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자신을 가두려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탈주하고자 혹은 자유롭고자 쓴 그 검은 선글라스는, 외부자의 무단침입을 차단함과 동시에 그의 영화(촬영과정)만큼이나 많은 것을 미궁으로 밀어 넣는 역할 중에서도 으뜸이다.
시간이 돈인 자본주의 영토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촬영일정을 밑도 끝도 없이 확장시키는 왕가위는 투자자와 제작자의 최대의 적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영화작업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영화사에 있어 신천지를 열어제낀 황홀한 이미지와 그 안에서 흘려보내는 아찔한 무드를 길어 올리는 데 가공할 만한 감각을 그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감각을 과시한 최신버전 <2046>을 들고 부산을 찾은 왕가위 감독을 만났다.
어제 개막식에서 영화를 본 소감을 듣고 싶다.
야외 상영관에서 시사가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많이들 찾아와줘 너무 고맙고 좋았다. 하지만 야외 상영이라 각도나 사운드, 음향이 제대로 전달이 안 돼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다보니 괜시리 마음이 불안해져 자리를 일찍 떴다.
칸에 출품된 작품과 달리 이번에 부산을 찾은 <2046>은 재촬영과 재편집이 보충된 새로운 버전이다.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가?
큰 차이는 없다. 칸에 출품할 때는 시간이 촉박해 미흡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손을 좀 본 거뿐이다. 비유하자면, 칸에는 보통차림으로 간 것이고 이번엔 좀 더 공을 들여 화장도 하고 옷도 그전보다 잘 꾸미고 온 것이라 보면 된다.
그렇지는 않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다. 물론, 수리첸(공리)이나 바이 링(장쯔이) 등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챠우의 모습이 투영돼 있는 캐릭터다. <화양연화>의 장만옥의 느낌이 묻어나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다시 말해, <2046>의 여인들은 챠우의 내면을 보여주는 인물이고, 챠우의 또 다른 모습들이다.
<2046>을 보다 보면 당신의 전작들과 포개지는 장면이 적잖이 나온다. 지금까지의 작품을 정리하려는 의도인가?
<2046>은 기억에 관한 영화다. 4년 전 만났던 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그가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우리의 생각일 뿐이지 사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부분에 있어 우리는 자신이 인식하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그 무엇을 바라보려고 한다.
<2046>은 <화양연화>의 후일담으로 보인다.
처음에 생각했던 <2046>은 3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되게 간단한 구조의 영화였다. 그러나 <화양연화>를 찍고 나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2046>을 <화양연화>의 속편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두 영화는 다르다.
쉽게 말하자면, <화양연화>는 ‘사랑이야기’고, <2046>은 ‘사랑에 관한 영화’다. 같은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랑이야기는 두 연인이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거라면,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다. <2046>은 방대한 구조로 이뤄진 영화고, <화양연화>는 그 일부분일 뿐이라 보면 된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면서 내 지난 영화를 추억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나 역시 의도했던 부분이고...
과거를 주로 다뤄왔던 당신의 전작과 달리 <2046>은 미래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미래의 장면은 챠우가 쓰는 소설의 배경이다. 60년대를 살아가는 한 인물이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물론, 그 미래를 통해 그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당신은 색감이 돋보이는 황홀한 비주얼을 선보이고 있다. 어디에 중점을 두었는지 알고 싶다.
미래도시를 설계하는 데 있어 신경을 쓴 부분은 기차다. <화양연화>에서 차우는 안락한 가정에서 생활하는 정착된 모습을 보이지만 <2046>에서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돈다. 그러니까 안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꽤나 고심하며 기차를 영화에 등장시킨 것이다.
차우는 <아비정전>의 장국영이 분한 아비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 인물이다. 예를 들어 <2046>의 챠우가 머무는 호텔 이름이 오리엔탈인데 공교롭게도 그 장소는 아비가 자살을 한 호텔 이름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아비장전>의 아비가 20대라면 <2046>의 챠우는 30대다. 아비가 10년 정도 늙은 걸로 생각해 달라!(웃음)...그건 아니고, <아비정전>의 아비는 당시 젊은이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굳이 두 인물을 연결시킬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사진제공: 올댓시네마
부산= 서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