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170억 원이라는 희대 거금을 쏟아 부어 탄생한 이 한국형 블럭버스터 영화는 영화의 전체를 감싸고 있는 전쟁이나 그 이념보다 전쟁으로 변해가는 두 형제의 내면을 더 깊이 조명한다.
극 중 진석의 캐릭터는 너무나 인간적이며 매력적이기까지 하지만 진태의 캐릭터는 너무 휙휙 변해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 그리고 진태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주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이 영화 전체가 진석의 시점에서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진태란 인물의 모든 면면을 볼 수가 없다. 물론 주연 배우들의 미흡한 연기도 한 몫을 한다. 한국에서 거의 시도된 적이 없는 초대형 전쟁영화라는 점이 약간의 부담으로 작용했을 지는 모르지만 조금만 더 장르에 충실한 연기를 했다면 관객들은 이 영화 속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영만 역을 맡은 공형진과 잠깐 카메오로 출연한 최민식과 김수로의 연기는 주연배우들이 채우지 못한 극의 활력을 모두 채우고도 남는다.
140억이라는 엄청난 제작비가 할애된 만큼 이 영화의 비주얼은 확실히 화려하다. 특히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남과 북의 대치 전쟁신은 박수를 쳐줘야 할만큼 뛰어나다. 관객들이 화려한 화면에 한참 취해 있을 때 즈음 영화는 숨겨 둔 하나의 비장의 카드를 더 꺼낸다. 영화 후반부 50년의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가 된 진석이 진태의 유골 앞에서 오열하는 장면은 모든 사람들의 신금을 울렸다. 마지막으로 꺼내든 카드는 바로 신파극의 색을 띈 카드다. 이러한 신파는 시대 물이나 역사 물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그것을 100% 잘 활용한 것이다. 조금 작위적이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감독의 이 정도 욕심은 낼 법도 하다. 눈물을 흘리며 본 영화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 영화는 보고 난 후의 여운이 적어도 1주일은 가는 영화다. 감독은 그것을 분명히 염두해 두고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단지 수준만 높은 화면과 화려한 주연배우들로 화제가 되고 우리에게 기억되어 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 편의 영화로 만든 영상물이다. 이 영화를 보며 흘린 눈물은 단순한 극의 감동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6.25전쟁을 겪은 우리 한 민족의 한스러운 역사가 같이 작용하여 더 큰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생각해서 앞으로 한국의 역사를 다룰 때는 더욱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자세 또한 신중했으면 한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개봉 전날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엄청난 규모의 월드 프리미어가 열렸다. 국내 영화인들은 물론 해외 여러 유명인사들도 대거 참석을 했다. 시사 후 반응은 매우 폭발적이었고, 특히 외국인들의 호응이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외국인들이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에 열광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전 세계에 태극기를 휘날리게 될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얼마 뒤에 있을 미국과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의 개봉은 분명히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이고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년 아카데미에서도 좋은 소식이 날아올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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