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글을 쓰기에 앞서 이 영화의 비평문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미리 말한다. <벨벳 골드마인>. 참 많은 이들이 봐왔고 많은 평가가 엇갈리고 왔다가다했던 영화다. 한쪽에선 현란하고 신나는 음악들과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에 매료되었다고 하고 또 어떤 쪽에선 그런 영화의 매력이 산만하고 복잡해서 난해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럼 난 어느 쪽이냐고? 글쎄? 그건 솔직히 말해 글쓴이 나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질문이다. 처음 이 영화를 기대했던 분위기와 이 영화를 보고 난 나의 생각이 조금 엇갈렸기 때문이다. 심하게 엇갈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엄청나게 부풀어 기대한 나에게 조금 이상하게 와 닿았다고 해야 하나? 우선 이 영화를 보기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감수해야했는지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이 영화의 제목을 알게 된 건 작년 [시네마 천국]에서 <파 프롬 헤븐>의 홍보로 ‘토드 헤인즈’라는 이름의 감독을 알게 된 후였다. ‘토드 헤인즈’. 영국에선 흔한 이름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유독 그 ‘토드 헤인즈’라는 이름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영화 <벨벳 골드마인>. 참 제목이 특이하다고 생각됐다. 도대체 어떤 영화지? 뒤에 ‘마인’이 붙은 걸 보면 분명 마음, 생각 이란 뜻이겠군. <뷰티풀 마인드>도 비슷한 제목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 ‘마인’은 그 ‘마인’이 아니었다. ‘골드마인’. 금광. 엥? 그럼 벨벳 천국? 사실 제목의 본 뜻을 알게 된 건 영화를 본 후였다.
다시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사연이란. 전자의 영향도 있었지만 ‘이완 맥그리거’의 사진을 뒤지다 <벨벳 골드마인>에서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화장에 매니큐어, 독특한 의상. 그리고 또 한사람 그의 옆에서 아름다운 미모를 보여주며 날 끌리게 한, 심지어 남자임에도 그는 아름다웠다.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 영화 속 이름은 ‘브라이언 슬레이드’였다. 좀 더 놀란 점이 있었다면 영화 속에서 이들이 동성애자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처음 내가 생각했던 <파 프롬 헤븐>과 비슷했던 멜로드라마가 아니었다는 점이 충격의 시작이었다. 마약, 패션감각, 쾌락, 중독, 섹스, 음악, 그리고 락(그것도 ‘글램 락 Glam rock’)이 주제였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무엇보다 날 끌어당겼던 건 동성애가 주된 내용이었다고 해야 하나? 나이 18세에 남들이 다 보낸 사춘기를 아직 붙잡아둔 채 고민에 빠진 것은 동성애에 대한 관심이었다. 하긴 나도 나 자신이 이상한가해서 지식검색을 했더니 자연적인 현상이더란다. <킨제이 보고서>에서도 ‘킨지’ 박사님이 하는 말이 사람은 누구나 동성애에 관심이 있고 원한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암튼 난 이 영화를 꼭 보기로 했다. 토드 헤인즈의 영화 세계나 사춘기 남학생의 동성연애에 대한 관심에 붙잡혔다기보다는 뭔가가 날 이 영화로 끌어당긴 듯한 느낌 위에서. 그게 어느 순간부터 동경의 대상이 된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의 외모였든, 부분부분 감상했던 영화 OST였든지간에. 하지만 어느 곳에나 갈등은 있는 법. 우연히 [OCN]에서 작가 ‘박정우’ 선생님이 소개해준 ‘이완 맥그리거’의 필모그라피 시간에서 맥그리거가 <벨벳 골드마인>에서 알몸으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젠장! 모자이크가 있었구나... 덕분에 마구 가위질을 한 비디오를 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참고로 난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가위질을 절대 용납 못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하지만 무삭제판도 있다고 하니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고 DVD로 보면 되겠다 싶었다. <시계태엽 오렌지>도 DVD가 무삭제판이 나온다니까.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DVD로 발매되지 않았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제길 딴 것들은 다 무삭제로 들여오면서 우리나라는 왜 안 되냐고? 배우들의 성기노출 허용이 어제 오늘 얘기냐? 참. 어제 오늘 시작된 얘기였지.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선정적으로 연출한 헤인즈 감독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매니아층 비상업영화를 수입 안하는 자본주의의 부하가 된 우리나라와 영화 보는 수준이 낮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 미웠다고 해야하나... 하긴 동성애를 다룬 영화를 즐길 사람들이 한국에서 퀴어(queer)들 말고는 별로 없을 거라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절망의 늪에 빠지느니 차라리 가위질 한 작품이라고 보겠다는 심정으로 어머니를 꼬드겨 비디오 가게에 가는 방법도 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뭔지 99년에 나온 건데도 옛날 거라 없다고 한다. (덕분에 <재키 브라운>을 빌려볼 수는 있었지만 뭔가 아쉽기는 했었다.) 한참을 고민하며 외국 DVD라도 살까말까 조마조마 하다 결국 요즘도 구하기 힘들다는 OST와 같이 주문을 하였다. (영화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OST조차 구하기 힘들까?) 한 30여 사이트들을 뒤져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난 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보지도 않구서. 지역코드가 달라 DVD가 도착해도 컴퓨터로 자막 없이 봐야할 것 같았지만 내심 안심이 되었다. 하~, 나에게도 오는구나. 사람들은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한다. 남들은 없는 것을 구하기 힘든 귀중한 물건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고. 나야 영화 매니아니까 당연히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거고, 다른 내 또래 애들이 이 영화를 가지고 있을 날 부러워 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뭔지 모르게 이 영화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봤다는 것’ 만으로도 난 행복했다. 그래. 결국엔 그 귀찮다던 [피디박스]에서 이틀 동안 컴퓨터를 켜놓은 채 무료로 느린 속도로 다운받는 데 성공했지. (그것도 무삭제 판으로. 하하하) 이틀 동안 큰 인내심으로 버텨온 나와 내 컴퓨터가 그리도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시험을 얼마 안 앞두고 미친 짓(시험을 앞두고 영화를 보는 행위)을 감행하며 그 동안의 궁금증을 풀었다. 과연 ‘커트 와일드’와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사랑은 어떤 것인가?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울까? ‘샌디 파웰’이 디자인한 의상들은 얼마나 멋있을까? 토드 헤인즈의 연출방식은?
하지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영화는 내 예상과 많이 달랐다. 난 가끔 영화를 보지도 않고 빠져서 중독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조건이란 배우들의 연기와 영화 속 미술(세트/의상/분장), 그리고 미칠 듯이 머리를 맴도는 음악. 작년에 날 괴롭혔던 영화가 있었지. <아마데우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은 대부분 끝에 가서 내 예상을 비껴간 이야기로 실망을 시키거나 악평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요소들로 기대를 보다 더 충족시켰었다고 세뇌시켰던 작품들이었다. 스토리만큼도 인상적이었던 <아마데우스>에 비해 이 작품은 다소 다른 이들에게 B급 영화 취급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내 삶에 있어서 뭔지 모를 해답을 준 영화였다. 예상과는 달랐지만 그 음악들과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의 상큼한 외모가 주된 이유라고 생각된다.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 이 사람 때문에 난 성적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내가 설마 게이일까? 참고로 이 영화에서 동성애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는 것이 좀 실망(?)적이었다. 토드 헤인즈 감독도 동성애자이다 보니 이 작품도 동성애자들의 주된 심리를 파고들 줄 알았건만 동성애는 단지 이미지(Image)축에 불과했다고 본다. 물론 동성애를 좀 미화시켜 환상적이고 신비롭고 감미롭게 느낄 그런 생각을 품은 이가 진지하게 성정체성을 판단한 동성애자들의 시선에서 좋게 보일 리는 없을 것이다. 덕분에 난 내가 단지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의 외모를 부러워하기 땜에 생긴 충동으로 느낀 성적 혼란을 겪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좋은 영화야. 하하하. 하지만 실망이 커. 항상 <벨벳 골드마인>의 이미지를 검색엔진에서 찾다보면 유난히 많이 나오는 은색 벨벳 옷에 파란 깃털을 목에 두르며 아름답게 팔을 벌리며 노래와 춤을 보여줄 것 같았던 ‘브라이언 슬레이드(메이어스)’가 피격당할 것은 알았지만 노래 한 곡 못 부르고 바로 총에 맞아 쓰러지다니. 커트와의 슬픈 사랑을 담아 노래를 하고 아름답게 깃털 뭉치 위로 쓰러질 것 같았던 나의 환상이 무너지던 순간이었다. 하긴,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영화의 처음 UFO가 날아오면서 한 갓난아기를 어느 부유한 집 앞에 내려놓는 이 장면. 정말 이해하기 힘드네. 무슨 뜻일까? 더 이상한 건 배경이 중세 런던이었다는 것. 이 부분은 ‘오스카 와일드’의 탄생을 그린 부분이란다. 녹색 에메랄드 핀을 꽂은 채 잠이 든 아기는 초등학생 나이에 팝스타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100년후! (참 재밌는 영화네. 상상력 죽인다. 크크) 강한 소년들의 세계에 눌려 바닥에 쓰러진 ‘잭 페리’가 오스카 와일드가 가지고 있던 에메랄드 핀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상처에 난 피를 입술에 바르고는 마치 여장한 것 같은 이미지로 커버한 잭.
영화의 시작은 좀 난해했다. 원래 영화 전체가 참 난해하고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들다. 때문에 이 영화의 평론문을 간단히 작성할 수 없었던 것이고 또 쓰고자 했던 욕심이 났었던 것이다. 과연 토드 헤인즈 감독은 뭘 말하려고 했을까? 단순히 영상미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것뿐인가? 아님 동성애에 대한 진지한 해석일까? 결국 난 영화의 영상과 음악의 예술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배우들이 입은 의상은 한번 쯤 입어 보고픈 욕심이 들게 하였고(특히 메이어스가 입은 의상들이) 중간중간 나오는 노래들과 춤은 마치 뮤직비디오를 연상시켰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브라이언이 첫 오디션을 위해 마련한 뮤직비디오. 중세 유럽인의 옷과 가발을 치장하며 노래를 부르는 브라이언. (어떤 분께서 이 모습을 보고는 <아마데우스>가 연상되었다 했지만 난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 그리고 브라이언 앞에 인형집 안에서 놀고 있는 녹색 머드팩 남자(이 남자의 정체가 영화 후반작업 때 삭발한 메이어스일지 아님 다른 사람일지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다.)의 역동적인 춤. 특히 잠자는 인형부부를 겁탈하는 장면들이 웃겼다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한 말이겠다. 인형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영상미 중 대단한 걸 하나 더 뽑자면 인형이 나오는 장면도 끼워 넣어야 할 듯 하다. 인형(바비 인형틱한) 둘이서 커트와 브라이언의 의상을 입고 얼굴 없는 소녀의 목소리에 이끌려 두 사람의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을 보고 나는 토드 헤인즈 감독에게 충동적으로 박수를 칠 뻔했다. 아니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나도 저런 식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영화감독이 될 수는 있을까...?
그러고 보니 아서의 이야기가 빠졌다. 아서 스튜어트. 참 나 같은 인물이었다. 아니, 어느 사춘기 소년들의 공감을 살 캐릭터였다고 하는 게 맞을 지도 모르겄다. CD매장에서 우연히 본 브라이언의 누드 패키지 LP음반을 보고 게이라는 오해를 살까봐 친구들 몰래 사려고 하는 모습이나, 문 잠그고 몰래 음악을 듣고 브라이언의 사진을 보면서 황홀해하며 자기 위안을 즐기는 행위나, 집 밖에서는 브라이언이 유행시킨 여자컨셉의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모습 등이 그러했다. 물론 정서는 비슷해도 증상은 나와 다르지만. 그런 아서의 모습과 10년 후 기자가 된 아서의 분위기의 차이도 참 놀라웠다.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를 잘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바보 같고 순수하던 소년에서 냉철한 외모의 기자가 된 아서의 모습이 쇼킹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예상과 달랐던 부분이 있다면 아마 영화의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아서’라는 점이었다. 이완 맥그리거와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 주연이라는 포스터까지 있었건만 정작 중요한 역할은 ‘아서’였던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 사라진 스타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서의 정서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정서는 공감대가 있다. 대신 이완 맥그리거가 등장하는 장면들이 주연급 치고는 너무 적어서 아쉬운 점 중 하나가 되었지만 그래도 조연급으로 치부될 것 같았던 ‘토니 콜레트’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는 점이 반가웠다. <뮤리엘의 웨딩>이나 <식스센스>, <어바웃 어 보이>에서 보여주었던 우울한 분위기가 조금은 없잖아 있었지만 예상 밖의 섹시한 몸매(<뮤리엘의 웨딩>을 보고나면 충격이 더 크다.)를 보여주며 귀여운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의상으로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든든한 아내를 연기한 토니 콜레트.
영화를 본 이후 이틀 동안 한참을 고민했지만 역시 이 영화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감독의 인터뷰를 들을 수조차 없었을 뿐더러 역시 이 영화의 매력은 영상과 음악이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이걸 이렇게 표현하려고 했느니, 무엇을 비판하고 풍자하려 했느니 같은 가식적인 거짓말은 삽입하지 않겠다. 한 가지 언급하자면 커트와 브라이언의 사랑에 대해 조금은 할 말이 있다는 것. 커트 와일드와 브라이언의 사랑도 비중은 있지만 일반관객들이 보기엔 너무 빨리 흘러가버린다. 하지만 이미지와 느낌만으로 영화를 감상하듯이 영화를 주위 깊게 본 이들이라면 금방 커트와 브라이언의 관계를 눈치 챌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별이 잭 페리가 부르는 음악과 함께 얼마나 슬픈 요소들인지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음악 때문인지 이 부분에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저 느낌으로 받아들인 영화였으니까. 그렇다 <벨벳 골드마인>은 눈과 귀를 통해 느낌으로 보는 영화였다. 한 시대를 정복했던 글램 록의 스타 ‘데이빗 보위’가 공감할 수 있었던 영화였고, 또 글램 록이란 장르도 알게 한 영화였다. 글램 록은 70년대 중간에 잠깐 유행을 타고는 금방 사라진 음악이라고 한다. 글램 록? 기존의 록큰 롤을 조금 비틀었다는 것이 더 쉬운 설명이겠지. 남들과는 다른 뭔가를 찾고 있던 그들. 또 그 개성을 살려 스타가 되려했던 사람들. 오스카 와일드, 잭 페리, 브라이언 슬레이드 그리고 커트 와일드. 이제 보니 이 사람들 순서로 에메랄드 핀이 돌아다녔구나. 이 에메랄드 핀은 하나의 상징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생소하지만 한 때는 꿈이었던 추억을. 브라이언이 이 에메랄드 핀을 잭에게서 뺏으면서부터 변하는 모습 때문에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에메랄드 핀을 커트 와일드가 한 때 자신들의 팬이었던 ‘아서(크리스찬 베일)’에게 넘겨주는 부분도 에메랄드 핀이 담긴 상징을 잘 보여주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잭 패리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사라지는 장면. 참 기억에 남는다. 아련한 추억을 상징한. 이 부분에서 나는 미래를 두려워하며 과거를 돌아보는 나를 볼 수, 아니 느낄 수 있었다. 한참 잘 나갈 때 슬레이드와 커트는 세상을 정복하려고 했다. 전형적이고 형식적인 세계(록)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스타일(글램 록, 동성애)을 추구하며 남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즐거운 젊은 날을 보낼... 나도 그런 생각을 가졌었지만 결국 도시로 이사 와서 얻은 것은 악화 된 건강과 무료한 일상뿐이었다.
참 힘든 여정이었던 <벨벳 골드마인> 보기. 솔직히 난 아직도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며 이 영화로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미지 사진들 속 조나단과 이완의 모습을 보며 나도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입으면 화려해보이겠지 하는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지만 이젠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동성애에 대한 관심도 많이 사라졌다. 화장을 짙게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록은 매춘이기 때문에 더 천박하고 야해야 한다며 이미지를 강조했던 브라이언. 그래 록큰롤은 매춘이기 땜에 천박해야지. 넌 록을 하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여자 옷에 어울릴 것 같이 잘생긴 백인이나 미소년도 아니야.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알아야지. (어린 아서가 화장을 하고 커트에게 구애하는 부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장신구는 버릴 것.) 어쩌면 커트가 삶은 이미지라고 말했던 장면이 좀 말이 안 되기도 하겠지만 그 이미지로 커버된 삶 땜에 나 자신이 사치를 부리는 쪽으로 미를 추구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만 나면 멋진 옷을 사야한다며 돈을 펑펑 써대는 우리 시대 소년 소녀들 때문에 나까지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커트가 말했던 아니, 브라이언이 들려주었던 ‘삶은 이미지다’라는 말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살면서 서로의 이미지에 대응하고 행동한다. 브라이언이 자신의 거짓 피격사건으로 슬럼프를 격고 10년 후 ‘토미 스톤’으로 돌아온 사연도 그 때문은 아닐까?! 특히 이 부분에서는 아서가 브라이언의 본명(토마스 브라이언 스톤닝햄 슬레이드)을 알고 ‘토미 스톤’이 브라이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메이어스가 토미의 가발을 쓰고 화장한 모습이 살짝 드러나는 순간이 약간 섬뜩하기도 했고. 결국 브라이언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 옛날처럼 언젠가는 잊혀지겠지. 영화에서 현재시간배경이 1984년인 점이 그랬다. ‘역사는 허구로 채워져 있다.’ 결국 토미 스톤도 허구다. 하지만 역사를 다시 쓰고 싶어 했던 커트와 브라이언 그리고 페리와 오스카의 노력이 아서의 추억 속에 남아있다는 점이 안심이 된다. 그래 과거는 잊혀져선 안 되지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평을 쓴 걸 보니 마치 영화처럼 전개가 난해하고 복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요즘 글 쓰는 실력도 예전보다 많이 낮아진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벨벳 골드마인>은 정말 내 생에 잊지 못할 명작이 된 것 같다. 내 삶에 뭔가 해답을 준 것 같은. 아직까지도 머릿속을 맴도는 영화 음악과 커트와 브라이언의 사랑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상세계가 인상적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아직 해답을 주지 못한 부분이 있다. 내가 과연 이 영화를 다른 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느냐라는 점이다. 영화의 스토리도 그렇고 또 너무 선정적이기 때문에 할아버지 때부터 엄한 집안이었던 우리 집 거실에서 이 영화를 틀었다간 집에서 바로 쫓겨날 정도다. 확실히 이 영화를 이해할 사람들은 나를 포함한 ‘무비스트’들이거나 진지한 퀴어들 뿐일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남들에게 추천할 수 있다면 그 때는 분명 커트나 브라이언 같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타인들 앞에서 자신이 양성애자라 떳떳히 말하는 브라이언과 자기 기분대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커트의 세계관에 존경심을 가지게 된 지금 내게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자신들의 꿈과 열정을 바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던 그들(커트 코베인, 데이빗 보위)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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