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뱃살이건 타인의 뱃살이건 늘어진 뱃살을 바라보는 것은 불쾌한 경험이다. 늘어진 뱃살에서는 긴장과 변화는 느껴지지 않고, 권태로움과 진부함만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어진 뱃살을 보는 것보다 더욱 짜증스러운 것은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보는 것이다.
이렇게 권태롭고 진부한 영화는 늘어진 뱃살보다 더욱 짜증스럽다. 특히 이런 영화에 언론의 과도한 관심이 쏟아지면 짜증은 두 배가 된다. 거기에 마치 대단한 메시지라도 전달하려는 양 영화가 폼을 잡기 시작하면 짜증은 무한대로 증폭된다.
이런 류의 영화를 꾹참고 보기 위해서는 잠깐 의식의 끈을 놓고 생각없이 보아야 한다. 그런데 막상 영화는 남자 주인공의 입과 행동을 빌어 토크쇼라도 한 판 벌여보자며 나서고 있으니 짜증이 날 수 밖에...
애써서 만든 영화의 제작진이나, 출연 배우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정말 최악의 영화다.
작가나 감독이 혹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드러내고 싶었다면, 당신들은 영화 제작에 소질이 없으니 다른 진로를 빨리 찾아야 한다. 만에 하나, 여러 사정상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한 결과로 이런 졸작을 만들었다면 정말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해야한다.
극중 최지우가(영화를 하도 재미없게 봐서 최지우의 극중 이름도 생각 안 난다..) 마약이 일종의 해방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마약이 일탈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왕왕 있다. 100년전에 앙드레 브르통이라는 시인은 현실 순응주의를 거부하기 위하여 마약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제작진이 조금 괜찮은 영화를 만들고자하는 생각이 있었다면 최지우의 그 대사에 충실했어야 했다. 나름대로 도발적인 소재를 잡아냈다면 끝까지 관객들의 머리속에 폭풍을 일으키며 관객들의 일상에 파열음을 내고, 해방구가 되어야 했다. 관객들의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삶에 물음표와 느낌표를 계속해서 삽입했어야 했다. 앙드레 브르통이 마약을 통해 현실에 균열을 일으킨 것처럼...
영화는 진부함과 지루함 사이를 끝없이 반복한다. 한 남자와 세 여자의 중첩된 사랑은 제법 되바라진 소재이지만, 그 소재를 진지하게 풀어나갈 연출의 힘은 없다.
모든 것을 완벽히 겸비한 남자가 세 여자에게 접근한다. 이 남자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모든 여자들의 성적 환타지를 충족시켜 줄 만한 한 남자가 나타나서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들의 모습은 정말 진부함의 극치다. 그리고 그 진부함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영화의 전개는 끝난다. 이 정도면 허무하다 못해 화가 난다.
게다가 극중에서 이병헌은 어울리지도 않는 유치한 성담론을 읊어댄다. 이 영화가 내뱉는 성담론이 지극히 유치한 이유는 영화의 성담론이 이미 한물간 구시대 말놀음이기 때문이다. "인습에 얽매이지 말고 행복을 찾아라"라는 금언은 이미 "채털리 부인의 사랑" 이나 "자유부인"이 개봉되던 시기에 장안을 훑고 지나갔다. 금언이 좋긴 하지만 금언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신선함이라는 조건은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세 여자가 자매지간이며, 한 명은 유부녀라는 사실은 그나마 조금 신선하다. 하지만 이미 가족해체현상이 유행처럼 번지고있고, 바람난 유부녀는 너무나 흔해 빠진 소재인데 대체 이런 철지난 소재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니 만큼 편하게 보면 되는 것 아니냐구? 편하게 보고는 싶었으나 유치한 영화 속 애정행각은 나를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병헌의 쓸데없는 겉멋에서 로맨틱이 연상되고, 카메오들의 철 지난 만담(맷돌집안 이야기)에서 코미디의 감은 잡힌다.
그러나 영화판은 냉철한 프로들의 세계 아닌가... 이런 식의 어중이 떠중이 혼합 장르는 관객에 대한 모독이다. 로맨틱이든 코미디든 결코 만만한 장르가 아니다. 자신 없으면 하나만 확실히 잡자. 로맨틱 치고는 이병헌의 겉멋이 상당히 부담스럽고, 코미디 치고는 정말 안 웃긴다. 남자배우와 여자배우가 겉멋 좀 잡는다고 로맨틱 영화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카메오들이 농담 몇 마디 주고 받는다고 코미디라고 부를 수도 없다. (각종 시트콤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던 탁재훈이 코미디 연기에 도전한다. 탁재훈의 어설픈 연기는 미스캐스팅의 전형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게다가 뜬금없이 등장하는 김효진의 남동생은 난데없이 한국판 "아메리칸 파이"를 연출한다. 영화의 집중력은 한 없이 떨어지고, 관객들은 모욕감을 넘어선 허무감을 느낀다...
영화가 제대로 된 영화라면 이 영화는 일상속 권력으로 작동하는 가족주의에 제대로 딴지를 걸어야 한다. 이 딴지를 토대로 관객들의 구질구질한 일상과는 대비되는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애정행각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우리 삶이지만 그 밑바닥에 숨겨진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서 우리네 삶의 진실과 이면을 폭로했어야 했다.
어차피 이 영화가 밝은 웃음을 유도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모순적이고 가식적인 가족관계와 애정관계를 통렬하게 드러내 관객들의 쓴 웃음을 이끌어내었어야 했다. 제대로 웃길 자신 없으면 블랙 코미디 장르로 갔어야 했다는 것이다.
성에 관한 파격적 담론? 성에 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담론만 늘어놓을 것이라면 감독과 작가는 이런 것 찍으면 안 된다. 영상산업분야에서 계속 명함 내밀 의향이 있다면, 성에 관한 파격적 화면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상당수 있으니 그쪽으로 진로를 개척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홍보 담당자에게 몇 마디만 하자.. 베드신 나온다고 바람잡지 마라. 추상미, 최지우, 김효진의 섹스신은 신선하지 않고 추했다. 이미 영화의 전체 맥락이 힘을 잃은 상황에서 이런 억지 눈요기는 다분히 가증스럽다.
그리고 최지우의 욕설이 들을만하다는 식의 소문도 퍼뜨리지 마라.. 배우들의 색다른 모습이 아니라, 억지스런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똑똑히 보고왔으니...
간만에 돈 아까운 영화를 꾹 참고 보았다. 제작진은 나의 5,000원에 대해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라!! 제공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