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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독한 악몽을 꾼 적이 있습니다. 군대를 제대한지도 꽤 되었건만 저는 군복에 소총을 들고 있었습니다. 전쟁을 겪었을 리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분명 적과 대치하고 있었고, 적군의 기세에 밀리고 있었습니다. 적의 총부리가 나의 목덜미까지 들이밀어 졌을 때 그 시커먼 총구는 피를 부르는 것 같아 오금이 저려왔었죠.. 그 꿈은 전날 보았던 영화와 전쟁에 관련된 옛 기사를 들춰 본 댓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 당시 느꼈던 지독한 두려움 이상의 그 무엇은 깨면 사그라질 꿈속의 망상이었지만 당시 전쟁터에서 싸워야 했던 군인과 피난 행렬에 몸을 맡긴 아낙네와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와 절망은 뼈에 사무쳤을 테지요..
6ㆍ25 .. 한국 현대사의 가장 혹독했던 시련기이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한국 전쟁이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일까요. 기록 필름에서 보아온 폭격으로 초토화 된 거리와 시가지, 피를 뿌리며 팔 다리가 끊어진 시체들과 파편에 쓰러져 죽은 어머니의 젖을 빨며 이미 말라버린 눈물로 울어 제끼는 아이의 모습은 전쟁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필름을 보면서 전쟁의 참상에 몸 떨며 전쟁의 가학성과 잔인함 그리고 생존자들에 대한 연민을 느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이란 수박의 겉만 핥는 꼴입니다. 왜 우리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야 했으며, 전쟁 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전쟁의 진정한 피해자와 수혜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 전쟁을 60, 70년대에 난무하던 반공이 아닌 반전(反戰)의 관점으로 다룬 보기 드문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땅에서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한국전을 다룬 영화들은 대부분 김일성과 이승만의 알력 다툼, 인공기와 태극기의 색깔 싸움, 이데올로기의 충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들 중 몇 명이나 이념과 사상,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알고 전쟁터로 나아가 피를 흘렸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오직 살아남아 가족을 지키겠다는 오기와 죽은 자들에 대한 복수심이 낳은 광기만이 피를 머금은 허허한 벌판을 채우고 있다고 말이죠.
‘일제 시대에는 나라라도 구하려고 싸웠지. 지금은 형제들끼리 이게 뭐냐’는 영만(공형진)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대의명분을 잃은 형제들의 전쟁에서 대부분의 군인들에게 좌익과 우익은 상충되는 이념의 구분이 아니라 운동회에서 청군과 백군을 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편 나누기에 불과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구두를 닦던 소년이 강제일지라도 인민군의 옷을 입었다는 죄로 즉결 처분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어찌 정당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진석(원빈)을 돌려보내겠다는 일념으로 훈장을 받기 위해 위험을 자처하며 고군분투하는 진태(장동건)에게 애국과 통일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죠. 병든 홀어머니가 있는 가족의 품에 동생을 안겨드리겠다고 하는 집념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쌓아왔던 참전의 이유가 사라질 때 이성은 제거되고 광기만이 그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적의 배에 칼을 쑤셔 박을 때에도, 이마에 방아쇠를 당길 때에도, 개머리판으로 머리뼈를 부셔버릴 때에도 죄책감조차 느낄 수 없었던 것은 비단 진태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명분 없는 전쟁에 총알받이로 내몰려진 아들, 아버지와 형제만이 있을 뿐이라는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한 강제규 감독은 그 이력답게 <태극기 휘날리며>는 탄탄한 이야기 구성을 보여줍니다. 현재에서 과거로 회귀하는 플래시백은 현재와 과거가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고, 전쟁이 터지기 바로 직전 평화로운 모습을 미리 보여주면서 앞으로 일어날 처참한 전쟁의 모습을 강하게 대비시키기도 합니다. 할리우드 의 전쟁 영화가 주로 드러내는 영웅만들기를 따오면서도 거기에 덧붙여 그가 영웅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와 시각차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리얼한 전쟁 씬으로 유명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핸드헬드카메라를 그대로 차용해 사실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와 포탄의 굉음, 피와 살이 튀기는 현장의 묘사는 한국 영화 기술 발전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지나치게 잘생긴 배우들을 내세웠기 때문에 오히려 걱정을 끼쳤던 작품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란 소재가 그들의 외모에 빛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 이유였죠.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는 이 걱정이 기우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부터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려온 장동건 씨는 한층 더 무르익은 연기로 스타이기 이전에 배우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듯합니다. 착하고 유약한 진석을 연기한 원빈 씨는 두 번째 영화출연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열연하고 있구요. 자주 지적이 되듯 독특한 발성은 여전하지만 진석에 몰입되는 그의 연기는 브라운관 뿐만아니라 스크린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또한 조연급으로 등장하는 배우들 모두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은주 씨는 약혼자인 진태를 향한 애틋한 사랑으로 눈물샘을 자극하고, 공형진 씨는 시의적절한 추임새로 영화에 활력을 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최민식 씨와 김수로 씨의 모습도 반갑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전투장면에서 사운드가 영상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 스스로가 총을 쏘아도 총성에 귀가 멍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바로 옆에 포탄이 떨어져도 주인공들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리고 수류탄의 안전핀을 치아를 이용해서 너무 쉽게 빼내는 것도 걸리더군요. 영상만큼 소품에도 리얼리티를 더 신경써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형제의 대화장면에서의 호흡이 지나치게 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군더더기 없는 주옥같은 대사들이지만 호흡이 길어 감정의 몰입이 되려다 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최근에 한국 현대사에 있었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의 모습을 조명하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이러한 작업들이 한국의 유명 감독들의 손에서 경쟁력있는 작품으로 재탄생되고 있습니다. 극중에서 노인이 된 진석은 발굴된 진태의 유골 앞에서 눈물을 삼키며 “50년 동안 기다렸잖아요..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이 대사는 형을 그리워하던 진석뿐만 아니라 잊어서는 안되지만 차츰 잊혀져 가는 전쟁을 반추해야 하는 현재의 우리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요. 50년 전 그것은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요. 우리는 그것을 50년 동안 묻어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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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2004, TaeGukGi: Brotherhood Of War)
제작사 : 강제규필름 / 배급사 : 와이드 릴리즈(주),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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