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본지 근 1주일만에 겨우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는것을 보니, 흥분이 덜했거나 아니면 감동이 적었든지, 그것도 아니면 너무 뻑이가서 정신을 못차린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그거 모두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흥행돌풍을 몰아가는 것이 분명 이유가 있기에 많은 사람이 찬사를 보내고 논쟁이 거센것이 아닐까요? 그런면에 대해서 인색해서는 안될것이라 생각합니다.
<태극기>는 분명히 돈을 많이 들인 티가 나는 영화입니다. 파편과 흙과 피와 살이 튀는 전쟁장면의 그 생생함에서 시작하여 최선을 다해 공을 들인 각종 특수효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동원된 물자와 인력에 이르기까지 관객을 압도하는 것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영화사상 개각도 촬영을 처음 단행한 것도 아니며, 컴퓨터 그래픽을 처음 쓴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주는 효과는 무엇보다도 생생하게 다가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의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에서는 예전보다 드라마가 더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극적 긴장감을 유지해나가면서 형제의 우애와 갈등과 그 해소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을 보여주고(어느정도는)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것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며, 그리고 이렇게 형제애에 지나치게 집중하다보니 다른 인물과 이야기를 놓쳐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하죠.
<태극기>는 분명 그 쟝르나 성격상 <전쟁영화>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한국전쟁을 소재로 삼은 영화입니다. 그간 최근에 <남부군>이나 <만무방>과 같이 빨치산의 저항과 국군의 토벌전을 소재로 삼은 영화가 있었으나, 본격적인 한국전쟁의 전과정을 그속에 담아내려고 했던 영화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지난 30여년동안 만들어지지 않았죠. 그리고 그동안 남북의 분단 상황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 대치의 지형(흔이들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은 변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냉전의 시대를 마감하고 최초로 만들어진 전쟁영화라는 점에서 <태극기>의 또다른 의의가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에 대해 그 사실적 묘사를 통해 많은 공감을 얻어낸것은 사실이나, 이것으로 한국전쟁의 실체적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는 볼수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 영화는 진태, 진석 두형제의 무모할 정도의 형제애와 그 갈등과 화해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 인해, 정작 이 영화의 주요한 소재이자 현재의 상황인 전쟁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스쳐가게 됩니다.
한국전쟁의 그 이념적 성격이나, 대체 무슨 연원으로 전쟁이 일어나게 된것인지 국내외 학계에서 많은 논의의 진척이 있었슴에도 그리고 실제의 영화관객들의 인식도 그만큼 성숙하고 또한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과정에 있슴에도 이것을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죠. 또한 전쟁기간동안 많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과 북에서 숱하게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 보도연맹 사건, 국민 방위군 사건등,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단지 뉴스의 헤드라인처럼 우리들 눈앞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말죠. 물론 이 모든것들을 해석해내고 그 결과를 담아내기에 영화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두형제를 둘러싼 사건의 전개가 이 영화에서 그렇게 집중해야만할 만큼 설득력이 있느냐라는 부분에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단지 그러한 일들(영신의 죽음을 포함해서 말이죠)이 양비론적 시각에서 보는 것처럼 영화속에 장치되어있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형 진태를 통해-그의 의도는 동생을 이 전쟁터에서 내보내기위한 것이었슴에도-전쟁의 광기속에 점차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있느냐라고 물었을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실제로 이작업에 성공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죠. 강제규 감독은 후반부에서 형 진태가 보낸 편지를 진석의 손에 쥐어줌으로서, 영화의 그간의 전개를 반전시켜 버립니다. 즉 두사람 사이의 갈등을 갑자기 무로 돌려버리고, 이제는 인민군으로 돌아선 형을 찾아 나서게 만들죠. 그럼 왜 감독은 2시간 내내 형제의 갈등을 조장시켰던 것일까? 결국 단지 오해하고 있었던 것인데... 여기서 극 전개상 최초의 의도는 그 본말이 전도되고, 이제는 전쟁속의 두형제가 아니라, 형제를 둘러싼 전쟁으로 즉 전쟁이 단지 들러리가 되어 버립니다.
자, 형이 미쳐가는 듯이 보이는 동안 헤드라인식으로 한국전쟁이 이랬다, 이리도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사건들이 있었다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이제 전쟁을 저만큼 밀어내고, 두사람의 눈물어린 화해에 집착합니다. 그렇게 피가 튀고 파편이 튀고, 흙이 튀어오르는데, 두 형제의 눈물어린 대화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그렇게 돌아설 것을 형은 동생이 죽은줄 알고 인민군에 자원입대까지 했는데 말이죠. 솔직히 이 이해안되는 상황이 눈물바다를 만드는 후반부를 장식하고 있으니, 앞에 본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구체적 사실을 따져가며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 이영화의 말미를 보고 가족을 위한 희생도 좋고 동생을 위한 우애도 좋으나 그것이 모두다 마치 생각없는 사람인 것인양, 맹목적인 인간이기에 그런 것인양 생각되도록 극이 전개된다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간의 영화기술의 발전으로 엄두를 내지 못햇던 전쟁에 대한 사실적 묘사에는 성공했는지 모르나, 중반부까지는 힘들게라도 전쟁의(한국전쟁이 아닌 전쟁 일반의) 광기와 인간의 광기가 어떻게 극적으로 표출돼는지 묘사해보려고 노력했는지 모르나, 후반부에서는 그 탄력을 거부하고 본말을 뒤집으므로서 개인의 문제로 최소한 축소된 파국을 시도하여 본질을 비껴가는 모습은 안타까울수 밖에 없습니다.
<태극기>가 이정표가 되어야지 신화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더 나은 표현과 정신이 살아있는 영화가 나올수 있을 테니까요.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비젼이 <쉬리>와 <JSA>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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