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돌아오신다고 하셨잖아요. 50년을 기다려 왔는데...'
영화인생 50여년을 살아온 노배우(장민호)가 ‘태극기 휘날리며’ 마지막 장면에서 형이 남기고 간 유품인 만년필을 떨리는 손에 붙들고 내뱉는 독백이다.
한국영화계의 거목 장민호. 그의 50여년의 영화인생이 녹아있는 연기력으로 관객들의 가슴속에 화룡정점을 지긋이 그려 넣는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북받혀 메마른듯한 그의 독백 한마디는 본 영화와 우리나라 영화사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담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이 영화는 단면적으로 6.25라는 시대적 비극을 통해서 애틋한 형제애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형적으로 볼 수 있는 덧칠에 불과하다.
그 속에는 한 대상을 향한 열정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숭고한 사랑의 커뮤니케이션이 살아 있어 관객들과 교감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가.
수많은 죽음 앞에서 누가 선이고 악이 될 수가 있는가 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명제보다도 기필코 살아야 한다는 맹목적인 인간 본연의 의지를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바로 그 모습이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낙동강 두밀령 전투씬에서 15살의 어린 중학생의 모습과 한 솥밥을 먹으며 가깝게 지내오던 사이가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이 동시에 오버랩 된다.
그도 나와 같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심장의 고동소리가 정으로 화하여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회피하며 살고자 하는 욕망의 분출구로 이 영화는 뜨겁게 달궈지면서 시종일관 휴머니즘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휴머니스트 진석은 정의를 알고 있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 갇혀버린 현대인의 표상으로 분한다. 철저한 에고이즘의 답습자인 진태는 자신의 자아를 투영해왔던 대상이 한순간 상실되자 광기로 돌변하고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스토리와 작품성으로 보아도 세계인들의 정서와 일치하기 때문에 흥행은 이미 보장받은 셈이다.
이 영화를 줄곧 보면서 지금껏 보아왔던 헐리웃 영화, 일본영화, 홍콩영화 등은 일순간에 휴지통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천편일률적인 미국은 언제나 위대하다와 인위적인 색채가 강렬한 왜국영화의 본질은 둘째 치더라도 한국영화의 장구한 뚝심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제규 감독의 연출기법에 대해서 상당히 의견들이 분분한 것 같다.
카메라 연출이 어떻다느니, 헐리웃의 것을 그대로 답습했다느니.
적지 않게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식의 꼴불견 같은 비평을 위한 비평들을 보고는 한다.
하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스필버그 사단이 심혈을 기울여 TV 미니시리즈로 제작했던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작품성과 대작성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갖으며 우리 시대에 수준 높은 마지막 전쟁영화이라고 평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 들었다.
어느 누가 헐리웃 영화와 견줄 만큼의 영화를 만들었단 말인가.
그만큼 우리나라의 영화 연출기법이 발전되고 성장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싶다.
국제 시장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데 내 모든 것을 걸고 싶을 정도이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하고 박수쳐 주는 것이 진정한 비평이 아닌가 싶다.
아울러,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굳이 가타부타 말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모두가 완벽했고 동원된 엑스트라들까지도 이 영화의 주연급 배우들이었기 때문이다.
스크린을 압도했던 장동건의 광기어린 열연은 더 이상의 연기자 장동건이 아닌 사랑하는 동생을 잃어버린 형의
절규이자 몸부림이었다.
엔딩씬에서 장민호 선생님이 남기신 말씀을 다시금 상기해본다.
상당한 비약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이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2년의 시간이 아닌 5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나라 영화가 동남아시아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고 세계정상에 태극기를 꽂을 일만 남았다.
아마도 '태극기 휘날리며'가 우리나라 영화계의 깃발부대인 것 같다. ^^
마지막으로 강제규 감독을 비롯해 모든 스텝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정말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주어서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