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당시 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여중생들이 사망한 사건을 기억하시는지. 두 소녀는 장갑차에 의해 압사를 당하였고, 장갑차를 몰던 미군병사들은 ‘위대한 미국’의 위대한 ‘소파(깔고 앉는 것)’에 의해 정상참작을 받고 처벌을 면했다고 한다. 그리고... 분노한 한국인들은 월드 컵 이후 다시 한번 마음을 모아 시위를 벌이고 촛불을 켜주었다. 그걸 보고 미군들이 비웃는 장면들이 뉴스에서 여러모로 보도되긴 했지만.
정말 우리 한국 사람들. 이런 건 좋다. 단합. 부조리를 배제하고 정의를 지키자는... 근데 알고보니 한국 사람들은 ‘진짜 사람들’이었다. 바로 희생양을 요구하는. 2002년 하반기에는 더 큰 일이 생겼다. 바로 <007 어나더 데이>의 배경이 북한 인 것. 배경이 북한이다. 눈치 빠른 관객들이라면 007 시리즈가 특정 국가를 소재로 이야기를 펼쳐간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번 007의 적이란 말인가. 그렇다 영화에서는 북한 인민군이 007의 적으로 등장한다. (물론 인민군 중에서 독재를 일삼는 반란세력만.) 한국 사람들이 다시 분노하기 시작했다. 감히 우리 동포인 북한을 왜곡하려들다니. 널 희생양으로 삼겠다. 한창 두 소녀의 죽음을 이슈로 살던 한국인들은 007 영화가 나쁘다며 보러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들을 하였고, 재미동포 배우인 ‘릭 윤’을 매국노라 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 <007 어나더 데이>가 왜 욕을 먹어야 되는 것일까?
물론 영화에서는 북한이 많이 왜곡되어있다. 좀 야만적인 국가라야 하나. 한국말을 쓰니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한국사람이 다 그럴 것이다라는 인식을 하게 될 것이다. 특히 문대령(윌 윤 리)이 부하를 샌드백에 넣고 학대하는 장면이 가장 거슬린다 해야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007 시리즈만의 국가를 넘나드는 액션이 등장할 뿐 북한을 왜곡하는 장면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서툰 한국어 실력으로 더빙된 목소리가 걸리긴 하지만...) 게다가 이 영화는 두 소녀를 깔려 죽인 ‘미군’들의 고국인 미국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 영국영화다. 같이 영어를 쓴다고 소외시키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게다가 미국을 견제하면서도 같은 시기에 개봉한 <반지의 제왕>과 역시 견제될 줄 알았던 영국의 작품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도 국내 외국영화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둥 그야말로 ‘쌩뚱 맞은 일’들이 계속됐다. 정말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사람들의 국가 사랑은 너무 심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욕을 먹거나 불리하면 다짜고짜 밀어붙이며 시위하고 욕을 하는 걸 보는 외국 사람들은 뭐라 생각할까? 게다가 평소에는 북한에 신경도 쓰지 않는 한국이다. 같은 민족이라고 변명은 하지만 막상 탈북자들이 오면 님비현상을 보이며 내쫓으려 하고, 또 북한 어린이 돕기 자금 소식도 요즘은 조용하다. 게다가 통일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면서 북한이 욕먹는다 돕는답시고 영화 한편을 몰아세우다니... 한국사람들이란... 나 또한 한국사람이고, 매국노라는 소리가 지겨워 대놓고 욕을 하지는 않는다만 이 영화를 보지도 않고 욕을 한다면 그 사람들이야말로 욕을 먹어야한다.
전작들보다 거대한 자본과 기술로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 최고의 스케일을 자랑하였던 <007 어나더 데이>는 007 탄생 20주년 기념으로 영국에서 파티를 개최하고, 007 자동차 전시회를 열기도 하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많은 환영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만은 예외였다. 지금까지 한국에 들어오면서 관객들을 많이 확보하였던 007시리즈는 아무래도 다음 작품부터 우리나라의 미움을 살 것 같다.(한국이 배경이 아니더라도...) 그러면 자연적으로 국내에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고... 정말 한국 사람들 원망 스럽네...
아무튼 나 자신이 우려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007시리즈가 앞으로도 더 만들어졌으면 한다. 또 아직까지도 <007 어나더 데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번 볼 것을 권유하면 보고도 욕이 나온다면 할 말이 없지만 보지 않고, 욕을 해대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충고한다. <그 때 그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며 법원에 항소하듯이 이 영화도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한 작품 한 작품 나올 때마다 007 시리즈는 한 특정한 국가를 중심으로 스케일을 넓히며 전개해왔고, 더러는 얘기치 않게 그런 국가들을 조금이라도 왜곡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 007 시리즈의 스타일을 존중해주었으면 하며, 우리나라가 국제 정세에서 욕을 안 먹게 생긴 나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21세기가 넘었지만 아직 통일이 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소녀들의 죽음에 대한 항의를 목적으로 007영화를 소외시키던 사람들. 당신들은 억울하게 죽은 두 소녀의 이름을 기억하고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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