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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까지 했는데 지금도 이너프!” <달짝지근해: 7510> 유해진 배우
2023년 8월 22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없어요!” 욕심나는 캐릭터가 있냐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오는 명쾌한 답이다. 그간 ‘개’ ‘로봇’ ‘왕’까지 다 해봤는데 더 이상 뭘 더 욕심내겠냐고, 지금도 ‘이너프’(Enough)하다는 의미다. “배우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묻자 어떤 배우도 아닌 그냥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배우’ 유해진이면 족하단다. 소위 미남 즉 비주얼이 배우의 필수 조건으로 치부되던 시절에 연극배우로 출발해 외형보다 연기력의 강력한 힘을 몸소 실현 중인 유해진, 그가 처음 도전한 로코에서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띄운다. 젊은 층의 유입이 잘되도록, 로맨스 앞에 ‘중년’은 좀 떼어달라고! 중간 규모의 ‘허리’ 급 영화가 ‘허리한’(Hurry) 상태라고 끝까지 하이개그를 표방한 아재개그를 선보이며 관람을 당부한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여름 극장가인데 출격 소감은.

대작들 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이다. 우리 영화는 로맨스도 로맨스지만, 웃음이 관건이라 이러한 포인트가 관객에게 잘 전달될지 걱정했었다. 이번에는 유난히 긴장되기도 하고, 혹자는 지금까지 (영화를) 수십 편을 하고도 여전히 긴장되냐고 물으시는데 정말 그렇다. 다행히 재미있다는 반응이 꽤 있어서 조금 안심하고 있다.

개봉작의 홍수 속에 <달짝지근해: 7510>의 관람 포인트를 꼽는다면.

사랑도 있고 웃음도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을 맛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한다. 좀 전에 인터뷰하는데 어느 기자분이 허리급 영화가 잘 되야 한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급하다는 의미의 허리인 줄 알았다. (웃음) 정말 허리급 영화가 허리(Hurry)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이런 중간 규모의 영화가 잘 돼야 투자도 제작도 관객도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한다. 대작이나 블록버스터에 지친 분이 편하게 볼, 잔잔한 영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여름 대전의 복병이 될 수도! (웃음) 영화의 어떤 면에 끌렸나.

복통(feat 아재) 아니면 다행이겠다! 소설 ‘소나기’가 언뜻 연상됐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순수한 면이 좋았다. 상처받은 남녀의 로맨스가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했고, 이 부분이 잘 살려면 웃음 코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있더라. 약국, 자동차 극장, 세레나데 시퀀스가 특히 재미있었다.

지금 언급한 장면도 장면이지만, ‘치호’(유해진)의 ‘째려보는 것 아니에요!’ 이 부분에서 빵 터지던데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면.

원래 있던 걸 살린 부분도 있고 또 없던 부분을 추가하기도 했다. ‘일영’(김희선)과 치호에게 알게 모르게 공동의 적이 생긴 듯한 분위기로 가면 좋겠더라. 그래서 째려본다고 시비거는 남자에게 치호는 그냥 보는 거라고 거듭 강조하는 상황을 만들며 쌓아 나갔다.

치호가 일영에게 하는 아재개그들이 정말 찰진데, 이토록 잘하는 노하우가 있을까?

치호의 아재개그는 어쩔 수 없다. 타고나길 웃긴 게 아니라 학습해서 일영에게 전하는 입장이니 그렇다. 내 개그의 비결이라면… 일단 그 상황에 충실히 하려고 한다. ‘이건 되게 재미있으니까 재미있게 해야지’ 하고 작정하면 잘되지 않는다. 상황에 충실하다 보면 저절로 빠지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만의 노하우라면 노하우가 되겠다. 아, 그리고 내가 평소에 그렇게 아재개그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현장에서 우린끼린 ‘하이 개그’라고 한다!

로맨틱 코미디는 처음 아닌가. 어떻게 접근했는지

로맨스는 <럭키> 때 있었지만, 코믹 로맨스는 처음인 것 같다. 장르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지기보다 이야기가 중요하다. 이야기에 빠지다 보면 캐릭터가 그려진다. 현실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치호’가 사랑에 빠져서 설렘과 아픔을 느끼게 되는데 그가 이런 감정에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해 나갔었다. 치호라는 캐릭터에 들어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예전 생각이 나면서 ‘이런 사랑을 한 적이 있었지’ 싶더라. 지금이야 굳은살이 많이 배기고 감정도 딱딱해져서 퐁당거림은 많이 없어진 나이 아닌가. 치호와 일영이 처음으로 헤어지는 장면이 있다. 이때 치호가 인파 속으로 사라져가는 일영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이 장면을 모니터링하면서 스탭들이 전부 눈물지었었다. 형밖에 모르던 치호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귀한 사랑 아닌가. 예전 20대 시절, 첫사랑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다고 대입해 보니 진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

김희선 배우와는 첫 호흡인데, 처음부터 로코라니! 어땠나.

손 한 번 잡아보려는 순수함과 떨림, 말했듯이 어른 버전의 ‘소나기’ 같이 느껴졌으면 했고, 그렇기에 상대 배우가 매우 중요했다. 희선 씨의 성격이 좋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상대를 편하게 해줄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상대 역이다 보니 제안할 일이 많고, 어느 선까지 해야 할지 조심스러운 면이 있는데 정말 기우였다. 뭐를 이야기해도 ‘그래요!’ 하며 수긍하고 받아주는데 너무 고맙더라. 나뿐만 아니라 현장의 모든 스탭들이 느낀 점일 거다. 스탭들이 마치 ‘미어캣’처럼 희선 씨의 차가 오는 걸 기다렸었다. (웃음) 내리자마자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데 정말 에너지가 굉장했다. 또 얼마나 부지런한지, 촬영이 밤 늦게 끝나고 다음날 일찍부터 시작해도 한 번도 늦거나 한 적이 없다. 헤어나 메이크업 등 여배우는 아무래도 움직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그랬다.

로코 장인이라는 김희선 배우의 명성이 실감나던가.

정말 기가 막히더라. (웃음) 연기도 기술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기술적으로 하면 그 마음과 진심이 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진짜 그 캐릭터가 되어 상황에 빠져들려고 노력하더라. 그간 로코를 많이 한 분이라 워낙 잘하고 익숙하겠지만, 무엇보다 그 마음이 느껴져서 놀랐고 감탄했던 것 같다.

모처럼 사랑에 빠진 중년 남자를 연기해 보니 어떻든가. <전우치>의 개, <승리호>의 로봇, <올빼미>의 왕 연기와 비교한다면.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점이 있다. 우리 영화에 ‘중년의’ 사랑이라는 표현은 좀 자제해 줬으면 한다. (웃음) 중년은 맞지만, 그냥 사랑 이야기로 하자! 젊은 세대들이 보러 오지 않을 수 있어서 그렇다. 젊은 층이 움직여 줘야 영화가 좀 더 붐업되지 않겠나. 게다가 <달짝지근해: 7510>은 사랑 더하기 웃음이 무엇보다 큰 역할하니까. 개나 로봇은 뭐 잘 못해도 개나 로봇인가 보다 하는데, 게다가 CG는 내가 직접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이번 ‘치호’는 어려웠다. 우선 일영이 치호를 ‘왜’ 좋아하는지 그 질문이 나오면 안 될 것 같았다. 치호는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한편으로는 좀 부족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터무니없으면 안 되었다. 일영이 사랑할 정도의 순수함, 현실감은 떨어져도 충분히 사랑할 인물이어야 했고 그 적정선을 찾는 게 관건이었다. 한마디로 일영이 한눈에 반할 만한 순수함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핵심이었다.

이한 감독의 따뜻한 정서와 기류가 이번에도 물씬 풍기더라. 당신과 치호의 닮은 면이 있다면.

나보다 오히려 감독님이 치호와 닮은 면이 있다. 어떨 때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순수하신 분이다. 그래서 어떤 장르의 어떤 이야기이든 감독님만의 색깔과 착한 맛이 나오는 것 같다. 과자로 치면 ‘에이스’, 노래로 치면 우효 가수의 ‘민들레’ 같는 느낌이랄지. ‘민들레’ 노래는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그 가사가 너무 우리 영화와 맞아서 OST로 사용하면 안 되냐고 적극 제안 드렸는데 통과하지 못해서 아쉽다. 촬영하는 중간에 우연히 듣고 그 가사가 너무 좋아서 내내 들었던 것 같다. 치호의 감정선을 잡아가는 데 크게 도움받았다.

로맨스에 대처하는 자세, 실제로는 어떤 편인가.(웃음)

자연스러운 게 좋지만, 그렇다고 미적미적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추진하지 않는 편이다.

제목처럼 ‘달짝지근한’ 장면을 꼽는다면.

달짝지근보다 우리 영화의 색깔을 잘 표현한 장면으로 두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치호와 일영이 함께 산 커플 숟가락 중 하나만 덜렁 수저통 안에 있는 장면이다. 숟가락이 슬퍼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또 하나는 둘이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들른 카페에서 할아버지가 맥주잔을 아주 느릿느릿하게 서빙하는 장면이다. 뒷부분이 편집됐는데 원래는 치호가 가서 받아오는 장면까지였다. 이 두 장면이 특히 기억난다.

웬만한 역할은 다 섭렵한 듯한데 그럼에도 하고 싶은 역할이 있을까.

진짜로 없다. 술자리에서 지인들이 ‘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하다못해 김희선 씨와 로맨스도 하지 않았냐’고 할 만큼 충분하다. <올빼미>에서 왕을 할 때도 놀랐는데 정말 지금도 이미 ‘이너프’(Enough)하다. 나중에 어떤 역을 더 하든 보너스 같은 느낌이라는 생각이다.

이너프하다지만, 로코가 아닌 정통 멜로는 어떨까?

음, <달짝지근해: 7510> 기술 시사 때 윤제균 감독이 같이 봤었다. 나중에 ‘해진 씨, 팩트만 전달합니다’ 하며 감상평을 주셨다. 많이 웃고 세 번 울었다면서 정통 멜로를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 윤제균 감독님이 원래 눈물이 많은 분이지만, 이렇게 말씀해 주니 고맙더라. 사실 장르보다는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인지가 중요하다. 시나리오만 좋다면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지막 질문이다. ‘유해진’ 앞에 붙이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음, ‘배우’ 유해진이 좋겠다. 다른 수식어는 필요하지 않고 배우면 족하다.


사진제공. ㈜마인드마크

2023년 8월 22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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