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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들렌] 빵 한 조각만의 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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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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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없이 무너지는 날들 / 견딜 수 없는 잦은 비 끝으로 / 종이꽃을 접었다 편다 / 너무 얇아 그늘이 투명한 빛 같은 / 네 속에 든 나 같은 칼날 / 감동 없는 날은 그렇게 베이고 싶다 - 강유정의 詩 "나 같은 칼날"
가끔은 영화가 주는 여운과 감동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반지의 제왕처럼 스펙터클한 액션과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들은 영화가 주는 감동에 앞서 재미와 만족감을 먼저 준다. 감동은 부수적인 수입일 뿐이다. 그리고, 코미디가 주는 여운은 쌓이고 쌓였던 스트레스를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신나는 웃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마들렌과 같은 청순미를 강조한 연애소설담은 어떤 감동을 주어야 하는 것일까?
마들렌이 상징하는 것은 기억의 재생이다. 기억의 재생이란 주인공 지석과 희진이 중학교 이후 다시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마들렌이라는 빵을 전부 먹고 싶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저, 일부만 조금 떼어먹고 싶은 그런 심정을 주는 영화다. 조인성과 신민아의 연기는 아직 신인 티를 벗지 못한 그러나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연기가 영화의 자연스런 흐름을 이어가는 데에 지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이 영화는 감독의 욕심이 너무나 들어간 듯 뚜렷한 주제가 없는 모호한 청춘드라마로 전락해 버렸다. 지석과 희진의 만남은 기억의 재생이라는 영화적 코드로 초반 그들의 만남은 계속해서 신선한 만남을 유지한다. 소설가 지망생인 좀 고리타분한 지성은 신세대적인 희진과의 만남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는 이렇게 정치적 용어로 표현해 <보수와 개혁>의 절충된 만남을 표현하려 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에 제동을 건 것은 영화 중반부터 출현한 성혜란 인물이다. 성혜의 출연이 희진의 어린시절과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필연적 설정이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돌발적인 출연은 영화의 흐름을 잃게 하고 만다. 그러나, 더욱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고 그저 겉으로만 맴돌다가 쏘옥 들어가버리는 것이다. 표면화되지 않은 갈등은 영화를 작위적으로 만들고 만다. 즉, 영화가 진부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희진의 임신 역시 영화의 후반부에 갑자기 돌출되어 버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영화를 끝내기 위한 임기응변식 설정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지석이 희진을 받아들이기 위한 포용력의 문제. 희진의 임신 때 영화는 또 낙태문제와 또 남자가 여성을 평가하는 잣대에 대한 주제의식을 담으려 하는 듯 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 어떤 것도 표면화되어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보고 느끼라 그렇게 강요하는 듯 했다. 다소, 불편한 신인들과 다소 불편하고 작위적인 설정. 그러나, 이 영화를 무조건 비하하고 폄하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의 약점은 결정적으로 주는 메시지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아니,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인성과 희진이 다시 만나는 해피엔딩은 이 영화를 그나마도 볼만한 영화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것을 엮어가는 과정은 너무나 생략되고 축소되어 과장된 해피엔딩으로밖에는 보이지 않기 떄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이 영화에 든 나 같은 칼날이 무엇이었는지. 희진과 지석이 만호라는 인물을 새벽에 만나 즐겁게 나누던 빵 한 조각만의 여유만 있을 뿐, 사랑에 관한 드라마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느낄 수 없는 이 영화는 대체 어떻게 베이고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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