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았습니다. 꼭 보시기 바랍니다.
주제는 형제애라고 할 수 있지만, 형제애에 주목하면 영화의 반만 보는겁니다. 형제애를 통해 인간의 광기를 들여다 보아야합니다. 그것이 감춰진 진짜 주제입니다. 장동건과 원빈의 형제애는 남달랐다...는건 소재라고 보는게 더 맞겠습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광기. 아무 죄없는 사람마저 미치도록 증오하고 때려죽이게 만드는 인간의 광기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보편적 본성이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끊임없는 인간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영화죠.
오늘의 감동과 느낌과 많은 생각들은 마치 뭉쳐놓은 실타래같습니다. 뭉뚱그려져 있는 많은것들과 그에서 파생되어 생각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글을 쓰기에는 너무도 긴글이 될것이고, 또는 엉켜버려서 중간중간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내마음에 드는 감상평을 쓰지 못할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한나라당 김용균이 '태극기 휘날리며'를 용공영화로 규정하였더군요. 어처구니가 없죠? 그런데 매우 아이러니 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김용균이라는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김용균도 가해자이자 피해자 중에 한사람이죠. 마찬가지로, 군부독재하에 받은 고통으로 인하여 모든 기득권자들을 증오하시는 분들 또한 피해자이자 가해자입니다. 광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광기는 비인간적인 어떤 특이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사회적 동물로서 가지고 있는 하나의 본성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인간이 진화한다는 가정하에 이 광기만큼은 퇴화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끊임없이 상대방을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생각컨데 외계인이 지구인을 관찰한다면, 무척이나 특이한 동물일 겁니다. 어떤 순간이 되면 미친 듯이 서로를 죽여버리는, 주기적으로 미쳐버리는 동물. 실미도에는 관객모두가 적 또는 악 으로 규정할만한 대상이 등장합니다. 무책임한 국가권력이 그것이겠지요. 많은 헐리웃 영화도 대부분 악당이 등장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구도를 갖고 있습니다. 만화영화까지도 악의 무리들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적을 만들어내고 그 적을 악으로 규정합니다. 그것을 통해 단결하고 분노하고 싸웁니다. 그것이 인간이란 동물이 여지껏 험한 세상을 헤치며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자 본능인지 모르겠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그러나 좀처럼 분노의 대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고 그저 본능에 충실한 모든 이들이 서로를 증오하며 죽이고 죽어갑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 내부에 있는 광기에 대해 분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없는 관계로 어떤 영국인 관람객의 감상평으로 글을 맺을까 합니다. 이정도면 세계 어느곳에서도 먹힐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방금 태극기 휘날리며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이제 개봉한지 1주일이 지났기에 누구 다른 사람이 벌써 소개를 하지 않았나 모르겠군요. 태극기는 장동건과 원빈이 주연하는데 걸작이라고 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습니다. 강제규 감독의 2시간 30분짜리 이 전쟁 서사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하게 잔인한 모습으로 전쟁이 어떻게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전쟁이 스쳐간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윈드토커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태극기는 1300만불로 헐리우드 영화가 최소한 1억불을 들여야 할 영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태극기는 Vincent Vega의 캐딜락 뒤 좌석보다 더 피가 낭자합니다. (vincent vega는 존 트라볼타가 주연한 영화로 아마도 피가 많이 튀는 액션영화인 듯) 태극기는 드라마가 너무나 뛰어나서 전투장면 전체를 삭제하고도 여전히 만족스러운 영화가 될 정도입니다. (and dear lord there are many--맙소사, 전투장면도 엄청 많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이 시점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알고 계시죠. TaeGukki 는 south korea의 국기 이름입니다. 태극기는 가운데에 음양을 상징하는 문양이 있는데 남과 북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지금까지 한국 영화 중 출연자, 제작비에 있어 최대의 영화입니다. Harry가 올드보이 같은 한국영화에 대해서 수사법을 휘두르며 아시아로부터 지진이 시작되고 있다는 말을 하며 배회하는 화산연구 과학자 같았다고 해도 놀라지 마십시오.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한국영화 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한국영화를 찾아보고 Harry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 피할 수 없는 한국영화라는 화산폭발에 대비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젠 너무 늦었습니다. 이제 한국영화라는 화산이 폭발해서 용암이 분출하여 흘러 내려 그 길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포탄의 충격과 문화적 충격과 그리고 단순히 충격 그 자체에 대비하십시오. 지금까지 만들어진 영화 중 최고의 전쟁영화가 될지 모를 이 영화에 눈과 귀의 향연을 즐기면서... 김치우드가 도래했다. (Kimchiwood---헐리우드를 비유한 한국영화의 헐리우드적 성공이란 표현인 듯) 태극기는 부산스럽고 평화로운 종로거리에서 시작한다. 종로거리는 한국 서울에 쇼핑과 여흥의 거리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속에서 영화의 첫 장면이 정확히 우리가 영화를 보던 극장이 있는 장소와 같았기 때문에 우리에겐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영화는 종로에서 시작했고 우리는 종로에서 정확히 영화 속 장면의 54년 후에 그 자리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영화는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리워지는 전쟁에 말려들어 가는 형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베트남의 무시무시한 전조 속에서 소련 빨갱이와 양키는 동양인 인질을 말로 삼아서 체스를 두고 있었다. 그 형제들이 알지도 관심도 없었던 이념을 위해 전쟁터에 내던져졌을 때, 그것은 대리인에 의한 전쟁이었으나 두 형제에겐 갑작스럽게 너무나 가까이 들이닥친 것이었으며 바로 자신의 문제였다. 잘생긴 신인 배우 Bin Won이 연기하는 동생은 더럽고(원문에 dirty라고 쓰 있음...좀 그렇다) 가난한 서울의 한 일가족에서 유일하게 교육받은 식구로 18세의 어깨 위에 온 가족의 희망과 꿈을 지고 있다. 온종일 구두를 닦아서 동생의 학비를 대주는 형은 JDK가 연기하는데 아기같이 잘생긴 얼굴이 주윤발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간단하게 정리 하겠다. 남한 정권은 북한 정권을 물리치기 위해 모든 건강한 신체를 가진 남자들을 군으로 끌고 간다. 이제 열차가 출발할 상황이다. 동생은 군복무를 하는 것으로 선발되고, 형은 동생을 열차에서 내려 학업을 계속하게 하기 위해 열차에 탄다. 형은 군인들에게 얻어맞고 자기도 병역을 신청한다. 영화의 나머지 부분은 두 형제를 따라가며 형은 동생을 보호하고 고향으로 돌려 보내려 한다. 형은 자기가 훈장을 받으면 동생을 집으로 보내어 어머니를 돌보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모든 자살과 같은 임무에 지원한다. 겉보기에 간단한 스토리인 것 같지만 완전히 미칠 정도로 거대하고 피가 흠뻑 젖는 전투의 연속이다. 날 믿어주시오. 감독은 원래 야외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작전 벙커에 있은 지 조금도 안 되어 포탄이 비처럼 퍼부어 내리고 장면이 시체더미로 내몰린다. 전투장면을 찍는데 분명히 2톤의 개인화기 실탄을 발사했을 것이다. 지휘관들이 작전보드 펴놓고 머리 싸매며 작전을 짜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는 거의 없다. 전쟁의 최일선에서 무용을 자랑하며 싸우는 군인이 영웅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영웅은 없다. 어쨌든 군사적인 의미에서의 영웅은 없다. 사실상, 태극기의 시나리오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부담 가는 부분이 많았는가를 고려해 볼 때, 강제규 감독의 영화는 단연코 비정치적이다. 이 영화는 남북 양측에 어떤 평가도 하지 않는다. 그는 양측의 설교나 조작에 관심이 없다. 이 영화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전쟁의 희생자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가족, 친구 그리고 자기 몸뚱이이다. 형제간의 사랑은 훌륭하게 나타나고 이 영화의 심장이고 영혼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외형은 때리고, 찍고, 태우고, 부수고, 상처 내는 모습 속에 대부분 액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20명의 분대이든,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든, 압록강 이북에서 한국 땅으로 언덕을 넘어 3백만의 중공군 병력의 기습이든 간에, 액션과 시체는 누그러지지 않고 실로 거대한 스케일이다. 특수효과는 환상적이다. 특히 1300만 달러라는 제작비의 꼬리표를 머리에 새겨두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특수효과가 너무나 뛰어나서 당신은 특수효과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이상이 영화의 외면이다. 이제 껍질을 벗겨 보자. 당신은 한국의 가족의 구조와 관계에 대한 깊은 철학적 학습을 하게 된다. 형은 이런 표현이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기적일 정도로 너무나 이타적이다. 모든 것을 바치고도 형은 동생이 살아서 돌아가기를 바란다. 동생은 형이 항상 희생하고 자신을 돌보는 것에 감사한다. 그러다가 자기 형이 천천히 자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야수로 변해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정신적 고통, 내지 고문을 당하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영화 안 본 사람은 읽지 마세요)임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실제 구성에 중심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머리 속에 담지 않으려면 세 문단을 건너 뛰어 내려가서 읽어라. 이제 많은 공을 세워 지휘관으로 진급한 형은 인민군 포로들끼리 주먹싸움을 시킨다. 지는 자는 5일간 굶는 다는 규칙과 함께 말이다. 형은 새디스트가 되어 버렸고, 그것은 동생을 구해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목적에는 분명히 필요 없는 것이다. 포로들이 서로 싸우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자, 형은 포로를 차고 때린다. 동생은 이 순간 뛰어들어 포로 중 한명을 두들겨 팬다. 이 시점에서 나는 몸을 옆으로 기울여 옆 자리에 앉은 한국인 친구에게 물어봤다. 왜 원빈이 뛰어들어 포로를 때렸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국인 친구가 대답하길 처음엔 형은 재미를 원해서 포로들끼리 싸움을 시켰는데, 나중에 동생은 포로 둘 중에 한 명이 지게 되어 5일분의 식사를 굶게 되는 것을 막으려고 뛰어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입장은 달랐다. 내 생각에는 동생은 더 이상 형이 추락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형을 과거의 순박했던 인간으로 일깨우는 유일한 방법은 형에게 동생인 진석 자신의 영혼이 더러워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하는 길 뿐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 장면을 너무 깊이 읽어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장면은 타락의 한 가운데에서 고귀함을 탁월하게 그려낸 것이라고 보았다. (I may be reading too much into that scene but it seemed to me to be a masterful portrayal of the sublime amidst the wretched.) 이제 더 이상은 스포일러를 제공하지 않으려 한다. 이 영화 속에는 너무나 많은 재미있는 장치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나는 영화의 깊이와 인물관계의 내면이 여러분에게 인상 깊게 다가가기를 희망한다. 내가 불평이 있다면, 영화가 길게 느껴졌다고 말할 것 같다. 2시간 30분은 내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맹공격에 이은 맹공격에 이은 맹공격에 피로했고, 고도로 가슴을 쥐어짜는 드라마의 파도에 이은 파도에 이은 밀려드는 파도에 두들겨 맞았다. 한국인이 아주 감정적인 사람으로 이 영화는 자기 비판적인 점이 있고, 특히 그들의 역사를 요약하는 아픈 고통이었기에 강한 드라마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인 것 같다. 또 다른 불만스런 점은 나를 너무 자주 울린다는 것이다. 나는 남들이 있는 곳에서 우는 것이 질색이다. 어두운 곳에서라도, 그리고 내가 손을 긁는 척하면서 눈물을 슬쩍 닦아내는 데 능숙하긴 하지만, 어쨌든 남들 있는 곳에서 우는 것을 나는 질색인데... 마지막으로 이따금 태극기의 스타일은 선전필름 같다는 걸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 영화의 메시지나 의도가 아니라, 특정 장면의 짜 맞춤과 느낌만을 보기 때문에 스타일을 강조한다. 콜롬비아사가 관심이 있고 얘기가 오간다는 것 외에는 서방국가에 태극기를 수출할 지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 아무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콜럼비아사에 수출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스타일과 포커스가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서방의 관객들이 태극기를 즐길 만큼 충분히 성숙하기를 바란다. 나는 영국인이지만, 에딘버러 극장의 영국관객들이 와호장룡을 보면서 주인공이 몇 미터를 날아갈 때 낄낄 웃는 것에 대해 불만이다. 수퍼맨에서 매트릭스의 네오에 이르기까지 서양영화에서는 맨 날 날아다니잖나. 태극기는 4천5백만 한국인들이 세계를 향해 몇 년 내 뭔가 대단한 영화를 터드릴 거라고 알리는 경고의 종소리이다. 나는 다음에 어떤 한국 영화가 나올지 몹시 기다려진다. Fin. PS. 여담인데요, 뒷줄에 앉은 여학생은 소리내어 울더군요. 남자들은 "뭐 이까짓걸 보고 울고그래" 라고 말하면서 태연하려고 노력합니다. 많은 잘된점 보다는 옥의 티를 찾아내어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더 뭔가 우월해보일것같은 그런 심리가 있지요? 비슷한 심리로 우리는 ㅇㅇㅇ을 칭찬하기보다는 적당히 까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녀석이 더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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