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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007을 보기로 한 12월 31일. 광화문에 또 한번의 대규모 촛불행진이 열리기로 한 날이기도 하다. 그날 난 광화문 현장에 있었다.
민주노동당, 각 대학 총학생회, 진보 시민단체 등의 깃발이 나부꼈고,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나온 고사리 손의 어린이, 중고생들 그리고 나이든 할아버지까지...지난 번 광화문 열기의 현장 그대로 였다. 6월의 함성을 드높였던 윤도현의 '아리랑'에서부터 민중가요까지..뜨거운 나라사랑으로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의 열기였음은 짐작하지 않아도 알리라..
하지만..난 그 열정의 현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광화문을 벗어나 명동 CGV에서 친구랑 영화를 보기로 한 시간이 다 됐기 때문이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나라사랑의 현장에서 가슴 벅차오르던 내가 웃기게도 선택한 영화는 '007'이었다
'007' 영화 속에 묘사된 여러가지 상황은 반미운동의 시류와 맞물려 네티즌에 이어 시민단체까지 '007 안보기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웬 007이라니.. 일부 과격 반미주의자들에게 비난을 받을 것까지 감수하고서라도 말이다.
명동 CGV에서 하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피아니스트', '색즉시공', '품행제로' 등의 영화를 다 본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영화는 '007'뿐이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사실은 호기심 반, 그리고 제대로 영화를 보고 평가를 해보자는 생각 반으로 '007'을 보게 되었고, 어차피 무료초대권으로 보니 돈이 들지는 않았던 것도 작용했다.
아뭏든.. 위에 열거한 모든 영화를 아직 안본 친구에게는 미안했지만, 미리 표를 구입한터라 선택의 권한이 없이 우리 둘은 '007'을 보게 되었다.
역시 '007'은 권선징악, 제임스 본드의 여성편력, 본드 카 등등..007의 기본법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엄청난 물량공세로 대규모 액션신이 펼쳐지기에 액션팬들에게는 시원하기도 할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속의 한국에 대한 설정이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단지 시원한 액션만을 즐기기에는 편하지 않다는 데 있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북한을 주적 개념으로 묘사한 것과 한국을 미국의 그늘아래에 있는 후진국으로 묘사했다는 부분들이 논란거리가 되지만..난 그보다는 도대체 한국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렇게 어설프게 고증을 했다는 것 자체가 헐리우드의 동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한국인들이 한국말은 어설프게 하면서 영어는 유창하게 말하는 것은 정말 웃기고, 휴전선이라는 것도 엉성하기 그지없고, 농부가 끌고가는 소는 한국산 황소가 아닌 동남아시아 검은 물소이며.. 가장 실소를 자아내는 부분은 북한군의 복장이 우리나라 예비군 복장이라는 것이었다.
제임스 본드가 북한에 위장침투할때 북한군 복장이라고 입은 옷에 '창천동 1대대'라고 선명히 찍힌 명찰을 보라! 바로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예비군들이 입었던 복장을 어디서 빌려와서 북한군 소품이라고 입고 다니는 제임스 본드의 꼬락서니를.. 한국에 예비군 훈련 받으러 왔나? 하하!
아뭏든 이 모든 걸 신경쓰지 않을 자신이 있고, 다만 액션으로 즐길 자신이 있다면 007을 보기 바란다.(친구는 액션도 별로였다고 말했다.) 물론 과연 내 말처럼 그런지 궁금해서 봐도 좋고.. 비록 무료로 007을 봤지만, 유료관객수(박스 오피스)에 일조를 한 것은 못내 찜찜하다. 하여간 007 안보기 운동이니 등등은 좋지만..'007'을 보는 관객을 매국노로 몰아세우는 일부 과격 네티즌들의 처사는 한국인의 냄비근성을 보는것 같아 씁쓸하다.
그리고.. 연말이고 개봉 첫날이라 그러하기도 했지만..그날 좌석은 매진사례였다.
어쨌든.. 분명 나보고 007을 봤다고 비난의 리플을 다는 네티즌 분들이 분명 있을것 같다. 하지만 난 명분을 가지고 007을 봤음을 다시한번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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