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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과 감독의 뒷머리들을 바로 뒤에서 바라보며 영화를 보아서 그런 걸까? 화면속에 보이는 배우들이 꼭 배우들 같지가 않다. 앞에 나와 멋적게 인사하는 두나,지영,은실,은주 네 배우들의 말투나 몸짓이 화면속에 보이는 태희,지영,비류,온조와 다르지 않다.
두 해 전 도형일기를 보고 막연히 정재은이라는 감독의 장편영화를 꿈꾸어왔던 내가 객석에 앉아있는 동안 느꼈던 감회라는 건 사실 조금 남달랐다. 그 짧은 시간에 사람의 감정을 이토록 휘어잡았던 사람이 두 시간짜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면 어떤 이야기일까? 그 궁금증이 그 감독과 배우들이 있는 자리에서 풀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느낌인지 상상해보라.
도형일기에서 어린 딸의 시선에 맞게 카메라가 바닥을 기어다니다시피 했었던 것처럼 여기서도 카메라는 이 소녀들의 시선과 움직임을 따라간다. 소녀들이 뛰면 카메라도 따라 뛴다. 어쩌면 감독은 관객들에게 방관자 이상의 그 무엇을 바랬는지도 모른다. 태희가 돌리는 맥반석 전단지를 받아쥐고 싶고, 지영이 앞에서 제발 말문을 열고 네모난 갇힌 곳에서 빠져나와 나와 함께 있자고 말하고 싶다. 혜주가 밉게 굴 땐 나도 함께 눈을 흘기고 싶기도 하다. 큼직큼직하게 스크린에 잡힌 소녀들이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인 듯한 느낌..
감독은 소녀 배우들의 개성을 그대로 살리려 한 것 같다. 나이가 가장 많고 튀는 듯한 인상을 가진 두나는 역시 다섯 명을 모이게 하는 주체이자 같은 친구들 중에서도 든든한 언니같은 인상을 준다. 게다가 배를 타고 떠나고 싶어하는 것은 소녀의 막연한 탈출의 욕구를 표현하면서도 두나의 색깔처럼 엉뚱하고 튀는 생각이었다. 요원 역시 눈에 힘을 줄 때 보여지는 특유의 도도한 인상을 그대로 살려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약간의 우월감과 회사에서 느끼는 열등감이 잘 섞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비류와 온조는 이들과는 달리 신인이기에 더더욱 TV에서 보여준 느낌을 잘 살려간 것이 다행이었다. 무대앞에서 인사를 하는 은실,은주의 어색한 무대매너와는 달리 다섯 고양이들의 무리가 되어 있는 비류, 온조의 모습은 어색함이 없었다. 이들이 잘 해 주어 다행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이 영화에서 빛나는 사람은 지영이다. 가족들로부터 외면받은 태희나 이혼한 부모와 떨어져 사는 혜주와는 달리, 지영은 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무너져가는 집에 세들어살아가며 삶을 연명하는 것 자체에 대한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소녀다. 무겁고 어려운 역할이었지만 배우 옥지영의 눈빛과 표정은 신인 배우에게 기대했던 그 이상이었다.
아마 감독 또한 지영이에게 가장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지영이에게 고양이를 가장 먼저 선사하는 것 또한 그 애정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고양이는 지영이로부터 혜주에게 가지만 다음 날 바로 지영이에게 돌아온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다녔을 시절 가장 친했던 혜주에게 자신의 소중한 고양이를 부탁하고 싶었던 지영이지만 교복을 벗어던진 지금은 더 이상 '같지 않은'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더 이상 같은 교복을 입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섯명에게 몰아치는 인천 바다앞의 세찬 바람같은 현실 때문이기도 했다. 지영이 결국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지붕이 내려앉아버린 집과 같이 무너지려 할 때 고양이를 부탁받았던 태희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시인이나 부둣가의 동남아 계통의 노동자와 같이 감독이 나름대로 사회로부터의 회피를 요구받는 계층을 천연덕스럽게 끌어안는 그 심정 그대로 지영을 보듬어준다. 그리고 마침내 고양이를 비류와 온조에게 부탁한 태희는 지영과 함께 알 수 없는 먼 삶의 길을 재촉한다. 따뜻한 애정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다섯명의 친구들 중 가장 고양이와 같은 느낌을 주었던 지영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런.. 그러고보니 어느새 나 자신도 어디선가 고양이를 만날 것 같은 기분이다. 소녀가 아닌 내게도 지영이 가진 소녀의 감성이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내 고양이를 길러줄 어떤 사람을 기다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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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2001, Take Care of My Cat)
제작사 : 마술피리 / 배급사 : (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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