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끝나고 관객들은 하나 둘 다 빠져나가도록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모든 자막은 다 올라가고, 음악까지 끝이나버린 그 시간까지 나는 그렇게 앉아 있어야만 했다. 순간, 피터팬을 보고 이미 40여 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생각났다. 정신없이 나왔더니 벌써 서현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고, 서정이는 걱정이 가득한 모습으로 엄마가 나와야 할 제2관 입구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지친 얼굴이었다. 엄마를 보자마자 화를 내려던 서정이가 얼굴빛이 달라졌다. 눈이 빨개진 엄마의 얼굴 그리고 그 순간까지 눈물을 닦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었는지 계속 왜 그러느냐 묻기만 했다. 무슨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야 아니야만 되풀이했다. "모르겠다 엄마도,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지."이렇게 이야기를 해 놓고 나는 또 통유리창앞에 서서 먼 하늘만 바라보며 그렇게 눈물을 닦아야 했다.
참 슬프다. 같은 핏줄끼리 피터지는 전쟁을 하고, 서로 죽이고 죽는 그 무서운 짓을 왜 해야만 했는지 목놓아 묻고 싶다. 서울. 1950년 서울의 봄은 가난했지만 희망이 있었지 싶다. 구두를 닦으며 구두를 만들며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는 형 진태의 마음도, 대학생이 되기를 꿈꾸는 중학교5학년 진석이의 마음에도 꿈은 부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열병으로 귀가 멀고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와 함께 국수집을 하는 진태의 약혼녀 영신의 가슴에도 미래는 분명히 밝고 환했을 것이다.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이제 겨우 자리를 잡고 요동이는 봄기운이 살며시 번져가려는 그 찰나 전쟁은 예고도 없이 터지고 말았다. 누가 빨갱이이고 누가 국군이란 말인가! 보리쌀을 얻기위해 보도연맹에 가입한 영신이를 빨갱이라는 죄목으로 꼭 죽여야만 했을까? 이건 영신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싸인만 하면 보리쌀 한 됫박을 준다는데 누가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친정 큰어머니는 지금 103세 이다. 두 아들이 전쟁중에 죽었다. 아니 북으로 넘어가 지금 살아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큰어머니를 두고 방안공무원이라 부른다. 가만히 있어도 한 달이면 거금의 월급이 나온다는 것이다. 가슴에 묻은 자식의 한을 어쩌라고, 자식의 죽음값으로 받는 그 피비린내 나는 돈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왜 한이 많은 민족이라 말하는지 왜 우리민족은 늘 이렇게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하고, 늘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눈물을 삼켜야 하는 지 그 이유는 분명해졌다. 막연하게 들은 전쟁이야기는 옛날이야기였고, 전쟁을 테마로 읽은 권정생님의 '몽실언니'나 '점득이네' 그리고 박완서님의 소설 몇 권으로는 실감할 수 없었던 것을 나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충분히 피비린내나는 슬픔이 아픔이 어떤것인지 알게 되었다.
전쟁은 없어야 한다. 이 지구상에서 전쟁은 사라져야 한다. 형제가 싸워야 하는 그 아픔이 어떤것인지.. 한 핏줄이 싸워야 하는 그 슬픔이 어떤것인지 우린 처절하게 느끼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2004.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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