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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난도질 하기(아마츄어평) 주홍글씨
goldmunt1111 2004-11-01 오전 8:09:10 2672   [8]
“악몽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트렁크에서 지옥의 피 냄새를 경험한 한석규의 독백...
나도 이 영화에 대한 악몽을 쉽사리 지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감독: 변혁(인터뷰 이후 2번째 작품)
주연: 한석규(기훈역), 이은주(가희역), 성현아(경희역), 엄지원(수현역)
원작: <거울에 대한 명상>과 <사진과 살인사건> 김영하작가

10월 29일 2004년 하반기 최대의 기대작이 개봉했다. 물론 최고 스텝과 최고의 배우와 최고 마케팅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흥분을 자아내게 했다. 자본주의 산물 중 가장 큰 덩어리 중 하나 말할 수 있는 영화 산업에 21세기가 열광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을 아주 화려한 포장지로 포장해준다는 것에 있다. 물론 이 영화는 아주 화려한 포장지로 자신의 흐릿한 모습을 감싸고 있다.

영화는 <거울에 대한 명상>과 <사진과 살인사건>이라는 두 소설을 큰 축으로 하는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 물론 19세기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호손의 <주홍글씨>와는 직접적인 관계를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주홍글씨”라는 어휘에서 오는 “타부”에 대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극중 여자 주인공은 스스로의 상황을 <주홍글씨>에 비유하며 자신이 낳을 아이에게 ‘펄’(주홍글씨에서 간통 후 낳은 아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를 희망하지만 호손의 작품과 밀접한 관계를 찾기에는 미흡하다.

연출자는 이미 중견 작가로서 입지가 확고한 김영하의 2편의 소설에서 각각 스토리와 인물을 재조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다. <거울에 대한 명상>의 기훈, 가희, 수현과 <사진과 살인사건>의 기훈, 경희라는 인물들로 이 영화는 그 기본 틀을 가지고 간다. 이러 내러티브는 많은 코드를 양상해내 흥미롭기는 하지만 관객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주게 된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같은 캐릭터를 이용하여 그 의미 관계가 상호 관련을 갖는 데에는 많은 영화적 관습이 필요하나, 이 영화는 그런 영화적 관습을 그리 지키고 싶어 하지 않는 듯 하다. 다른 면에서도 본다면 차라리 영화적 관습을 철저히 배제하여 또 다른 실험성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의 중첩된 이미지는 역할의 왜곡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기훈의 모습은 체계적으로 형상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야기도 체계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각각 다른 이야기의 다른 인물로 비추어지고 있다. 그런 어중간함이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흐름을 끊고 있다. 두가지 이야기의 연관성을 위해 연출자는 교체 편집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으나 이야기들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겉돌고만 있다. 이런 이유로 이야기 구조상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트렁크신에서도 감흥을 얻어내기가 시원치 않다. 물론 인간의 모습을 흑백논리 하에 파악하는 것도 무리가 있지만,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영화 속의 인물은 자신의 캐릭터를 정확히 표현해주는 것이 영화라는 상품을 소비하고 있는 관객에 대한 예의이자 이야기 구조를 더욱 명확하게 해주는 초석이다.

영화는 기훈을 욕망의 화신으로 묘사되고 있는 듯, 하지만 그의 사랑과 그의 일이 비정상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주 정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가희와의 사랑, 수현에 대한 마음, 경희에 대한 욕망 그런 것들은 지극히 평범한 남자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이다. 또한 현재의 결혼 제도에서 다른 이들에 대한 욕망은 금기시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연출자는 영화의 주인공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우리에게 어쩌면 일상일지도 모르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관객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에는 체계적인 내러티브와 인물 형상화의 부재때문에 힘에 부쳐 보인다.

영화 속 형사로서 “권총 분해 장면” 그리고 거친 말투와 페이스 무드, 다소 과장스러운 폭력들은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굳이 의미 부여를 하자면 할 수 있겠으나, 통일된 이미지를 구현해 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가학성이든지 아니면 강박의 한 표현이든지 말이다. 또한 사랑에 관한 부분에서도 가희와 에로틱한 섹스신 (솔직히 에로틱하지 않지만 연출자는 그렇게 봐주길 기대할 것이다.) 수현에 대한 배려, 경희와의 섹스 상상 등의 이 모습들이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여기저기 산개한 요소들은 기훈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작중 인물의 형성에서의 문제인지 아니면 두 이야기의 중복에서 오는 혼란인지는 명확히 구분할 수 없지만 이런 형상은 영화 전반적으로 2가지의 이야기를 하나의 인물로 끌어가려고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치명적이다. 이는 비단 기훈뿐 만 아니라 경희도 마찬가지이며, 가희와 수현과의 비교적 확실한 관계 설정까지도 모호하게 변질시켰다. 따라서 사건 전개에 있어서 관객들은 이 2가지의 이야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인지하여 호흡해 내기가 힘들어 진다. 결국은 2가지 이야기는 서로 겉돌게 된다. 큰 줄기의 기훈, 가희, 수현 이 삼관 관계는 기훈의 경희의 다른 이야기를 덮게 되고, 관객들은 연출자의 터무니없는 의미 부여에 조소한다.

이렇게 힘을 받지 못하는 이야기가 종국에 나오는 트렁크 신에서 허무를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

“<오아시스>에서 설경구가 문소리를 강간하는 장면을 보고 낄낄대며 보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고, 그 장면이 싫든 좋든 그건 각자의 취향이며, <타이타닉>에서 보여주는 그 맹목적인 희생적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마지막 트렁크 신에 대하여 허무와 조소를 느끼는 이유는 XG 그랜저의 트렁크가 안에서 열린다는 것, 그리고 6발의 총알의 아무런 일도 못했다는 것, 또 트렁크에 갇히는 것이 단순히 순간적인 쾌락을 위한 헤프닝 이었다는 것 등등이 아니다. 우리가 허무와 조소를 느끼는 이유는 트렁크에 갇히게 되는 그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얼마나 위험하고 위선적이고 이기적이었던 인물이었는지 아니면 지극히 평범하고 도덕적인 인간이었는지 또는 어떤 인물상이었는지 해석하여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화 속의 인물이 형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감화될 수 없고, 그래서 조소를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차라리 평범한 인물들의 도덕적 타락을 유기적으로 이끌어 낸 후 그들이 비참하고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을 연출한다면, 또는 비도덕적 인물들이 그 긍정적 사고의 전환으로 또 다른 행복을 창출하는 순간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을 연출한다면 오히려 낫을지 모른다. 이렇게 작중 인물의 모습이 정확히 형상화된다면 그것을 조소하며 볼 수 있는 관객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충분히 공감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영화자체에서 공감하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너무나 흐릿하고 미약하기 때문이다.

공감대를 충분하게 형성하지 못한 구조는 관객들을 감화시키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남발되고 있는 적절치 못한 디테일들 역시 관객의 마음을 영화에서 밀어내고 있다. 수현이 기훈의 첫 아기는 중절하고 두 번째는 중절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물음, 살인에 얽힌 인간의 이기적 모습을 연출하려 할 때 경희와 그녀의 남자의 로맨스가 왜 누드라는 왜곡으로 그려졌는지에 대한 물음, 그리고 충동적 살인에 대한 물음, 그저 강박관념의 산물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석연치 않은 총기 분해 후 합체 장면에 대한 물음, 그리고 전혀 팜므파탈 적이지 않은 여주인공들에 대한 시선의 과장과 감정의 과장에 대한 물음. 이런 것들은 충분히 영화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어떤 이들은 <살인의 추억>을 보면 흥분했고 <올드보이>에 혼을 놓던 사람들이 <주홍글씨>를 난도질하다면, 그들이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나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잊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록 웰메이드 영화는 아니지만 김기덕이나, 홍상수 류의 영화 관습을 지나치게 벗어난 영화이기 때문에 평가 절하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난 <플란다스의 개>나 <복수는 나의 것>이나 아니면 그들의 단편 <지리멸렬>이나 <심판>을 보면서 적어도 조소하지는 않았다. 변혁의 첫 작품 <인터뷰>를 보면서도 결코 조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홍 글씨>의 과장되고 유기적이지 못한 디테일과 서로 겉도는 이야기 구조는 이 영화를 조소하기에 충분하다. 99%를 파악하기 위해 1%에 매달렸던, 이 영화를 선택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려고 애를 썼던 필자 스스로도 조소의 대상임에는 틀림없지만 말이다.

“모든 유혹은 재미있다. 그것을 왜 피하겠는가?”라는 대사로 시작되는 영화는 “악몽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라는 대사로 끝이 난다. 결국 <주홍 글씨>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빠진 한 남자가 피할 수 없는 악몽을 겪게 되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남자의 악몽을 공감하지 못하는 관객들에게는 마케팅의 유혹이 악몽으로 끝나고만 영화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 즈음 경희에게 기훈은 묻는다.

‘사랑했습니까?’

경희는 말한다.

‘사랑하면 괜찮은 건가요?’

왜 이 대사들이 관객들의 조소 속에 고요한 외침이 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총 0명 참여)
저는 그 부분을 절망적 상황속에서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냈다고 생각됩니다만...   
2004-11-01 12:07
대다수의 사람들이 트렁크신에서 실망감을 느끼더군요.. 정작 한석규와 이은주가 가장 촬영히 힘들었다는 대목임에도 불구하구요..   
2004-11-0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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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2004, The Scarlet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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