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영화 <러브액츄얼리>를 보고 싶었습니다. 이날 어두워진 극장안에서 느낀 것이라고는 혼자 앉아있다는 존재감이 더 크게 먼저 다가왔습니다. <브리짓존슨의일기>를 겨울밤 우둑커니 비디오로 보면서 내 나이 30살의 비애를 알고 브릿지의 파워오브러브를 같이 목놓아 립싱크했습니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으로 2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나에게 남녀간에 사랑의 짜릿한 경계선을 느끼게 해주었던 리차드커티스가 <노팅힐>로 사랑에 안주하고 싶은 달콤한 유혹으로 초라한 솔로였던 제 처지를 한탄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직접 메가폰까지 잡으면서 저의 신세를 비웃으면서 사랑을 해보라고 강요합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브리짓처럼 볼품없는 몸매인데다가 사랑에는 <노팅힐>의 윌리엄(휴그랜트)처럼 다가오는 사랑에 소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월리엄이 영국의 거리의 시장거리를 거닐던 모습이 가슴에 멍울로 남고 30살의 마지막 겨울에는 꼭 누군가의 손을 잡고 섬세하게 브리짓의 절규와 월리엄의 공허란 사랑의 표정을 감상하고 싶었습니다.
<러브액츄얼리>는 7개의 사랑를 쏟아내듯 여러 다양한 사랑의 표정을 화면에 가득담고 시작합니다. 당신이 보지 못했기에 저는 당신의 갸름한 얼굴을 보면 새처럼 종알 댈 것입니다. 7개의 사랑중에서 제게 다가왔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친구의 부인이 되어버린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크리스마스이브의 고백은 당신에게 무조건적으로 달려드는 제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친구의 부인을 사랑하는 해리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결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들의 의식없는 바램이라면 해리(알란릭맨)은 그렇다고 이것이 우정과 사랑의 경계선을 아스라히 줄을 타듯 만들지는 않는 선택을 합니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카메라의 뷰파인더 안에 담은 것이 친구의 행복한 미소가 아니라 고백하지 못한 자기 마음의 위안의 되는 그녀의 순백의 아름다움이라면서 그는 자신을 위로하는 모양입니다. 해리가 친구의 집 아니 그녀의 문 앞에서 보여주는 수줍은 고백은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가능한 선물같은 마음임을 알기에 그녀는 뒤돌아 서는 해리의 입술을 잠시나마 소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카메라 안에 담고 싶었던 당신의 미소를 기억하나요? 해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굳이 소유라는 욕심으로 나온다면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카메라의 뷰파인더안에 그녀를 가두는 선택을 합니다. 해리의 그 행동이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은 저도 당신의 미소를 뷰파인더를 통해 훔쳐보던 그때가 그립기 때문입니다. 그에 사랑의 다른 선택은 그래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나봅니다.
해리의 사랑얘기 너무 길었죠? 제가 말하고 싶은 또 다른 사랑얘기가 영화 <러브액츄얼리>에는 있습니다. 소설가와 포루트칼 여인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소설가는 영화<브리짓존슨의 일기>에서 뚱뚱하고 골초인 브리짓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던 콜린퍼스가 연기합니다. 아시죠? 제가 이 남자 무척 좋아하는거요? <브릿지존슨의일기>를 보면서 이런 남자가 내 나이 30살에 나타나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왓어걸원츠>에서 멋진 아빠를 연기했던 그가 이번에는 저와 똑같이 사랑의 아픈기억을 가지고 여행을 떠납니다. 거기서 만나 포루트칼 연인 오렐리아는 말도 통하지 않는데도 뚜렷하게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해줍니다. 제이미(콜린퍼스)의 소설이 호수에 빠지자 거침없이 물 속으로 뛰어드는 오렐리아의 육체를 보면서 제이미가 느낀 감정은 육체적 본능이기 보다는 자신의 허접한 소설을 위해 막무가내로 뛰어드는 그녀의 건강한 마음에서 오는 섹시함임을 알기에 그들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입니다. 제이미와 오렐리아는 언어가 틀려 각자 다른 말을 하지만 그 언어들이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고백이라는 것을 알기에 같은 언어를 쓰고 있어도 전하지 못하는 내 감정이 쓸쓸하게 어느센가 어두운 극장안에서 당신의 빈자리 대신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랑은 목소리로 당신의 귀에 속삭이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기에 저의 조급한 마음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려 합니다. 제이미와 오렐리아는 그렇게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기다리거든요.
휴그랜트가 연기한 영국 수상역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자신의 식음료를 담당하는 조금은 입이 거칠고, 몸매는 뚱뚱하고 얼굴도 이쁘지 않은 나탈리라는 여자입니다. 수상(휴그랜트)는 취향도 특이하게 그녀의 거친 입담에 일차적으로 반합니다. 그리고 흥겨운 댄스음악에 몸을 흔드는 휴그랜트의 춤연기는 가히 일품입니다. 당신도 보셨다면 나이가 먹어도 죽지 않는 남자의 매력은 무엇인가를 알 정도로 휴그랜트는 멋지게 일과 사랑을 헤쳐나갑니다. 우리의 감정이 사람과 일 속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갈 때마다 느끼던 일종의 그 패배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탈리를 사랑하는 수상의 용기에서 위안을 받읍니다. 나탈리는 저랑 닮은 모습의 여인입니다. 못생기고 그리고 언제나 2% 부족한 듯 보이는 그녀의 행동들은 불안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수상(휴그랜트)은 <브릿지존손의일기>와 <노팅힐>의 마크(콜린퍼스)와 안나스콧(쥴리아로버츠)의 캐릭터의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인물입니다. 리차드커티스감독이 항상 영화안에서 보여주었던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캐릭터는 바로 누구도 과장되지 않은 모습으로 사랑하고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저를 사랑하나요? 당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편하게 이대로 나를 사랑해 달라고 소박하게 당신을 기다려야 하나요? 무엇이 옳은지 저는 수상과 나탈리의 사랑을 봐도 어떤것도 결정할 수 없습니다.
록스타와 매니저의 기나긴 우정은 또 다른 사랑의 방법을 알려줍니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그의 그림자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랑도 결코 외롭고 힘들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빌리(빌나이히)는 나이가 들어도 천방지축인 왕년의 락스타입니다. 그의 친구 조는 매니저이기전에 그런 그를 유일하게 이해하면서 평생을 사고만 일으키는 빌의 뒤치닥거리를 도맡아 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기나긴 우정과 사랑의 얘기에서 이런 상상을 해보고는 피식 웃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당신이 빌리처럼 사고뭉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요. 그럼 저는 의연하게 당신이 일으킨 사고를 처리하고 당신이 성공 할 수 있도록 물신양면 도와주는 그런 존재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말입니다. 근대 당신과 나의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그러기게 언제나 저는 당신이 이런 저에게 질려 이별의 소리를 먼저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심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당신의 그림자가 되고 싶습니다. 드러나지 않아도 좋으니 당신을 가까이 지켜보고 싶습니다.
영화< 러브액츄얼리>는 이 외에도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11살짜리 아들의 사랑, 중년부부의 이해와 타협의 사랑 그리고 회사의 동료를 짝사랑하는 어느 소심녀의 사랑까지도 모두다 그만한 가치를 뽐내면서 관객석에 앉아 있는 저에게 사랑을 하라고 조릅니다. 그들이 조르지 않아도 저는 이미 당신을 사랑하는데 그들은 저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합니다. 무엇인 진정한 사랑인지, 비어있는 내 옆자리의 허전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건지 모든게 불켜진 극장안처럼 텅 비어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Christmas Is All Around' 의 노래선율만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고 있지만 저는 쉽사리 당신에게 뛰어가지 못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그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담아내는 스크린처럼 저도 그 중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당신과 사랑하고 싶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노래하는 리차드커티스의 천재적인 놀림을 기분 나쁘지 않게 당신에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지 없이 극장의 제 옆자리는 비어있습니다.
<브리짓존슨의 일기>에서 팬티만 입고 눈 오는 거리를 뛰어가던 브리짓의 용기와 사랑을 올해도 저는 실천 할 수 없을 듯 합니다. 불어나는 뱃살 속에서 'power of love'를 절규하며 립싱크하던 저를 곧 만날 듯 합니다. 'you'라는 노래 가사 내용에 맞추어서 자신을 지목하는 소녀의 손짓이 별뜻 없이 만인을 가리키는 제스쳐임을 알고 실망하던 소년의 얼굴이 제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러브액츄얼리>는 너무 일찍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별의 아픔보다 더 아픈 것이 사랑을 기다리는 이 조급증임을 당신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http://www.onreview.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