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여름은 내가 참 좋아하는 계절이지만, 한편으로 꽤나 난감한 계절이기도 하다. 체질상 여름을 잘 타는지라 조금만 더워져도 금세 땀범벅이 되는 나로선, 지금도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는 불볕 더위는 맑고 활기찬 날씨라 반가우면서도 금방 온몸을 뒤덮는 습기때문에 다소 짜증이 나는 날씨이기도 하다. 이런 날씨 속에서는 당연히 이글이글 불타는 속을 시원하게 확 날려줄 수 있는 액션영화가 또 제격 아니던가.
이렇게 여름의 체증을 날려줄 수 있는 액션영화들 중에서는 뜨거운 여름과 딱 맞아떨어지는 화끈한 열기로 더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영화도 있는 반면, 여름과 정반대되는 분위기로 시원하고 후련하게 체증을 날려버리는 영화도 있게 마련이다. 지금 얘기할 이 영화 <마이애미 바이스>를 간단히 정의한다면 이 두 가지 속성, 뜨거움과 시원함을 동시에 지닌 영화라고 봐도 되겠다. 아니, 시원함보다는 "차가움"이 더 어울릴까.
마이애미의 비밀경찰 소니(콜린 파렐)와 리코(제이미 폭스)는 또 하나의 마약계 거물 인사를 체포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중 갑작스런 연락을 받는다. 바로 러시아계 갱단의 마약 밀매를 추적하기 위해 잠입 수사를 벌이던 FBI 요원들의 신원이 탄로나는 바람에 연쇄 피살을 당했다는 것. 더 이상 신원이 모두 드러난 상황에서 작전을 진행시킬 수 없는 FBI는 아직 갱단들은 모르고 있고, 또한 마약계의 분위기를 잘 꿰뚫고 있는 이들 소니와 리코를 작전에 새로 투입시킨다. 이들은 마약상으로 가장한 채 러시아계 갱단들에게 마약을 건네줄 호세 예로라는 마약상과 접선하지만, 이들은 생각보다 마약 판매상의 규모가 거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호세 예로는 단지 중간책에 지나지 않았고, 그 위에는 보스 몬토야가 버티고 있는 체제로 보다 조직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었던 것. 소니와 리코는 내친 김에 이 거대 마약 조직도 조사하기로 하고 이들의 뒤를 캐기 위해 몬토야의 정부인 이사벨라(공리)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소니는 이사벨라의 적극적인 공세와 매력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그녀와 그만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한편 중간책 예로는 이들의 너무 완벽한 마약 운반에 의심을 품고, 결국 리코의 연인인 트루디(나오미 해리스)가 납치하고 이를 미끼로 그들을 제거할 계획까지 하면서 작전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이 영화 속 두 형사들은 아무래도 일이 일이다보니 경찰이라고 해서 아주 모범적이라고 반듯하기만 하기보다는 다소 거칠고 어두운 구석도 적지 않은데, 배우들이 이런 두 형사의 모습을 무난하게 연기해주었다. 소니와 리코를 비교한다면 콜린 파렐이 맡은 소니가 상대적으로 리코보다 좀 더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인 편인데, 사실 콜린 파렐은 외모 면에서는 살짝 퇴폐적인 분위기가 나는 소니와 안어울리는 구석도 없지 않았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선글라스 낀 모습은 제대로 된 포스를 풍기지만 눈빛이 워낙에 총명하고 똘망똘망하다보니 어딘가 오염된(?) 구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특유의 걸쭉한 목소리와 치렁치렁 풀어헤친 머리, 수염 다듬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외모 등 다른 부분에서 충실히 보완을 해서인지 말썽 많은 형사의 모습으로써 적절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았나 싶다. 그가 이전 작품들에서 종종 선보여왔던 껄렁껄렁하고 충동적인 이미지는 이번 영화에서는 더욱 부각시키면서 말이다.
제이미 폭스는 이 영화에서 콜린 파렐과 더불어 격한 연기를 보여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가 맡은 리코 역은 소니보다는 상대적으로 얌전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연기 또한 다소 조용하고 부드러운 편에 속했다. 물론 후반부에 가서 꽤 격한 감정신이 등장할 때 역시나 아카데미 수상자다운 카리스마를 발휘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소니 역의 콜린 파렐이 상대적으로 활동적이어서 그런지, 더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게이샤의 추억>에서 가장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공리는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강렬한 포스를 보여주었다. 이 배우는 도대체가 불혹을 넘긴 나이임에도 오히려 회춘하고 있는 듯, 이 영화에서는 훨씬 더 섹시함과 도도함이 강조된 캐릭터로서 그 매력을 마음껏 뽐낸다. 적극적인 공세로 남자를 끌어들이고 사업수완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한, 뜨거움과 냉정함을 동시에 지닌 여인으로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다만 초중반부에까지 이어나가던 강렬한 카리스마가 후반부로 가서는 좀 수동적이고 미지근하게 식어가는 느낌이 없지 않았던 것이 좀 아쉬웠다. 물론 이건 배우의 역량 탓이라기보다 캐릭터의 흐름에 있어서의 문제이겠지만.
내가 마이애미라는 도시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나뿐만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끈적한 열기"이다. 덥다고 해서 건조한 건 아니고 바다를 마주하고 있고, 미국에 있는 도시에서 적도에 가장 가까운 편이니 습기가 차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조용하지만은 않을 것같고 항상 환락과 온갖 화려한 볼거리들이 즐비하게 펼쳐지는 그런 곳 말이다. 그래서 시끄러운 일도 유난히 많이 일어나는 그런 곳.(여기를 배경으로 한 <CSI>도 따로 있지 않던가) 그런 만큼 이 영화 속에서도 그런 마이애미 만의 "끈적한 열기"가 잘 나타나는 것이 아무래도 관건이었을 텐데,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그런 분위기를 피부에 와닿게 너무나 잘 재현해냈다.
이런 사실적인 재현의 공은 단연 촬영부분에 돌아가야 옳을 것이다. 마이클 만 감독의 전작 <콜래트럴>에서도 함께 작업하며 그 때에는 화려하면서도 냉혹한 LA의 밤풍경을 바로 곁에서 보듯 사실적으로 포착해냈던 디온 비베 촬영감독은 이 영화에선 상대적으로 낮엔 뜨거운 태양빛이, 밤엔 어둡고 끈적한 습기가 지배하는 도시의 꿈틀거리는 풍경을 세밀하게 포착해냈다. 더구나 HD카메라를 사용해 언뜻 보기에는 35mm영화같지 않아보이는, 그래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더 현실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은 도시의 화려함을 허황되지 않게 사실적으로 부각시킨다.
촬영기술이 선보이는 눈요기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빛과 어둠의 대조적인 이미지를 절묘하게 활용한 촬영기술은 영화를 한층 더 도발적인 분위기로 끌어올린다. 화려한 불빛들이 뒤덮인 마이애미의 밤은 칠흑같은 어둠과 휘황찬란한 불빛의 대비로 그 환락적인 분위기를 더욱 더 잘 대변하고, 종종 등장하는 소니와 이사벨라의 러브신에서는 빛과 그림자가 대비된 색채를 통해서 한결 더 에로틱하고 고혹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그런데 영화가 이렇게 한편으로는 뜨겁고 도발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꽤 차갑고 냉정한 분위기도 적잖이 풍기고 있다. <콜래트럴>이 차가운 도시에서의 냉혹한 액션으로 무장한 영화라면, <마이애미 바이스>는 반대로 뜨거운 도시에서의 차가운 액션이라고 할까. 이 "차가운 액션"의 매력은 단연 총격신에서 빛을 발한다. 사실 생각보다 액션신들이 그리 빈번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총격신들은 한번 등장할 때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을 잔뜩 안겨준다.
이건 무슨 소총, 장총을 넘어서 거의 바주카포급의 총이 등장해 사람의 팔까지 거침없이 날려버리기도 하고, 총알이 머리와 몸을 관통하는 모습은 어떤 과장됨도 없이 냉정하게 정면으로 묘사된다. 또한 이 영화의 최대 압권이라 할 만한 마지막 총격신에서는 카메라가 그 어떤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지 않은 채 총알이 넘나드는 눈높이에서 마치 그 수많은 총알 속에서 직접 부대끼고 있는 듯한 현장감 넘치는 움직임으로 총격전을 그려내 더욱 더 숨죽일 듯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요란한 효과음이나 에코도 사용하지 않고 그저 때론 소박하다싶을 정도로 펑펑 가감없이 터지는 총소리들은 총격전의 리얼리티를 더욱 살려주기도 한다. 영화 속 대사처럼 "몸이 인식하기도 전에 죽게 만드는" 총들의 중압감 넘치는 움직임은 파괴력 넘치면서도 소름 끼치기도 한다.
사실 영화의 내용은 꽤 진부하고 엔딩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너무 안정권에서 끝난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지적사항이 될 만하다. 마약담당 형사가 마약상에 잠입해 수사를 벌인다는 설정도 뻔하거니와 그 과정에서 배신과 속임수가 생기다가도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 역시 좀 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팜므 파탈, 악역이라고 잔뜩 홍보를 하고 있는 공리의 역할도 후반부로 갈 수록 그 파괴력이 감소해 싱겁다는 느낌도 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액션 영화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해변의 뜨거운 열정과 음란한 습기가 어우러진 끈적한 분위기가 영화 전체를 뒤덮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는 한편으로 금속 재질의 총과 같이 날카롭고 치밀하며 냉정한 액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끈적한 뜨거움과 정신 번쩍 드는 차가움을 선사하는 <마이애미 바이스>는 분명 여름과 딱 어울릴 만한, 여름에 즐겨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액션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지금 이 때 즐기는 게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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