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3D 애니메이션의 왕좌를 서로 넘봐 온 드림웍스와 픽사는, 지금까지 여러번 맞장을 떠왔어도 한번도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이긴 적은 없었다. 드림웍스가 <슈렉>으로 압승을 거두는 듯 싶다가도 픽사에서 <몬스터 주식회사>를 내놓으면서 그에 못지 않은 인기를 얻었고, 픽사에서 <니모를 찾아서>를 내놓으며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대단한 흥행 기록을 세우다가도, 드림웍스가 <슈렉 2>로 보란듯이 우위를 점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두 회사가 끊임없이 대결을 펼치면서도 어느 한쪽이 뭉개지지 않고, 같이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각각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3D 애니메이션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지 싶다. 드림웍스가 성인 취향에 가까운 재기발랄한 풍자와 패러디로 승부했다면, 픽사는 애정어린 캐릭터들과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메시지로 이에 맞서는 식으로 말이다.
이번에 얘기할 영화 <샤크>도 드림웍스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화다. 우리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떠올려보면, 이 <샤크>는 그런 생각에서 거의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영화다.
깊고 깊은 바닷속, 그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크게 두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암초도시'에 거주하면서 평범한 삶을 꾸려가는 보통 물고기들과, 그곳에 가끔 출몰하여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곤 하는, 먹이사슬의 최고우위에 선 상어들이다. 고래 세차장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차 일을 하고 있는 주인공 오스카(윌 스미스)는 당연히 힘은 없고 말만 많은 보통 물고기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생활에 만족하는 대다수 물고기들과는 달리, 일확천금의 꿈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꾸는 야심만만한 물고기이다. 그러나 상사인 세차장 사장 사익스(마틴 스콜세지)에게 빚을 진 상태라 꿈만 꾸지 실천에 옮겨볼 형편은 못된다. 그러던 어느날, 빚을 갚지 못한 벌로 상어밥이 되어 묶인 오스카는 순진한 상어 레니(잭 블랙)를 만나게 된다. 레니는 원래 채식주의지만 아버지인 상어계의 거물 돈 리노(로버트 드 니로)에게 이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억지로 사냥을 하고 있는 상황. 레니의 형 프랭키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실랑이를 벌이는데, 그러다가 프랭키가 닻에 맞아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레니는 쇼크를 먹고 도망가버린다. 얼떨결에 죽은 상어 앞에 서게 된 오스카. 그는 이 상황을 이용해 자기가 상어를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고, 오스카는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되어 막강한 부를 누리게 되는데...
이미 우리는 <니모를 찾아서>를 통해 컴퓨터로 만든 바닷속 세상이 이렇게도 멋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샤크>의 바닷속 세상이 아주 참신하지는 않다. 그러나, <니모를 찾아서>보다 한층 더 인간 사회와 밀접하게 접목시킨 <샤크>의 바닷속 풍경은 더욱 현란하고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마치 영화에서 많이 봐온 미국 번화가 한복판을 그래도 물속에 옮겨 놓은 듯, 각종 광고들과 번잡한 교통, 화려한 고층 빌딩 등 그 현란함은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물 속에서 거품을 내며 흐느적거리는 물고기들의 행동들, 바닷속에 늘 있기 마련인 각종 부유물들은 사실적인 표현력 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빼놓을 수 없는 것 또 하나가 화려한 진용을 자랑하는 목소리 출연진이다. 오스카 역의 윌 스미스, 돈 리노 역의 로버트 드 니로, 오스카를 짝사랑하는 앤지 역의 르네 젤위거, 레니 역의 잭 블랙, 팜므 파탈 물고기 롤라 역의 안젤리나 졸리, 사익스 역의 마틴 스콜세지까지, 이름만 들어도 어지러울 만큼 화려한 이 목소리 배우들은 이 애니메이션에서까지, 그들 고유의 캐릭터의 특성을 보여주면서 낯익은 재미를 전달한다. 외모도 윌 스미스와 안젤리나 졸리의 두툼한 입술, 로버트 드 니로의 점, 마틴 스콜세지의 짙은 눈썹 등 상당수를 배우의 실제 모습에서 빌려와, 목소리만 듣는 것이 아닌, 배우의 얼굴도 함께 보고 있는 듯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심지어는 마지막에 주제가를 부르는 미시 엘리엇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물고기의 생김새도 실제 인물과 매우 흡사하다. 다만, 배우들의 캐릭터를 뒤집는다든가 하는 변화 없이 그대로 빌려온 면이 많은 거 같아 아쉽기도 하다. 윌 스미스의 수다쟁이 컨셉이라든가, 르네 젤위거의 조신한 이미지, 안젤리나 졸리의 섹시한 악녀 컨셉 등 말이다. 다만, 마틴 스콜세지는 진지한 영화만을 만들어온 기존의 거장 감독 이미지에서 벗어나, 흥분하면 부풀어오르는 다소 주책맞고 생뚱맞은 복어 캐릭터를 보여줘서 참 재미있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서 빠지면 섭섭한 것이, 엽기발랄한 풍자와 패러디다. 이번 영화 <샤크>에서도 그 장점은 여전하다. 유명 브랜드 갭(GAP)을 패러디한 '겁(GUP)', 코카 콜라를 패러디한 '코랄 콜라' 등 상표 패러디에서부터, 오프닝에 등장하는 <죠스>의 등장 순간 패러디, 해마들이 경주를 펼치는 <씨비스킷> 패러디, 상어 패밀리들이 무게잡으며 나올 때마다 느껴지는 <대부> 컨셉의 상황 등 영화 패러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문화를 패러디하는 드림웍스의 실력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또한, 한 순간의 거짓말로 과대포장되어 성공의 길을 걷는 오스카와 이에 열광하는 물고기의 모습을 통해, 인간 사회의 일방적인 영웅주의와 이를 더욱 부추기는 매스미디어의 유난스러움을 은근히 비꼬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마지막, 모든 캐릭터들이 세차장에서 함께 펼치는 주제가 'Car Wash'에 맞춰 춤추는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가 주는 즐거움은 여느 실사 영화를 능가할 만큼 통쾌하고 후련하다.
이 영화 <샤크>를 드림웍스의 전작 <슈렉> 시리즈와 비교하자면, 훨씬 미국적이다. 주인공이 수다쟁이라 그런지, 대사도 자막으로 따라가기 힘들 만큼 다소 많고(나도 초반에 빠르게 지나가는 대사들을 읽기가 다소 부담스러웠다), 패러디 부분도 미국 문화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웃기 힘든 부분도가끔 있다.(미국 가수들의 이름을 패러디한 '제시카 쉬림슨(제시카 심슨)'이나 '코드 스튜어트(로드 스튜어트)' 등) 그러나 이런 부분도 어디까지나 '가끔' 있는 것이니 보기 전부터 너무 큰 부담을 갖고 볼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이렇게 이 영화 <샤크>는, 풍자와 패러디, 성인 취향의 유머와 호화 캐스팅의 목소리 출연진 등, 드림웍스 애니메이션들이 지금까지 갖추어온 특징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전작들을 볼 때만큼 영화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재밌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작들보다 더 발전한 흔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시종일관 엽기발랄했지만, 마지막 피오나가 마법에 풀린 후에도 여전히 못생겼음에도 슈렉이 '당신은 아름다워요'라는 대사를 날리며 깊은 울림의 감동을 주었던 <슈렉>과는 달리 <샤크>는 이 정도의 감동은 없다. 마지막의 해피엔딩도 다소 얼렁뚱땅 넘어가는 듯하고 진부한 느낌이 없지 않다. 시종일관 풍자와 패러디로 나아가다 마지막 한바탕 파티처럼 즐거운 뮤지컬로 끝나는 방식도 <슈렉> 시리즈에서 많이 보아온 컨셉이다. <샤크>가 <슈렉>과는 또 다른 방향의 애니메이션이었다면, 조금 더 색다른 엔딩을 준비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보면서 즐겁긴 했지만, 이게 지겨워질 때까지 써먹지는 않았으면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약간의 단점을 열거했지만, <샤크>는 충분히 즐거운 영화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영화 전체를 수놓는 경쾌한 유머들,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들의 매력과 흥겨운 힙합 리듬의 음악들까지... 이만큼 엔터테인먼트적인 기능에 충실한 영화도 만나기 드물다. 다만, 이 영화를 분기점으로 드림웍스가 이제는 좀 더 전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도 너무 자주 먹으면 질린다. 픽사와 다르게 성인 취향의 풍자, 패러디가 담긴 애니메이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면, 이제는 그 길을 더 새로운 방향으로 닦아 나아가야 한다. 그게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더욱 강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원동력이다. 좋은 결과에만 만족하며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하다간 길은 구덩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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