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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와 악어새 이야기 사생결단
peacenet 2006-11-23 오전 8:10:30 1279   [2]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꼭 정글에만 존재하는 법칙은 아니라서. 제법 물 좋은 구역의 잘나간다는 마약 중간 판매상이 하필 마약계 거물 하나 잡아넣고 팔자 고치겠다는 집념으로 버팅기는 형사와 만난다면, 글쎄. 누가 악어고 누가 악어새일까.

마약 중간 판매상 이상도, 그리고 형사 도진광. 한쪽은 범죄자고 다른 한쪽은 그런 범죄자를 잡아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경찰이지만 서로 닮은 점도 꽤 많다.

둘 다 장철이라는 마약계 거물에 빨판상어처럼 달라붙어 산다. 그 거물이 먹다 버린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면서, 그걸로 생계를 연명하면서, 언젠가는 큰 건수 하나 건져 보겠다는 집념을 질긴 생명줄 마냥 팽팽하게 당겨대면서. 그게, 서로 죽어라 물어뜯고 할퀴어 대면서도 결국 손을 잡을 수 밖에는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게 있다면, 상도는 도경장에게 협조의 댓가로 제 사업을 사실상의 치외법권으로 만들어 내고, 도경장은 상도의 사업을 눈감아주는 댓가로 장철에 관한 정보를 넘겨받는 거.

쉽게 말하자. 팔자 고치겠다는 집념은 같은데, 그게 둘이 다 온전하게 이룰 수 있는 집념이 아니라는 거지.

시한부 인생을 계약하는 느낌이랄까. 둘 중 어느 누군가는 반드시 쓰러져야 하는 댓가. 하나의 집념을 이룰 수 있기 위해, 다른 하나는 짓밟혀야만 하는 댓가. 서로 자기가 줄 수 있는 만큼 주는 시늉은 하지만, 끝내는 상대방의 생명줄을 끊어 버려야 제가 살꺼라는 걸 모를 리 없는 이 둘이 벌이는 행각이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닮은 점이 또 있다. 둘 다 기실은 별 볼 일 없는 존재들이라는 거. 모처럼 넘겨받은 제보, 함정수사가 실패로 돌아가 버리자 기껏 정보를 제공해 준 상도를 되려 감옥에 쳐 넣을 만큼, 도경장도 굳이 재자면 바닥에서 재는 게 더 가까운 인생이다. 상도는? 그런 도경장에게 쥐여 사는 인생이니 말 다 했지.

내레이션 까지 죄 부산 사투리로 일관하는, 한시도 쉴 틈 없이 수다로 빽빽한 이 영화. 조금이나마 분위기 끈다 싶으면 일 터질 징조다. 우리끼리 얘긴데.. 이 영화 내레이션 진짜 깬다.. 거의 해설 수준이다. 분위기 파악 못해서 한참 애 먹었다. 각설하고. 모든 수다가 대개 그렇듯이, 영화속 대사들도 가볍기가 그지 없다. 정작 영화는 무쟈게 살벌한데 주인공들끼리는 농담을 따 먹으니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할 지 난감할 지경이다. 하기사 쉴 새 없기는 짧은 컷트로만 시종일관하는 영화의 편집도 매한가지지만, 실은 그게 어쩌면 이 영화의 매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보면 볼수록 느끼는 건데, 이 영화 자잘한 디테일 하나하나에 까지 신경 참 많이 쓴 영화라는 생각이다)

까놓고 말하겠다. 액션. 스릴. 서스펜스. 심리전. 미스테리. etc. 그딴 거 없다. 쌈박한 오프닝도, 감격스러운 엔딩도 없다. 걍 막장인생들의 힘겨운 하루하루만 신랄하게 그려진다. 부드러운 영화 좋아하시는 분께는, 이 영화 절대 비추다. 지금까지의 내용이 마음에 든다는 분들만 계속 따라와 주기 바란다.

- 웬일입니꺼?
- 응. 지나가는 길에...
- 지나가이소 그라모.

평소처럼 제 일터를 한바퀴 돌고 오던 상도의 눈에, 하필 반갑지 않은 얼굴이 밟힌다. 이택조. 누굴까... 마약전과 5범, 지병악화로 가석방중? 상도의 삼촌이다. 이 얼굴 제대로 기억해 두자..

왠지 재수없을 것만 같은 밤이 깊어 가고, 이번엔 모처럼 쉑시한 미희들과 한바탕 룸에서 질펀하게 놀아나던 녀석에게 아니나 다를까, 또다른 불청객이 찾아든다. 이거 완전히 조떼따... 바로 이놈, 도진광 경장이다.

- 이 미친 개 씨부랄 연놈들이... 반갑다 상두야!

꽃피는 동백섬 트롯트 반주가 왕왕거리는 사이로, 수갑찬 상두를 앞좌석에, 도경장은 뒷좌석에 그렇게 부산 밤거리를 흘러가던 검은 색 세단이 문득 다리 한 가운데에 멈춰 선다. 왜? 도경장의 내레이션을 놓쳐버리면 앞뒤로 바로 안개속을 헤메이는 불상사가 발생을 하게 되므로 주의 바란다 - 앞서 이상도를 소개할 때, 야당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뭔당? 야당. 이것 역시 도경장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니까 흘려 듣지 말자 - 상도랑 제 삼촌 이택조랑 뭔 관계인지, 장철이란 인물이 누구인지, 도경장은 또 왜 그모양인지. 다 나온다. 각설하고.

- 아.. 경치 죽이네!

상두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온다. 니, 이런 뻔지레한거 다 포기하고, 2년 드가 썩을 수 있겄나? 으이? 물 준다꼬 연락 왔을 때 전화 한 통. 고것만 해도. 결국 상도는 제 조직의 판매총책을 팔아넘기는 댓가로 제 안위를 도모하게 된다.

- 어리버리 시팔놈아 잘해라, 응?
- 니나 잘하십시오.

약속된 장소에 잠복근무중인 형사 그리고 상도. 그러나 일이 잘못되려고, 낌새를 눈치챈 판매총책은 도주를 하다 그만 사망하고,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으로 도경장을 비롯한 관련 경찰 모두가 징계를 받기에 이른다. 이상도는? 현 장 도주범으로 체포, 9개월 형을 선고받는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조련사가 번다고, 아랫것들이 한바탕 쑈를 하고 물러난 자리에 부산 검찰청 마약과가 신회장파 일망타진, 이한수파 소탕을 비롯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며 승승장구한다. 부산지검 고정근 수사관. 이 사람 얼굴도, 기억해 두자.

출감한 상도를 마중나온 건 짝패 유성근. 상도의 오른팔이다. 내 이바닥에서 장사 해먹기도 쫌 힘들지 싶지예... 물이 돌긴 도는데, 구경을 할 수가 없어예. 상도가 자릴 비운 사이, 구역에 뉴 페이스가 뜬 것이다. 아.. 그 개새끼가 없어져야 아들 물주는 놈 구경이라도 하지.. 그리고.. 도경장이라도 함 만나 보소.

- 예 여보세요?... 이거 이상도 전화 아입니다.
- 이상도 전화인거 맞잖아 뭐가 아냐 이 개자슥아! 아이고 우리 상도 을마나 고생했노! 하하.. 내새끼.. 야.. 엄마야? 아 꼬라지 우째 이래됐노?

이 세상에 믿을 새끼 하나 없다, 그중에 짭새, 요것들이 일등이고. 그라모 우짤끼요, 행님들 다 줄줄이 학교 가고, 이젠 씨바 조또 빽도 없다 아입니꺼 예? 짝패랑 상도가 입씨름을 벌이는데 난데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장철의 냄새를 맡은 도경장이,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일까. 아무튼 잘됐다. 상도 쪽에서도, 마침 구역을 되찾을 방법이 궁한 와중이었으니까. 나도 정직 묵었다 새끼야, 상도랑 단둘이 있게 되자, 도경장이 9개월 만엔 던진 첫마디가 대충 그랬다.

- 니 나와바리 다 증발했는데 뭐 해 먹고 살끼고?
- 경찰이 범법자 걱정을 다 하십니까?

저번에는 일이 꼬이가 그래 됐지마는, 말이야 바른 말이지, 니가 바라는기 이런 판국 아니었나? 내가 원하는거는 오직 하나다. 지금 물뿌리는 놈, 그 새끼 진짜 잡구싶어. 잽싸게 분위기를 파악한 상도가, 내쳐 도경장에게 수작을 건넨다. 장사꾼은, 장사로 접근을 해야 미끼를 물지.. 먼저 비지니스를 해 봤어야 알지.

- 그동안에 니가 뭘 해먹든, 내가 최대한 뒤 봐주께!
- 내가 손 볼 놈이 하나 있는데.. 그리 큰 문제는 아니고.. 경장님이 쫌 뒷처리를 신경을 좀 썼으면 좋겠거덩.

세상은 늪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악어가 되고, 누군가는 반드시 악어새가 된다. 늪을 건너고 또 건너모.. 언젠가는 내도 악어가 된다.

- 아... 인생이 와이라노 진짜...

도경장이 뒤를 봐 준 덕에 마약공급 루트를 캐 낸 상도와 짝패. 하필 약에 쩔을대로 쩔은 지영을 그대로 놓아두지 못하고 빼 온다. 지영, 9개월전 함정수사 때 도주하다 죽은 행동대장의 옛 애인. 어쩔 수 없게 된 상도는 결국 삼촌을 찾아간다. 정신 차릴 때 까지만 좀 맡아 주소. 그 다음에 어데 갖다 버리든지 마음대로 하고.

여기서 잠깐. 지영 역으로 출연한 배우는 추자현. 드라마로 더 익숙한 연예인이고, 사생결단이 사실상 첫 데뷔작이란다 (오 놀라워라). 이상도 역을 맡았던 류승범, 도진광 경장 역을 맡았던 황정민 모두 내노라 하는 연기파 배우들이지만 - 류승범은 아라한 장풍 대작전, 주먹이 운다, 야수와 미녀에서, 그리고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 달콤한 인생,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 추자현 만큼 돋보이는 연기력도, 정말 드물꺼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영화 사생결단의 감독은? 최호. 바이 준 (Bye June, 1998), 후 아 유 (Who Are You?, 2002) 에 뒤이은 세번째 작품이 이 영화다. 90년대 초반엔 닫힌 교문을 열며, 그리고 파업전야의 제작에도 참여를 한 바 있다지.

아무튼.

- 니 돈 많나? 마 돈도 없는 놈이 남의 사업을 그래 절딴냈을라꼬?

상도가 자기 없는 사이 구역을 독차지하고 게다가 지영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아새끼를 손 봐주고 나자, 큰 게 하나 물려 들어온다. 성의를 보여라.. 일주일 주께. 장철이 상도에게 직접, 그 구역에서의 활동을 재개하는 조건으로 자금을 마련해 올 것을 주문한다.

- 사진에 나온게 장철이 맞지요? 억수로 쎌낀데...
- 뭐가 쎄? 쎄봐야 뽕쟁이지.. 니같은.
- 나는 벤쳐 사업가고!
- 니미 뽕이다 새끼야.

도경장은 여전히 상도를 통해 정보를 구하고, 상도는 그런 도경장을 이용해서 제 사업에 몰입할 궁리를 한다. 금마 잡고, 딱 1년만 협조? 알았어, 알았어.

- 꼭 약속 지키소, 잉.
- 알았어.
- 나는 경장님을 못믿겠어!
- 알았어, 좀!
- 그리고.. 다음 주 까지 삼천 오백 정도 필요할껀데..

무슨 삼천 오백? 금마 나와바리 들어갈라모 입장료가 있어야지. 헌데 도경장이라고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원 참. 하여간 별 기상천외한 파트너 다 보겠다.

장철의 덜미를 잡기 위해 마약 제조 공장을 뒤쫓는 상도와 도경장. 중국에서 싸게 필로폰을 들여와서 히로뽕 완제품으로 제조, 유통을 한다는 거 까지는 알아냈지만 공장의 소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미행하는 번번히 꼬리를 놓쳐버리기 일쑤니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다. 헌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로를 통해 상도랑 도경장이 각각 진실을 접하게 된다. 이들의 운명 공동체가 마침내는 막바지에 이르러 갈림길로 나뉘어 지는 순간이며, 조만간 누군가가 쓰러져야 할 순간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둘이 끝까지 같이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상도도, 도경장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도경장이 먼저 이빨을 드러낸다.

- 니.. 사람새끼 아닌건 알고 있었거덩... 와...
- 니가 내 속이짜다 믄저!

이제 이 영화 얘긴 그만해야 겠다. 더 하면 재미 없어지니까. 극단적인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는 영화, 개인적으로는 간만에 잔뜩 몰입할 수 있었던 영화. 배우들의 연기에 매료된 건지, 수다에 매료된 건지. 이도저도 아니라면, 이 느와르 분위기 물씬 풍기는 장면들이랑 시나리오가 내 체질에 맞아서 그런 건지. 스토리, 정말 별 거 없는 줄 았았는데. 배우들의 연기력만으로 커버한 줄 알았는데.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자리에 앉아 있는 내내, 상도의 한마디만 쉴 새 없이 귓가를 맴돌았다. 아.. 인생이 와이라노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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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결단(2006)
제작사 : MK 픽처스 / 배급사 : MK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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