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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부드러움이 더욱 미덕으로 다가오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
jimmani 2004-05-09 오후 9:09:26 1393   [6]
보통 남자와 여자는 그저 한낱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누구 말처럼, 그들이 아버지, 어머니가 되면 확실히 그들은 강해진다. 슈퍼맨이나 원더우먼같은 슈퍼히어로보다 그들이 가진 힘이 더욱 강력하다. '깎쇠'라고 놀림받는 평범한 이발사일지라도 그가 누군가의 아버지라면, 그는 대단한 힘을 갖게 된다.

올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이라고까지 불리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효자동 이발사>를 드디어 봤다.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휴먼 드라마 장르, 거기다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배우 송강호가 나오는 영화라 주저없이 골랐던 영화였다. 그리고 그 결과 느낀 건, 예전 송강호가 주연했던 영화에서 느꼈듯이 또 한번 깊은 여운이 남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남긴 여운은, 그보다 한결 더 인간적인 여운이었다. 격동의 현대사를 관통했던 한 서민의 여정이 씁쓸했으면서도, 그가 품고 있었던 인간적인 내면을 생각하면 금방 흐뭇해졌다.

아들 낙안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통령이 사는 마을'에서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는 성한모. 이름 때문에 '두부 한모'라는 참으로 유치한 별명으로도 불리는 평범한 이발사다. 그 옆엔 이발보조인 민자가 있는데, 한모는 그녀의 엉덩이에 순간(?) 반해 덜컥 일을 저질러 버린다. 그 결과 민자의 배엔 한모의 아이가 들어서고, '사사오입'이라는 말까지 들먹이며 한모는 5달이 넘었으니 꼭 낳아야 한다고 밀어붙인다. 잠시만 미용보조를 하기로 했던 민자는 결과 한모의 부인이 되어 눌러 앉게 되고, 아들 낙안이가 생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던 그에게 인생의 전환기가 다가오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그의 이발관에 청와대 경호실장이 다가온 것이다. 평소에 정보부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품고 있던 실장은 밤 12시에 나올 정보부원을 무장공비라고 속여 한모더러 그 때가 되면 신고하라고 한다. 결국 정보부원을 공비라고 신고한 한모는 청와대에 붙잡혀가 다리를 차이는 대신, 대통령의 이발사라는 심히 무거운 직책을 떠맡게 된다. 팔자에도 없던 '실장' 소리를 들으면서 그의 인생은 굴곡을 맞게 된다.

솔직히 이 영화를 기대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출연하는 배우들 힘이 크다. 지난해 각종 영화상에서 남녀 연기상을 휩쓸었던 송강호와 문소리가 만났으니 두 배우 연기를 보는 재미는 확실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재미는 탁월했다.
송강호의 연기는 일단 확실히 이전 영화들보다는 무난하다. 오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광기어린 모습을 선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 그런 극단적인 모습은 오히려 마이너스의 요인이 된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고 있는 성한모라는 역할은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처럼 다혈질의 형사도 아니요, 의 이호창처럼 유머러스한 조선 양반도 아니다. 지극히 소심하고, 남들 가는 대로 가는 그저 4천만 국민 중 한명의 서민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그가 오버하거나 혹은 핏대를 세워가며 광기를 피워대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이 영화에서 좀체 목소리 톤을 낮추지 않고 나지막히 이야기하지만, 그 모습에서 오히려 독재 정권 아래의 국민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그의 서글픈 모습이 오히려 잘 살아난다.
문소리의 비중은 이 영화에서 송강호에 비해서는 작다. 혼자 나오는 장면은 없고 항상 송강호와 같이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장면마다 활기 가득한 모습을 선보인다. 그녀는 실감나는 사투리와 함께 시종일관 남편에게 투덜되는 그렇지만 인간미 있는 김민자 역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솔직히 이 영화에서 문소리가 나오는 장면마다 웃음이 나왔다.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지극히 평범하게 연기를 해서 저게 연기인지 실생활인지 구분이 안갈만큼 그녀의 연기는 튀는 면은 없었지만 확실히 훌륭했다.

이 영화는 한창 우리나라가 온갖 풍파를 겪던 1960~70년대를 가로지름과 동시에 그 속에 살고 있던 한 서민 가족을 함께 보여준다. 일단 이 영화가 그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생각할 때, 솔직히 이 영화는 그리 시원하게 꼬집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배경으로만 삼지도 않는다. 그저 말로만 '서민들이 힘들었고 억압받았다'는 소리를 들었던 그 시대를, 한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훨씬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그 시대의 아픔을 상당히 피부에 와 닿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그 시절에 대해 말로만 들었던 나도 몰랐던 '마루구스 병' 사건 등의 소재들은 이 영화가 얼마나 그 시절을 고증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는지 잘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영화의 특징은 억압에 익숙해 있던 1960~70년대 독재 정권을 풍자하되, 그 방법이 직선적이라기보다는 우회적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낙안이가 '물똥을 싼다'는 이유로 간첩에 연루됐다는 오해를 받아 고문을 당하는 장면인데, 분명 고통스럽기 짝이 없을 장면이 그 고문 장면을 이 영화는 너무나 동화적으로, 즐겁게 표현한다. 온 고문실 벽엔 다채로운 색깔의 전구가 붙어 있고 낙안이는 전기 고문을 당하면서 오히려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그러나 그 뒤에 다가올 고통을 생각하면, 그 순간은 한층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말할 때, 직접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돌려서 표현할 때 더 뼛속 깊이 그 의미를 느끼듯, 이 영화의 이러한 표현도 그시절에 대한 풍자를 더욱 더 깊이 느낄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소재는 격동의 현대사를 악착같이 버텨낸 '아버지'라는 존재이다. 온가족이 청와대 잔디마당에서 열리는 만찬에 초대받아 간 와중에, 낙안이가 대통령 아들과 싸워 잠시 혼란이 일자 한모는 대통령에게 몇번을 꾸벅거리며 거듭 사과를 한다. 그리고는 그 서러움을 그저 자기 목구멍으로 넘길 뿐이다.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간첩 파동 때문에 어린 자식새끼까지 전기 고문을 당한 현실 앞에서, 한모는 대통령을 위해 헌신한 자신에게 이렇게 가혹한 결과만을 주는 나라에게 분노를 토해놓는다. 이렇게 자식을 위해서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고, 온갖 서러움을 견뎌내면서도 그의 자식사랑은 그치지 않는다. 전기 고문의 부작용으로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된 낙안이를 고치기 위해 전국의 용하다는 한의원이라는 한의원은 샅샅이 찾아다니고, 아들을 업고 한겨울 차디찬 냇물까지 종아리를 걷고 건넌다. 그저 작은 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러움 가득한 억압을 받아야 했던 그 시절,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모든 걸 감내하고 분노마저 속으로 삭인 아버지가 있었기에 그래도 무사히 그 시절을 통과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이 영화 더러 '뭘 말하려는지 알 수 없다', '풍자의 강도가 너무 약하다' 는 등의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비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한 구석이 내눈에는 안보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저 지극히 수수할 뿐이다. 우리 모두의 뒤에 계시는 그저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 그 시절 고통받던 사람들 중의 한명일 뿐인 평범한 이발사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이런 수수함은 오히려 이 영화의 미덕이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극히 부드럽기에, 그 여운이 오히려 더 오래 가는 영화가 바로 이 <효자동 이발사>다.

한 마디 더 :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웃기는 장면은 이 장면이었다. 십여 년이 흐른 뒤 아직도 청와대 이발사를 맡고 있는 한모에게 대통령이 '참 오래도 하는군' 하자, 한모는 나름대도 대답이라고 하는 말이, '각하께서도 참 오래 하십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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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이발사(2003)
제작사 : 영화사청어람 / 배급사 : (주)쇼박스
공식홈페이지 : http://www.hyojad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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