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와 브라운관을 누비며, 활발히 활동 중인 스즈키 쿄카는 고등학생때 모델 활동을 시작, 1989년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영화 <사랑과 헤이세이의 색남(愛と平成の色男)>에 출연하면서 영화배우의 길에 들어섰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건, TV 연속극 <당신의 이름은(君の名は)>(1991)이 계기가 됐다.
그후, 영화 <119>,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ラヂオの時間)>, <39 형법 제39조(39刑法第三十九條)>, <류마의 아내와 그 남편과 애인(龍馬の妻とその夫と愛人)>으로 일본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네 차례 ‘우수주연여우상’을 수상하는 등 탄탄한 연기력을 과시해 왔다. 그녀는 얼마전 열린 제28회 일본아카데미상에선 오는 2월 25일, 국내 개봉하는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血と骨)>로, 매번 고배를 마셨던 ‘최우수주연여우상’을 거머쥐게 됐다.
사생활 노출을 꺼려온 그녀에게 있어 가장 대표적인 가십 중 하나는 아마도 츠츠미 신이치와의 교제일 듯. 사부 감독의 <포스트맨 블루스(ポストマン ブル-ス)>를 비롯, 최근 드라마 <굿럭!!(グッドラック!!)>까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본 남자 배우 중 한 명인 츠츠미 신이치이기 때문일까. 벌써 오래전 파경을 맞았지만, 스즈키 쿄카를 볼 때마다 ‘둘이 잘 됐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었다.
그런 그녀를 짧은 시간 만나봤다. <피와 뼈>로 최양일 감독과 함께 방한했던 스즈키 쿄카는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기품있고, 또, 무척 섹시한 느낌이었다. 쉽게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성격이 자연스럽게 결합돼, 보면 볼수록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그녀는 15년 이상의 관록을 새삼 상기시키는, 아름다운 배우였다.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핏빛 장미의 화려한 아름다움보단, 치유, 위로, 따뜻한 상냥함, 배려 등의 꽃말을 가진 ‘우미인초’가 왠지 떠오르는 그녀와의 만남 속으로, 지금부터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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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듣자마자 부끄럽게 웃으며) 아, 그건 과찬이다. 음, ‘배우’라는 직업은 남들보다 다양한 경험을 필요로 하는데, 배우를 하면 다른 데서 할 수 있는 경험들을 오히려 전혀 할수 없다는게 저한테는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남들은 일을 하다가 다른 직업으로 바꿀 수도 있고 해외로 유학을 갈 수도 있는데, 바쁘게 배우로 지내다 보면 전혀 그렇게 할 수 없다. 음, 그렇지만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배우’는 영화 속에서 많은 인생, 많은 인물을 경험하기 때문에 만약 그 경험들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내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 그만큼 역할에 충실하고 정열을 다한다면, 그것이 내‘피’가 되고 ‘살’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흠, 뭔가 통역에서 살짝 핀트가 나간듯,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
극악무도한 ‘김준평(기타노 다케시)’의 아내 ‘이영희’를 연기하면서, 배우라는 입장을 떠나 한 여자로서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았나? 왜 남자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등등의 갖가지 생각으로 말이다.
물론 답답하긴 했다. 하지만 한 여성으로서 자기의 의지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시대상황이었다. 음, 내가 생각하기엔 ‘이영희’가 겪었던 고생이나 아픔들이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지내왔다기 보단, 오히려 그녀가 강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 시련들을 끝까지 견디면서 살아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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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일 감독님 같은 경우,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무척 엄격하고, 큰소리로 야단도 친다는 얘길 들어서 사실 무서웠었다. 그런데 실제로 같이 작업해보니 굉장히 따뜻한 분이셨다. 주위사람들을 다 포용할 줄 아는 너그러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강인함을 가진 분이었는데, 그런 점들을 배울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기타노 다케시는 내가 어릴때부터 ‘비토 다케시’라는 코미디 배우로서 봐왔던 대스타였다. 실제로 작업해보니, 정말이지 너무나 머리가 좋은 분이었고, 성실하고, 진지한 분이었다.
사실 얼핏 생각하기엔 여배우라면 조금 망설여지는 (긴 시간의) 강간장면같은 것도 있고, 국적이 다른 여인을 연기해야 하는 등 관객들도 표면적으로 느끼는 어려움이 당신의 어려움으로 작용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한기자회견에서, 김준평 곁에서 계속 그를 바라보는 정신적인 연기가 어려웠다고 말한 게 인상적이었다. 그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감정선을 잡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특히 ‘이영희’가 나이든 후의 장면에선 실제로 몸 컨디션이 악화됐었다. 세트장에 가면 그냥 우울해 지고, 남편 ‘김준평’을 보면서 ‘아,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구나’라는 무력함같은걸 느끼면서, 너무너무 몸상태가 안좋았다.
또, 이 영화가 원작자인 양석일 작가의 실제 어머니를 모델로 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그 인물에 동화가 됐었다. 양석일 작가에게 디테일한 상황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정신적으로 피로했다. 단지 연기지만 ‘김준평’을 본다는 것, 그를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들 순 없다!’싶게 아주 극단적인 상태까지 갔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보다 유쾌한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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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역할에 몰입해야 하는데, 사실 성격탓인지 그게 잘 안된다. 그래서 역할을 맡으면 항상 ‘머리’로 먼저 생각을 하게 된다. 인물과 나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본능적으로 캐릭터에 빠지고 싶은데...(웃음) 음, 그래도 역시 중요한 건, 작품 속에서 어떻게 그 인물을 드러낼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같다. ‘나’를 드러내기보단 그 역할에 충실해야 되는, 어떤 기본을 잊어서는 안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또, 항상 작품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배우라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 <사토라레>같이 국내에 개봉한 영화들도 소수 있지만, 당신이 출연한 영화 중에 한국 관객들에게 꼬옥 추천하고 싶은 작품을 소개한다면?
음, 부산영화제때 소개됐는지 모르겠는데,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39 형법 제39조(39刑法第三十九條)>. 또 이치카와 준 감독의 <류마의 아내와 그 남편과 애인(龍馬の妻とその夫と愛人)>을 보여드리고 싶다.
요리를 무척 잘하신다고 들었다. 이번에 내한해서 먹어본 한국 음식 중에 배워보고 싶은 음식은 없나?
한국 여자분들은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감자탕 요리를 무척 배워보고 싶다. (웃음) 어제 백화점 지하 매장을 갔었는데 들깨, 고춧가루, 식재료 등을 잔뜩 샀다. 그리고 은수저가 너무 예뻐서 몇 벌 사서 선물로 주기도 했다. 일본 가서 바로 요리를 할 계획이다.
취재: 심수진 기자
사진: 이한욱
촬영: 이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