행한 치국이 "사람이..그러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라고 재문의 의지를 꺾으려하면서 복수의 칼날은 점차 열등감 어린 재문을 향해 조여오고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그의 최후를 관객들에게 넌지시 내비친다.
극중 재문을 맡은 설경구는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다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거침없는 눈물을 쏟아냈던 영화 <파이란>에서 강재 역의 최민식을 연상시키듯 "미안해요, 아줌마"라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 관객들의 감성을 울리며 명장면을 연출해냈다.
▲ 신참 건달 치국(조한선, 왼쪽)은 재문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다. ©싸이더스FNH
영화 종반부에 관객들에게 주는 또 다른 반전, 복수에 대한 칼날을 잠시 멈췄지만 재문의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한 치국은 여느 조폭 영화의 최후처럼, "너 자신 외에 누구도 믿지 말라"하는 재문의 충고가 부메랑이 되어 재문에게 되돌아 온다.
극중 두 주인공의 모습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청춘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는 이 감독의 연출 의도처럼 거친 남자의 세계를 닮은 벌교 들판을 배경으로 핏빛으로 물든 두 남자의 모습을 통해 폭력과 복수가 다시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옴을 강조하고 있다.
극중 재문의 뒤늦은 후회와 함께 재문을 퉁명스럽게 힐책하듯 눈물을 쏟아내는 대식 엄마 역의 나문희가 쏟아내는 눈물은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려는 관객들에게 눈물샘을 적시게 만들고 때 이른 겨울을 맞은 11월, 따스한 모성애를 다시금 생각케 한다.
더욱이, 영화 속 대식 엄마의 테마인 심수봉의 노래 '백만송이 장미'는 가슴아픈 울림이 되어 남는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때만 피는꽃 백만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맘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수 있다네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헤어져간 사람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었기에 수많은 세월 흐른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다 준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랑 나는 알았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 하는 맘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수 있다네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 될거야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리던 이 있네 그대와 난 함께라면 더욱 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된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맘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수 있다네
- 심수봉의 노래 '백만송이 장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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