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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chju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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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3 오후 12:2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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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의견같은 것은 정말로 쓰지 않는 편인데, 이번만은 예외일 것 같습니다. 다른 게시판에 썼던 글을 여기 다시 올리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들 하시길 바랍니다. 너무 주관적인 의견을 흥분해서 써서 죄송합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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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이 영화를 보고나서 악평을 쓰는 사람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든지,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무슨 말로 이 영화의 감동과 리얼리티와 전쟁에 관한 통찰력을 표현하겠는가? 내가 가진 언어능력이 부족함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어떤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하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일은 딱 한 번밖에 없었다. '시네마 천국'을 보면서 가슴 속에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흘린 눈물.... 이후 수없이 많은 외국영화들과 우리나라의 좋다는 영화들을 보았지만, 단 한번도 눈물을 흘린 일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서 눈물을 떨구었다. 그것도 '시네마 천국'의 눈물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눈물을....
전쟁이라는 것은 그 준비에서부터 진행까지 모든 것이 미친 짓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군대란 멀쩡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폭력과 복종과 광기에 휩싸인 인간으로 개조해 내는 합법적인 '광인 양성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군이 없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서 숨쉬고 있을 수 조차 없다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런 아이러니칼한 '광기'와 '필요'가 공존하는 군대의 현실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서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를 수 밖에 없다. 25년전 철원의 철책에서 군생활을 하였던 나에게 전쟁의 이미지를 통하여 전달하는 이런 메시지는 가슴 깊숙한 곳으로 메아리쳐왔다. 그 울림이 지금까지 멎고 있지 않다.
또한 이 영화는 영상과 음악, 음향효과면에서도 지금까지 본 어떤 영화보다도 뛰어나다. 1950년의 서울시가지를 재현한 첫 도입부에서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이 너무 깨끗하다'든지, 건물이 새로지은 것이 너무 확실하다든지 하는 '옥의 티'가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시가전의 모습이나 낙동강전투의 영상들은 명백히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시가전 양상을 차용한 것이나 오히려 그 원작필름들보다 우리나라 산하에서의 전투 모습을 충실히 복원한 것이였다. 산악전, 백병전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전투신을 할리우드 영화처럼 만들었다면 글자그대로 '오버'가 될 수밖에 없었을 터인데, 이렇게 깔끔하고 완벽하게 만들어 낼 줄은 몰랐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완벽한 '모방'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때가 잔뜩 묻은 철모나, 찌그러져서 당장이라도 국물이 새어나올 것 같은 반합같이 작은 소품들도 정말이지 세세히 신경써서 리얼하게 재현하였다. 군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것까지 미친 '세밀함'을 느끼지는 못하리라 생각한다. 영화 '진주만'에서 빌려온것이 확실한 전투기 공격과 추락장면은 다채널 음향효과의 진수를 보여준다. 날아오는 전투기가 마치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뭐니뭐니하여도 가장 압권은 '인해전술'로 몰려오는 중공군의 모습을 컴퓨터그래픽을 통해서 재현한 장면일 것이다.(설마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동원한 것은 아니겠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적어도 수만명은 되어 보였다!) 이건 한국 영화기술의 '승리'라고 말하고 싶다.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압도적인 전쟁신과 '진주만'의 역동적인 폭격장면과 '메트릭스'의 입체적인 음향효과가 이 한 영화에서 모두 살아나서 움직이고 있었다. 엄청난 완성도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진정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건강하고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반전의식'의 메시지도, 외국의 어떤 영화보다도 뛰어났던 기술적인 완성도도 아닌 순수하게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인간의 본태적인 감성'에 있다고 생각하다. 전방에서 군생활을 하였던 모든 이는 영하 수십도의 추위에서 근무를 서면서 후방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한다. 자신의 안위와 출세만을 생각한다면 견딜 수 없는 상황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견딜 수 있다. 한국전쟁때의 선배들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싸웠다는 것을 이 영화는 소름끼치도록 리얼하게 보여준다. 거기에 무슨 '이념'이나 '이해'가 필요하겠는가? 내 동생, 내 형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히 미칠 수 있었다. 그렇게 미친 상태로 지난 50여년을 살아왔다. '내 모든 것을 다 던져서라도 기꺼히 지킬 수 있는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이런 건 휴머니즘도 뭐도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가지고 있고,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본태적인 감정이다. 이런 걸 정면에서 걸고 넘어가는데 울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아니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면 그건 사람도 아니다! 소중하게 지켜야만 할 무엇인가를 갖지 못하였다면, 그의 인생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나에게 우리가 '지켜야할 누군가와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뛰어나고 완성도가 높은 감동적인 영화이다. 돈이 아깝기는 커녕 10배가 되더라도 기꺼히 내고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아마 외국의 관객들에게도 비슷하게 호소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영화가 '흥행'이 안된다면 우리나라 관객들의 수준이 낮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최고이다. 말로서는 도저히 그 감동을 표현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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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위에서 글을 올렸는데, 한 말씀만 더 드리고 들어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이어서 적습니다.
이 영화에 대하여 여러가지 비판이 있지만, 가장 많이 나오는 말들 중에 하나가 '줄거리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동생을 지키기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평범하였던 구두닦이에 불과하였던 진태(장동건 분)가 목숨을 걸고 혁혁한 무공을 세워서 태극무공훈장까지 받는다는 설정과, 이런 형에게 강하게 반발하면서 사사건건 형과 대립하는 동생 진석(원빈 분). 또한 약혼자였던 영신(이은주 분)이 보도연맹사건에 휘말려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고, 동생마져도 죽었다고 생각하게 되자, 북한에 투항하여 인민군의 '깃발 부대장'으로 전쟁영웅이 되는 진태(장동건 분)의 모습. 이런 것들이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줄거리에 대한 비판의 주류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태극무공훈장'을 받거나 '인민군의 영웅 깃발 부대장'이 되는 설정 두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독하게도 '군대'와 '전쟁'의 실상을 리얼하게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상상을 초월한 비참한 상황에서 서서히 공포와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집단적으로 마비되어가는 상황을 평범한 일상만을 겪어본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비쳐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혹 군생활을 좀 옛날에 심하게 한 사람들이라면 기억날 것입니다. 매일매일 계속되는 구타와 욕설과 인격적인 모멸감에 치를 떨면서 나를 못살게 굴던 고참들에게 가졌던 분노와 증오심과 적대감을 말입니다. 대개의 경우 그런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적대감은 자신보다 약한 이들, 집단에서 따돌림을 받는 이들에게 향하게 됩니다. 합리적, 이성적인 방법으로 이런 '광기'를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비합리적으로 풀게 되는 것이지요. 군대에는 소위 '짱돌', 혹은 '고문관'이라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훈련병시절 체력이 약하거나, 성격이 가늘어서 군생활의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들이지요. 사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군집단속에서 유일하게 '이성적'이였던 사람들은 그들밖에 없었을 수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노와, 증오심과 적대감으로 꽉 차있는 이들에게, 자신만 홀로 분노하지도, 증오하지도, 비합리적이 되지도 않는 사람은 '이방인'일 뿐이지요. 그래서 그들을 향하여 모두의 적대감이 집중되고, '집단적인 따돌림'이 생기게 됩니다. 군대라는 집단은 교묘하게 이런 감정을 조장하고, 그것을 '적개심'이라는 이름으로 '주적'인 북한을 향하여 돌리지요.
이 영화에서는 이런 상황에 몰린 군인들의 심리상태를 소름끼치도록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분노와 증오와 적대감의 대상이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 인민군'이라는 '적'을 향하여 분출된다는 것만 다를 뿐이지요. 사실 다들 미쳐가는 가운데 홀로 미치지 않고 있는 진석(원빈 분)이야말로 요즘말로 하면 '고문관' 혹은 '짱돌'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형에대한 맹목적인 분노을 품는 동생 진석의 모습이나, 동생과 약혼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적군에 투항하여 국군들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는 진태(장동건 분)의 행동도, 그가 분노와 증오와 적대감을 어디로 발산할 수 없어서 미쳐가는 중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석이나 진태나 내면에 가득찬 회의와 분노를 누군가를 향하여 분출하여야만 비로소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그런 상황에 몰려 있는 것입니다. 진석이 진태에게 반발하면서도 다시 형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것도 그들이 처한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사실 이런 깊은 심리적인 관계까지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는 이가 몇이나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군기빠진 군대'를 다녀온 세대들, 아아니 그나마 그런 군대조차도 가지 않고 육방이나 공익으로 근무한 이들같으면 절대로 이런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 없겠지요. 군대나 전쟁을 생각도 하지 않고 살고 있는 여성들 같으면 더군다나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한마디로 '줄거리의 개연성이 없다'는 비판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말이지요. 그런 비판은 극한의 상황에 몰린 이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이해가 없는 가운데 현실에 대한 짧은 경험만을 가지고 하는 즉홍적인 문구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영화 최대의 강점은 여러분들이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는 바로 그 '비합리적이고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그 줄거리의 설정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더 이상 리얼하게 줄거리를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끼신다면 그런 말을 하는 이의 현실인식능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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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2004, TaeGukGi: Brotherhood Of War)
제작사 : 강제규필름 / 배급사 : 와이드 릴리즈(주),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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