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아직 안 본 분들에겐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유념하시길...
영화에 그닥 관심을 두지 않은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태극기 휘날리며>가 드디어 시사회를 통해 공개되었다. 그리고 적쟎은 기대속에 이 영화를 기다려왔던 나에게 <태극기 휘날리며>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모습이었고, 덤으로 눈물을 참아가며 봐야할 정도의 진한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기대했다. 과연 헐리우드 전쟁영화 못지않는 우리영화가 나올 것인가. 우리 돈으로 천 억이 넘는 제작비를 투여하는 헐리우드 영화와 비교해서 150억이라는 단촐한(?) 제작비로 얼마만큼의 완성도 높은 전쟁영화가 나올 것인가.
결론은 150억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장면장면의 연속이다. 80억을 어디다 썼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돈 들인 티가 안나는 <실미도>에 비하면(물론 실미도 세트제작, 말타 해양촬영, 뉴질랜드 해외촬영 등으로 돈 들였지만), 150억으로 1500억의 효과를 보여주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은 분명 헝그리 정신 그 자체였을 듯 싶다.
따라서 이 영화가 나를 감격시킨 것은 실감나는 전쟁장면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과거 한국의 전쟁영화나 총격 장면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총을 쏘면 총구에 화약연기만 가득한 어설픈 장면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의 총격장면은 그 동안 헐리우드 전쟁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총탄이 날라가는 광경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특히 총탄이 날라가는 모습은 야간전투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데, '피융~'하는 총탄소리와 함께 빠르게 날라가는 총탄을 보고있노라면, 실제 전투현장에 있는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또한 인상적인 전쟁장면은 <블랙호크다운>의 모가디슈 시가지 전투와 맞먹을 정도의 평양 시가지 전투는 너무나 사실적이었으며, <진주만>의 전투기 폭격 장면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영화 마지막 두밀령 고지 전투에서 전투기 폭격장면은 CG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로 훌륭하게 연출해냈다.
어쨌든 계속 돈을 강조하게 되는데, 150억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헐리우드 전쟁영화에 익숙해져있는 우리들에게 헐리우드와 비교하여 뒤떨어지지 않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분명 자랑스러워 할만하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흡사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전개방식처럼 영화 앞뒤에 전쟁에 참여했던 노인이 등장한다. 이 노인은 한국전쟁때 형(장동건)과 함께 전투에 참가한 동생(원빈)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있는 한국전쟁의 시대상황을 두 형제를 통해 보여주려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그렇듯이 연기자 보다는 스케일 있는 화면으로 관객들을 앞도하기 마련인데,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영화이면서도 전쟁의 소용돌이속에 휘말리는 두 형제의 운명을 보여주는 드라마라는 점은 결국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이 보여준다.
따라서 6.25라는 전 국민이 공감할 보편적 소재는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다. 6.25를 경험했건 그렇지 않았건...우리는 한국전쟁의 쓰라린 상처를 기억하고 있으며,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의 흔적들을 느끼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런 한국인의 정서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영화다. 영화의 마지막, 전사한 진태(장동건)가 유골로 오버랩되면서 노인이 된 동생이 흐느끼는 장면은 정말이지 가슴이 뭉클할 정도이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흐느낄 수 밖에 없는 그 장면...그 짧은 순간에도 난, 여전히 분단의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의 상황이 떠올랐고, 가까이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통해 들었던 폭격에 돌아가신 친할머니, 전쟁중에 병에 걸려 어린나이에 죽은 얼굴도 모르는 고모 이야기 등을 통해 나 또한 전쟁의 상처를 안고있는 후손이라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왔다.
강제규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진지한 문제의식이나 철학적 메시지 대신 그리고 이념대립이나 이분법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순수한 형제애를 통한 휴머니즘을 우리의 가슴속 깊이 심어주었다. 이 영화가 걸작 반열에 오를 영화는 아닐지 모르나, 분명 한국영화의 새로운 획을 긋는 작품이며, 전쟁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두루 전해주는 수작임에 분명하다.
그래도 몇 가지 아쉬운 점.
- 두 형제의 이야기에 집중됨으로 인해 주변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이 조금 미흡하지 않았나 싶다. 따라서 정말 실감나게 표현했던 당시 시대상(서울 시가지 모습, 평양 시가지 전경, 피난 행렬 등)을 좀 더 길게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CG컷이기 때문에 길게 보여줄 수 없었는지 몰라도.
- 뛰어난 CG 장면임에도 마지막 두밀령 고지 전투에서 전투기 폭격 장면에서 전투기가 CG라는게 약간은 표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CG라서 그런지 하늘에 나는 전투기가 너무 많아서 현실감이 좀 떨어졌다. 아님 그 당시 실제로 하늘을 가릴 정도로 많은 전투기가 비행했었는지 몰라도.
- 한국전쟁을 둘러싼 너무 빠른 전개는 아니었는지..영화를 보다보면 정신없이 한국전이 터지고, 낙동강 전투, 평양 시가지 전투, 중공군 개입, 두밀령 고지 전투..등등, 따라서 계속된 전투장면에 긴장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
- 스토리 전개상 개연성 부족이 곳곳에 보인다. 총탄이나 포격은 진태(장동건)를 계속 피하고, 진태는 마치 람보처럼 전투를 하며, 진석(원빈)이 북한군이 된 진태를 찾아 적진으로 간 장면에서 어찌된 일인지 북한군은 국군인 진석을 보고도 가만히 놔둔다.
- 너무 웅장함 일변도의 사운드를 보여주는 음악과 일부 장면에서 타악기를 쓴 듯한 음악사용은 화면과 맞지 않는듯 보였다.
- 전쟁장면에서 카메라를 너무 흔들지 않았는지, 물론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효과를 누리기 위해 헐리우드에서 쓰는 비싼 진동카메라 대신에 독창적인 기법으로 이미지 쉐이크에는 성공하였지만,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피아 구분이 없을 정도로 카메라를 흔들어 대는 것 같았다.(예전 <쉬리>때도 총격장면에서 카메라 정신없이 흔들어 대더니 말이다.)
어쨌든, <쉬리>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던 강제규 감독의 신작 <태극기 휘날리며>가 이제 관객들에게 선보여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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