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우리나라엔 다른 나라에선 찾아 볼 수 없는 순정영화라는 독특한 장르가 정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일처음 순정영화를 표방하고 깨끗하고 담백한 사랑이야기를 다루었던 <와니와 준하>를 필두로 그것과는 차별된 내용이나 성격 그리고 나름의 영상미학을 추고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가 주는 느낌이 비슷한 그러니까 순정만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예쁘고 순수하며 아름 다운 남녀의 투명한 수채화처럼 풋풋하고 깨끗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그런 영화들, 즉 <후아 유>나 <연애소설> 등의 영화가 순정영화의 부류에 들어가는 영화들 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에 등장했던 순정영화들은 순정만화가 가지는 순수함을 무기로 가지고 마치 현실에는 없는 것 같은 순수함과 고유함으로 관객을 각박한 현실로부터 도피시킨다. 영화는 분명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과는 또 다른 세계의 느낌으로 아직까지 세상에 남아있을 법한 (남아있었으면 하는) 순수한 사랑과 아름다운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깨끗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영상과 유려한 음악으로 근사하게 포장하여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고 세상의 속됨을 모두 잊게 해 준다. 순정영화는 기존의 멜로영화나 로맨틱 코미디와는 별도의 장르로 또 다른 인상을 주며 어린 시절 한번쯤은 꿈꿔 보았을 법한 동화 속 왕자이나 공주님의 이미지를 심어주며 이제는 다 커버린 어른들에겐 어린 시절을 추억하도록 지금 자라고 있는 청소년기의 청년들에겐 그들의 순수함을 간직한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동경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한다.
2002년의 마지막 날을 마감하며 보았던 영화 <마들렌>은 앞에서 이야기한 순정영화의 느 낌이 물씬 풍기는 참 예쁜 영화였다. 주인공 남녀 조인성, 신민아가 주는 캐스팅의 상큼함 과 신선함을 필두로 ‘솔직, 담백 fine romance'를 표방하고 있는 솔직한 로맨스 영화 <마들 렌>은 아마도 기존에 등장했었던 몇 편의 순정영화와는 차별되는 나름의 색깔을 지닌 젊은 감성이 묻어나는 독특한 로맨스 영화를 한편 완성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마들렌>은 기존의 순정영화가 주었던 예쁜 화면 순수한 사랑이나 동화같이 깨끗한 화면을 선사하는 데에는 성공한 듯 보이지만 나름의 차별성이나 줄거리의 참신함은 찾아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운명 같은 만남을 이야기하는 주인공들은 첫만남에 이어 솔직한 여자 주인공이 던지는 솔직 한 제안은 어째 참신하다기 보다는 주인공 남녀를 어떻게 연결시켜 주려는 감독의 의도적 연출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들의 계약연예에 느닷없는 방해꾼으로 등장하는 동창 성혜나 희진의 옛 남자친구도 이런 류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의례적인 방해꾼이라는 인상만 을 심어주고 그들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다. 또한 가끔씩 회상씬으로 연출되는 운명적 주인공들의 어린시절의 에피소드들 그들의 운명적 사랑 느낌을 그리기엔 조금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며 점점 작위적인 것 같은 줄거리의 식상함에 나는 이 영화에 점점 실망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줄거리가 주는 식상함 이면의 매력있는 몇 가지 코드로 관객을 즐겁게 해 준다. 우선 주인공 지석과 희진이 첫 데이트를 하는 대학 교정은20대 초반 시절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을 느끼게 하며 그들이 앞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하게 함과 동시에 10년 전 친구들과 때론 첫사랑의 느낌을 사람과 함께 거닐었던 교정을 연상케 하며 젊고 순수했던 그 시절의 나를 추억하게 했다. 그들이 공유하던 추억이 아름답다. 함께 비를 맞을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연인들의 모습은 로맨틱함과 동시에 비만 오면 서로를 생각할 만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웠고 한편으로 부러웠다.(과연 나는 그런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 던가 나는 여지껏 무엇을 했었던 가 하는 점에서 말이다.)
영화 <마들렌>은 진부하고 식상하며 순정영화가 다루기엔 조금은 위험한(?) 내용도 들어 있는 한편으로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 예쁘기만 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외에 다른 사람들은 그져 들러리로 등장하고 주인공들의 사랑의 완성이 추호 도 의심이 되지 않는 등 뻔한 줄거리와 작금의 현실에 비추고 있는 듯해 보이면서도 어쩐지 동떨어진 듯한 내용으로 점철되어 그다지 동감이 가지 않는 영화다. 영화 속엔 아름다운 주인공 남녀의 예쁜 알콩달콩 사랑이야기가 잠시 등장하고 이후에 벌어지는 작위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희진의 슬픔은 그들의 사랑이 절대적임을 강조하려 는 일종의 장치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다지 극적이지도 색다르지도 않은 오히려 식상 해서 기분이 찜찜해 지는 그런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쩐지 난 이 영화를 그저 그런 별볼일 없는 로맨스 영화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초반 보여준 순수한 사랑느낌 즉, 새벽에 신문을 돌리며 건강한 데이트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나 비오는 날을 추억할 수 있도록 비오는 날 자전거를 타며 데이트하던 모습, 화창한 날 한가로이 학교교정을 거닐고 잔디에서 휴식하는 모습 등은 10년 전 나의 모습을 추억하게 하는 아련함으로 다가오는 등 나에겐 왠지 특별했던 나만의 시절을 생각하게 한 영화였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며 돌아가고 시절중의 하나인 그 시절의 추억에 첫 사랑의 순수한 느낌에 잠시 빠질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던 기분 좋은 느낌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