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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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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13 오후 3:0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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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리뷰)보리울의여름
제목 : "그해 여름은 쓸쓸했네."
씨네버스의 오동진기자는 보리울의 여름을 "올상반기한국영화의조용한혁명"이라고 했다. 문두에 언급하건데 분명, 이영화는 [혁명]의 종류임에 분명하다. 한국의 상업영화시장에서 정말 이상한 형식으로 튀어나온 이영화의 탄은 분명 [혁명]이다. 나는 매우 당혹스럽다. 어떠한 상업적 코드나 컨셉없이 이만한 이야기에 이만한 드라마트루기로 상업영화시장에서 승부를 걸어보겠다고 뛰쳐나온 [보리울의 여름]을 어떻게 , 어떤 방향으로 언급해야 하는지 당황스럽단 말이다. [혁명]이라면 뜨겁고 열띤 기운의 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영화에선 그런 열띤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경기의 순간에서조차 그들은 화목해 보이고, 착해 보이고, 성실해보인다.) [보리울의 여름]이 흥행하지 못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제작진과 감독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싫증나는 이 세상의 염증이 그렇게 심해져 이미 곪을대로 곪아 있는걸 어쩌겠는가.) 세상은 이제 이토록 착하고 순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엔 지나치게 변질되었으며, 왠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화는 결코 [잘만들지 못한]즉, [허름]하거나 [남루]한 영화가 아니라는데 [혁명]이라는 단어를 부여받아도 마땅한 근거가 있다. (그것이 뛰어난 [걸작]의 반열에 오르지 못할지언정, [보리울의 여름]보다 못미치는 남루한 완성도의 영화들이 흥행하는 이상한 형태로 변질된 한국의 상업영화시장에서 [보리울의 여름]은 그, 언급의 가치가 분명, 존재한다.)
영화는 신부와 스님간의 구도 보리울과 읍내의 구도 사이에 "축구"라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고 또 그 이미지를 "순수한 아이들"이라는 조미료로 아주 맛있게 버무려놓는다. 스님은 성당의 원장수녀님의 깐깐한 성격을 못마땅해 하고, 스님에게는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이 있다. 그리고 스님의 아들은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린다.("변질"이라는 단어가 끼어들어도 마땅한 이색적인 시선) 신부는 틀에 박힌 근엄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새로부임한 젊은 신부는 아이들과 축구단을 결성하고 스님과 곡차를 마신다. 귀여운 애기수녀는 선물받은 속옷을 밤마다 자랑하고 그런 애기수녀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깐깐한 원장수녀는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있다. 무언가 "기존"에 봐왔던 이야기의 형식에서 조금씩 "빗겨나간"이야기는 분명 새로운 구석이 다분하다. 그것이 비록 "자극적"이지는 못할지언정 영화에서 자주 언급해온 작위적인 드라마트루기나 식상한 캐릭터와는 닮아있지 않아 날긋하게 신선한 느낌을 주니, 이 기분좋은 감정은 지우기 힘들다. (이영화가 근처 극장에서 종영되기 전에 , 챙겨서 본 것을 진심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 신선함은 또한 "진심"과 맞닿아 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무료상영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정도로 영화는 "진심"이 흐른다. 물론 그 호소력이 대단해서 몰입의 정도가 강한 것은 아니지만(물론 그 호소력에 강도가 실어졌더라면 이영화는 분명 상업적으로도 흥행했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아쉽다.) 그 맑은 진심앞에서 어찌 이영화를 비난할수 있겠는지 심히 고심될뿐이다.
"반쪼가리 수행자라 덜 떨어져서 그라지라..." 우남스님의 이 기막힌 대사는 삶을 자조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와일드카드]도 집필했다.)와 감독의 고민한 흔적을 드러내는 시점이기에 그 빛을 발한다. 단체로 시합후에 정자위에 앉아 짜장면을 먹는 장면, 성당내에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포도주를 달라는 우남스님의 모습, 경운기를 타고 단체로 시합에 출전하는 보리울사람들의 모습은 왠지 말못할 뭉클함을 선사해줘서 심정이 크게 동요한다. 조금만 더 역동성을 주고 에피소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었더라면, 제대로된 스포츠영화. 그것도 낡디낡은 어른들의 영혼을 씻겨주고 맑디 맑은 아이들의 영혼에 더욱 깊이있는 "사랑과 진심"의 메시지마저 넣어줄수 있는 훌륭한 상업영화로 발돋움할수 있었는데, 이 안타까움을 어디에가서 호소하랴.
드라마는 예정대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으며 조용히 그러나 평화롭게 마무리 된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동숙이가 진정 훌륭한 여자 축구선수로 거듭나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으면 하고 우남스님이 아주 오랫동안 건강히 사셨으면 하고, 원장수녀님이 많이 웃으셨으면 하고, 애기 수녀 바실라수녀님도 아이들과 아주 오랫동안 행복하셨으면 하고, 김신부님이 애정갖는 축구단이 열심히 달려줘서 신부님얼굴에도 아주 오랫동안 미소가 가득하길 빈다.
차인표의 연기는 부자연스럽고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주저함 때문에 여전히 아쉽지만 반듯한 이미지와 잘어울리는 김신부의 역할에는 그림처럼 잘어울려 보기 좋았다, 첫영화에서 호연을 보여준 신애에게도 가능성이 보여 반가웠으며 아이들의 연기는 [선생김봉두]의 아이들보다 더욱 친밀하게 느껴져서 인상깊다. 이에 언급하지 않을수 없는 장미희씨와 박영규씨의 놀랄만한 연기는 아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은 호연이다. 우물쭈물하며 경운기 앞에 서있던 장미희씨에게선 연륜과 더불어 "여성미"마저 느껴져(이것이 수녀역을 방훼하느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사랑스럽다. 우남스님역을 천연덕스럽게 해낸 우리의 미달이아빠 (나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이 호칭이 좋은지 모르겠다,)박영규씨의 얄미운 미소와 까맣게 그을려진 피부는 건강해 보이면서도 인간적인 냄새가 풀풀나서 좋았다.
[보리울의 여름]은 진정 "사심"없이 만들어진 영화라 흡족하면서도 동시에 아쉽다. 여전히 관객이 원하는 영화만을 만들어 내야 하는 제작현실이 싫증나지만, [보리울의 여름]에서 보여준 부족한 호소력과 밋밋한 드라마는 그 자질이 다소 부족해 보이니, 어쩔수 없는 현실앞에서 이영화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현실일런지도 모른다. [보리울의 여름]의 이민용감독이 어느작품으로 결정지어지든, 그의 필모그라피에 [보리울의 여름]은 의미있는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번사는 인생이다. 이명세감독의 말처럼 "흥행의 성과야 누구도 모르는법. 이왕만드는 거 만들고 싶은대로 만들어 봐야 할것"아니냐.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아이들과 고생해준 모든 제작진과 이민용감독에게 감사를 드린다. 뻑치기 일당에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아주머니의 피멍든 눈을 조명하는 감독보다 이민용감독이 더욱 좋은건 어쩔수 없는 (바보같은)개인적 취향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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