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쯤부터 내 별명은 민군으로 통하였다. 풋풋한 대학교 1학년의 여학생에게는 달가울 리 없는 별명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친구들은 나를 부를 때 이 별명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무엇이 나를 민군으로 부르게 만들었을까. 남자 친구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사소한 것에 조금 무심하고 그다지 소심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내숭이 있는 것도 아닌 내 모습이 민군으로 불릴만하다는 생각을 아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또 몇 선배들은 나를 지극히 여성적이라고도 말한다. 꼼꼼한 노트 정리와 애교 많은 성격이 그렇다고 한다. 또 나를 집에서 막내가 아니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첫째지? 하고 물어오는 사람도 있다.
내 안에는 여러 가지 나의 모습이 있고 여러 성격이 공존하고 있다. 이중인격자라는 말은 남을 비난할 때 쓰는 말이라기보다 어쩜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한 성격, 하나의 모습으로 정의내리기에 사람은 너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덴티티’는 복잡한 존재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다만, 이 정체성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추리라는 기법을 사용했고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뿐이다.
이 영화를 추리하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첫 장면을 유심히 보아야 영화전체를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부터 영화의 추리를 어렵게 한다. 단순히 범인을 찾는 추리 영화로 이 영화를 이해했다면 영화의 제목이 처음부터 아이덴티티가 될 필요가 없었다. 범인이 누구냐를 밝히는 것을 넘어서 이 영화는 어릴 적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은 한 사람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인 것이다.
사람의 정제성은 후천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우리는 사회시간을 통해 배워 익히 알고 있다. 한 생명이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것은 가족이다. 그러기에 당연히 가족 구성원이 한 사람의 정체성 형성의 기반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고 그 기반에 그 사람이 성장기 동안 받은 다른 사회적 영향이 더해져 정체성이 자리를 잡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동학대는 엄청난 범죄이고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말콤 역시 어릴 적 버려졌던 기억과 버려지기 전 엄마에게 받았던 학대로 인해 올바른 정체성을 형성할 수 없었고 극단적인 모습, 다중인격자가 되고 말았다.
말콤의 다중인격을 구성하는 사람 하나하나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 보이지만 모두 그의 인생과 하나씩 맞물려 있다. 사람의 인생이 그 사람의 정체성 형성의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콤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사람들은 모텔을 벗어 날 수 없었다. 모텔로부터 도망치지만 결국 모텔로 돌아와 있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그 사람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고 그 사람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범인을 찾는 추리의 과정은 여러분이 생각하시기를 바란다. 이미 위에서 다 말한 것이 아니냐고? 아니다. 이것은 단지 내가 던지는 단서의 하나에 불과하다. 단,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범인만을 찾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기를 바란다. 모든 해답은 영화의 첫 장면에 있다. 시작부터 집중력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이 영화의 정답을 찾는 일이다. 난 이제 내 안의 성격들이 나의 어떤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 내 정체성 형성의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보는 추리를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