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cocteau
|
2004-03-25 오전 1:03:18 |
1699 |
[6] |
|
|
-스포일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섯개의 에피소드 중 제대로 본 건 임순례의 <그녀의 무게>, 박광수의 <얼굴값>, 박찬욱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입니다.
<그녀의 무게>는 좀 심심한 에피소드입니다. 메시지의 전달방식이 부적절하다거나 설득력이 없다기보다 너무 정직하기 때문이지요. 딱 '인권'영화입니다. 전형적인 임순례식 주인공들도 구질구질한게 짜증나구요. 물론 이런 제 감상이 이 영화의 인권영화로서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굴값>은 비난이 자자한 에피소드지요. 충분히 납득이 가는 평가입니다. 영화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애매한 메시지와 황당한 결말까지, 그런 소리 들어 싸다, 싶군요. 하지만, 느닷없는 마지막 반전에 저는 오히려 이 영화에 호감을 갖게 됩니다. 요령있게 말하는 괴담은 언제나 즐겁잖아요? 귀신역을 맡은 정애연이라는 배우도 무척 매력적이군요. 박광수의 신작 <방아쇠>에서 정우성의 상대역으로 역시 귀신역을 맡는가 봅니다.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이 영화에서 가장 호평받은 에피소드였죠. 무전취식 때문에 경찰서에 끌려간 네팔 노동자 찬드라가 행려병자로 오해받아 6년 4개월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는, 어이없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마르께스의 단편 중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군요. 영화는 실제 그 사건에 관련되었던 혹은 그 대역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사실 그 사람들이 딱히 악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요. 그 사람들의 변명이 구차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들의 행동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지 어떤 인종적 반감같은 것 때문은 아니거든요. 이주노동자가 많지 않았던 93년도의 상황에서 이런 오해는 흔한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얼굴값>만큼이나 그 메시지가 애매한 것 같아요. 찬드라의 비극이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보이지는 않거든요. 결국 이 에피소드는 '인권영화'라는 자장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걸까요? 저 에피소드가 '인권'에 관해 말하고 있다면 그건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사회가 '정신병자'를 어떻게 격리하고 그들의 의사표현을 방해하는가에 관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경찰 역을 맡은 그 사람은 <올드보이>에서 사립감옥의 보스를 맡아 인상적인 깡패연기를 보여주었던, 그 배우 같군요.
http://cocteau.pe.kr
|
|
|
1
|
|
|
|
|
1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