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는 영화를 볼 때, 형식이라는 껍데기에 중독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영화들은 잘 만들어진 한편의 기계적인 형식미의 절정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가 나올 때 마다 그렇게 대접을 받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철저한 형식미와 스케일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이 든다. 그건 일단 스토리나 시나리오에서 나오는 삶에 대한 치밀한 철학적 사유와 사람에 대한 깊은 성찰같은 것은 차치하고 얼마나 그럴듯하고, 그럴듯한 설정에 얼마나 웅대한 스케일을 갖고 있는가 그래서 얼마나 볼거리로 우리의 눈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인가에 우리의 영화보는 눈이 중독이 되어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건 영화를 단순한 영화이상의 그것이 아닌, 차가운 금속같은 형식미와 기교의 절정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물론, 그것도 그만의 가치가 있겠지만 ) 그 중독성이 영화를 더 이상 영화답게 보지를 못하게 하는, 아니 헐리우드 영화를 통한 그 중독성이, 마치 쇼와 같아서, 영화라는 것에 대한 편향되고 획일적이고도 단순한 시각으로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자고로 그림을 볼 때도 그렇고, 예술작품을 볼때도 그렇고, 그것이 보는 사람이 보고 좋다면 그게 바로 좋은 작품이라고 했다. '태극기...'가 무슨 전시회나 서커스쇼 같아서 리얼리티 정도가 어느 정도이고 스케일이 어느 정도이고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영화보기가 거기에서 머문다면 이 얼마나 지극히 기계적인 생각일까.
영화가 사유하고자 했던 것들,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도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이 땅의 비극,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것들, 잃어버린 우리민족의 가족애, 지금도 이념으로 유일하게 분단된 비극적인 조국에서 사실은 그 비극속에 아픈 이데올로기보다 더 아픈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어야 했던 한국민의 슬픈 자화상. 바로 그 시대를 가슴에 묻고 살았었단 말인가싶은 우리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들...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 이야기 할 때도 그것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던 잊혀져가던 우리의 이야기들 전쟁이 강한 자들의 역사이고, 승자의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겪어야 했던 그 전쟁에서 말도 못하고 죽어야 했던 그 수많은 우리들의 죽음을 우리들의 이야기로 이렇게 펼쳐 내놓을 수 있다는 게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그 비극이라는 시대를 접고 결국 아이 셋과 사랑하던 동생을 살려낸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에 마지막 장면, 그 폐허속에서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그 일상이 지금의 우리의 일상으로, 전쟁의 참허를 딛고 일어서 있는 지금에 와 있는게 아닌가. 지금의 우리의 자화상을 이렇게 우리 식으로 우리 사람이 우리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을 대체 다른 영화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런 시도가 없었겠는가마는 적어도 헐리우드에 익숙해진 우리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의 어색함을 제외하고는 우리를 놀라게 할 정도의 사실성을 가지고 나왔고 거기에 전쟁이라는 볼거리 많은 설정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서 전쟁은 그냥 잔인한 광기일 뿐이라는 것을 놓치않고 살려가는 감독의 힘이 어찌 이전 영화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무엇보다 정말 시퍼렇게 살아서 꿈틀거리는 그 캐릭터들, 자칫 스케일과 볼거리에 치중하느라 죽어버리거나 지극히 작위적고 감상적이기 쉬운 캐릭터들이 살아서, 변해가고, 미쳐가고, 그러다가 가족에 대한 피끓는 사랑이라는 일관된 가치를 잃어 버리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주면서 갖게 되는 그 절절한 이야기를, 머리보다 가슴에 절절하게 파묻혀 전쟁씬이 외소해 보이던 우리들의 삶에 이야기를 어찌 박제화된 외국 영화와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영화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머리가 움직이기도 전에 가슴이 먼저 절절하게 두근거리고, 뜨거운 피가 "콸콸" 샘솟아 내가 사는 삶이 새삼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보이고 사랑스러워져 보이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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