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니던 시절 친구들은 나의 절대적인 지지자였습니다. 매일 매일 얼굴을 맞대고 식구들보다도 더 오랜 시간 같이 있으며 어디 든 함께 하고 무슨 이야기이든 다 들어주는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친구라고 다짐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의 범위가 달라 지면 서로의 얼굴 한번 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야기의 흐름이 끊긴 전화기를 멍하니 들고 있자면 내가 도대 체 얘한테 어떤 존재인가 회의가 들죠. 지금 바로 그러신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일년이 다 되어갑니다. 친구들 다같이 만날 약속 한번 하려면 모두 무슨 핑계가 그리도 많은 건지...... 서울에 있는 증권사에 취직해 자취하는 혜주는 인천에 오기 싫다고 튕기 고, 쌍둥이인 비류와 온조는 일요일 대목에 노점을 접을 수는 없다 고 합니다. 그리고..... 공장이 부도가 나면서 실직한 지영이는 연 락도 잘 안됩니다. 태희는 한가해서 전화하는 줄.... 솔직히 한가하 긴 합니다. 졸업하고 계속 집에서 하는 찜질방 카운터를 보고 있고 가끔씩 가는 자원봉사가 전부니까요. 책을 읽고 가끔씩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상상을 하는 게 유일한 낙이죠. 어쨌든, 친구들을 겨 우겨우 한 자리에 모았으니 즐거운 만남이나 가지러 나가야죠.
누가 그러더군요. 집안사정도 안 좋은 지영이가 태희한테 돈을 빌 려서 기껏 하는 게 핸드폰 신형으로 바꾸는 거냐구요. 하지만 지영 이에겐 그냥 단순한 핸드폰이 아니라 자꾸만 멀어지는 친구들과의 간격을 메워주는 중요한 연락수단이거든요. 다른 어떤 것보다 경제 적인 이유 때문에 자꾸만 위축되고 고등학교 때 제일 친했던 혜주 에게 무시당하는 거 같은 기분. 친구 사이에 이런 감정적 골은 오 히려 더 깊게 패이는 법입니다. 지영이 현실적인 혜주나 둘만으로 도 충분한 비류와 온조보다 몽상가인 태희에게 더 편안할 수 있었 던 이유도 거기서 찾을 수 있겠죠. 저는 태희라는 아이가 참 맘에 들었습니다. 자신의 위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이 주변에 있는 걸 소중히 여길 줄 알고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어쩌면 가장 20살답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련지...
[고양이를 부탁해]는 포스터 같은 걸 얼핏 보면 요즘 유행하는 엽 기 코미디나 [청춘]류의 영화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영화는 그런 첫인상과는 다른 영화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뉴스, 드라마, 영화 속에서 발견하는 삐뚤어지거나 뻥튀기된 20살 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나 동생들의 이야기 같았거든요. 배역도 각 자 그 캐릭터에 딱 어울리는 적역이었고요. 그 시절 기억 때문에 영화를 보며 즐거워하고 또 우울해하며 봤습니다. 화면에 문자메세 지 뜨는 것도 주인공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딱 좋은 표현이었고요. 정재은 감독은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균형을 잘 잡으며 풀어나가고 있어서 영화가 더욱 따뜻했습니다. 다음 작 품이 기대되는 바입니다. ^^*
20살 때도.... 지금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익숙해 진 이 모든 것을 확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없습니다. [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전 그런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비록 2001년 의 20살 아이들의 이야기였지만, 오늘 뿐만이 아니라 과거 그리고 미래의 20살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많은 사람이 보고 감정을 나 누었으면 하는 아까운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렇네요. 이 야기가 너무 일상적이라서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친구들 때 문에 외로우셨다면 고양이에게 위로를 받으실 수 있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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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2001, Take Care of My Cat)
제작사 : 마술피리 / 배급사 : (주)엣나인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