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 1950년 6월 25일. 그 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잊혀져 가는 우리의 피 흘린 역사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소재로 전쟁이 선택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태극기 휘날리며>란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전쟁 영웅에 대한 자긍심이나 고취, 전쟁의 잔혹함이나 비참함을 통한 무서움, 그리고 전쟁의 원인. 아마도 전쟁 영화는 하나의 영상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무언가를 우리의 손에 쥐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전쟁 영화들이 이 모든 것을 담고 있지 않을뿐더러 무언가를 손에 쥐어주지 못하는 영화들도 존재한다. 어떤 부분에 집중을 하고, 어떤걸 주려고 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모습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진다. 전쟁이라는 공통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웬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6. 25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6. 25라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며, 무엇을 손에 쥐어주고 있을까. 적어도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는 어느 한 부분만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 앞에 나타나진 않은 듯 싶다. 비록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작은 허점을 드러내주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아주 단란하고 소박한 가족을 소개하며 시작하고 있다. 진태(장동건)와 그 아우 진석(원빈). 그리고 진태와 결혼할 영신(이은주). 그리고 이들의 가족들의 화목한 모습을 다루고 있다. 전쟁이라는 것이 이 모든 화목과 즐거움을 앗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 것 같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을 하여 이 가족이 전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런 의도는 너무나도 눈에 보이지만, 보는 사람에게 충분히 다가설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 영웅을 다루고 있진 않지만, 영웅적인 모습을 많이 비춰주고 있다. 피난 중에 전장으로 끌려간 진태와 진석. 오로지 진석만을 위해, 진석을 제대시키기 위해 무공훈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그 하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진태의 모습. 분명 끈끈한 형제애를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나 거리감은 참 많아 보인다. 단순히 진태의 영웅적인 측면이 너무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또한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이들 형제 사이의 감정 변화이다. 진태의 영웅적인 행동에 진석의 감정은 아주 다양하게 변화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똑같은 감정으로 형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진태와 진석, 이 둘만의 대화로 설명을 해주고자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방법을 선택하고 있지만, 적어도 배우들이 이런 감정 변화에 충실히 따르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가끔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도 형제 사이의 감정 변화를 표현해 주었다면, 진태와 진석이 보여주려 했던 형제애는 살아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전쟁의 비참함과 잔혹함 역시 가족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에 충분히 할애하지 못하면서 이 부분 또한 많이 상쇄되고 있다.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은 전적으로 이 부분만을 노리고 있다. 전쟁에 대해 전혀 보여주고 있진 않지만 전쟁으로 인해 보통 사람들의 피폐해진 생활상을 그려내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이런 면모를 확인하기엔 너무나도 작다. 생각해 보면 영신이 죽을 때 부르짖던 그 몇 마디와 살아 돌아온 진석을 보고 말 못하는 어머니가 보여준 행동이 전부이다. 가족을 시작으로 전쟁을 보여주고자 했던 그 의도. 너무 부족하거나, 또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이렇다고 하여 <태극기 휘날리며>를 허공에 돈을 뿌렸구나라고 하지는 못할 듯 싶다. 분명 <태극기 휘날리며>는 수없이 들어간 돈의 값어치는 톡톡히 해내고 있다. 영화가 보여준 리얼한 총 싸움에선 고이는 손바닥의 땀을 흠씬 닦아 내기에 바빴으니 말이다. 꼭 전장에 실제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잔인하게, 잔혹하게 비춰지고 있다. 예전의 딱총이나 화약 총으로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었다. 또한 심하게 요동치는 화면에 멀미가 날 정도로 육신이 눈앞에 다가오기도 한다. 한국전쟁임을 학인 시켜주고, 그 시절을 상기시켜주는 갖가지 장비나 건물의 모양새는 입이 딱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가졌던 또 하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전쟁의 원인(전쟁이 처음 시작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다. 전쟁으로 인한 살상이나 잔혹함, 그리고 그에 따른 공포.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전쟁은 발생했으며,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전쟁 영화 중에 이를 전면으로 다룬 영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하지만 우습게도 조금이라도 원인에 대해 다루지 않는 영화 또한 없다. 적어도 개인적인 생각에선 이렇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역시 전쟁의 원인을 아주 조금 드러내고 있다. 아무런 명목도 그리고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전혀 관계없는 자들이 실질적으로 전쟁에서 서로를 죽이며 하소연하는 말들이 대변해주고 있다. 영화 속 공형진의 말처럼 틈틈이 놓치지 않고 드러내주고 있다.
2004년의 최대 기대작. 아마도 이 영화를 두고 이 말을 한다고 하여 어느 하나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오로지 머릿속은 <실미도>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다름 아닌 그 흥행 때문이다. 엄청난 흥행으로 한국 영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그 기록을 <태극기 휘날리며>가 넘을 지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이다. <실미도>가 우리에게 요구했던 영화에 대한 몰입. 웃음에서 비장미까지 이끌고 갔던 그리하여 결국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눈물을 짜게 만들었던 그 힘을 죄송스럽게도 <태극기 휘날리며>는 따라가지 못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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