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디즈니+ <무빙>에 이어 류승범이 쿠팡플레이 <가족계획>으로 다시 시청자를 찾는다. 아내 ‘영수’(배두나)의 말이라면 껌벅 주는 아빠 ‘철희’로 사랑꾼의 면면을 보여줄 예정이다. 9년 만에 언론인터뷰에 응한 류승범을 만났다. 호기심을 좇았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가, 돌고 돌아 연기야말로 ‘자기 길’이라는 사실을, 진짜로 좋아하는 일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여기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가족 안에서 느끼는 행복이 크다 보니 어느새 결혼 장려 혹은 출산 전도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노라며, 지금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황금의 시간을 살고 있다며 웃는 그이다. 심플한 성격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류승범, 매우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는 그의 오늘은 어떨지, 귀 기울여 본다.
무려 9년 만의 인터뷰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전에 작품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내가 메인 롤이 아니라서 나서기도 애매했던 부분이 있다. 이번 <가족계획> 역시 서포트하는 역할이지만…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감이 컸던 작품이다.
그간에도 참여 배우로서 책임감은 있었을 터인데, 무언가 변한 부분이 있는 건가.
이전에는 무언가 찾아 헤매고 갈등 속에 방황하는 부분이 있었다. 저 건너편에 어떤 운명이 있지 않을지 호기심이 컸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연기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해답을 얻을 즈음, 만난 작품이 <가족계획>이라 감사한 마음이 크다.
결혼하고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다. 아버지가 된 것도 한몫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사랑하는 와이프를 만나고 아이를 낳은 건 정말 큰 터닝 포인트라 하겠다. 한데 꼭 이 요인만은 아니고 변화에는 여러 가지 영향이 있다. 나는 계속 변하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거다. 그래서인지 한결같은 사람이 부럽기도. (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새로운 나라, 새로운 환경에서 지낸 시간의 영향도 있었고 또 지난 2년은 서핑하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물을 통해 마더네이처(Motehr Nature), 여성성을 접한 영향력이 컸다. 그러다가 와이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축복으로 아이를 가지면서 인생에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동안에도 작품 제의는 꾸준히 들어온 거로 알고 있다.
한 번에 두 가지를 못 하는 성격이다. 뭐 하나에 빠지면 그 하나에 열중하다 보니, 그간에는 안타깝게도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좀 생각이 정리되면서 안정되었다. 고민 같은 것 좀 버리고 이제는 ‘집중해 보자’고 정리된 느낌이랄지. 여전히 불러줄지는 모르겠지만,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극 중 아내밖에 모르는 아빠 ‘철희’역을 맡았다. 실제로도 사랑꾼이라고. (웃음)
그래서 편하게 했다. 개인적으로 피가 튀기는 와중에 관객에게 어떠 쉼표를 줄지 하는 생각이 오히려 캐릭터적으로 도움이 된 것 같다. 좀 더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예를 들면, 아빠가 되어보니 아빠의 역할이 무엇인지 딱 알겠더라. 일단 찌그러져 있다가, 힘이 필요할 때만 힘을 써야 한다. 철희는 쓸데없이 과시하지 않고 자기가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대부분 찌그러져 있다는 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남성상이자 아버지상이었다.
여전히 녹슬지 않은 액션 실력을 예고했는데, 아직까지는 그 진가가 발휘되지 않았다.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하다. 살짝 풀어 놓는다면.
처음에는 밑밥만 깔고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포인트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베일에 싸여 있는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씩 마음을 열고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는 점이다.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말이다. 이 가족에 대해 좀 더 정보를 드리자면, 특수한 지옥 같은 세상을 탈출한 사람들이다. 엄마인 영수는 가족을 일구고 싶은 열망이 컸고, 이에 따라 그녀의 ‘가족계획’에 있어 모성은 매우 크게 힘을 발휘한다. 한마디로 <가족계획>은 가족을 이루고 싶은 영수의 가족 플랜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 구성원들이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지녔고, 하나로 융합되기 힘든 사람들인데, 외부의 적과 싸우다 보니 저절로 뭉쳐지고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다.
액션 씬 자체가 많지는 않고 강렬하게 몇 장면이 있다. 촬영하면서 순조롭게 진행되어 만족했다. 기자회견 때는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쉬움에 자랑? 아닌 자랑을 한 게 되었다. (웃음) 꽤 괜찮게 나왔거든. 액션 연기는 감정 연기와는 또 다른 신체를 쓰는 데 따른 육체노동을 한 것과 같은 희열과 뿌듯함, 성취감이 있다.
엄마 영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이들이라면, 아빠 철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아내 영수인 건가. (웃음)
그렇지, 이건 극본에서부터 아주 명확했던 지점이다. 철희의 세상에 있어서 영수는 절대적인 존재이자 모든 것이라 하겠다. 덕분에 영수라는 인물 하나만 보고 따라가면 됐기 때문에 연기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철희에게 영수는 유일무이한 모티베이션이거든. 극 중 이들이 수의사이고, 동물병원을 운영한다는 설정인데, 그러잖아도 감독님에게 물어봤었다. 진짜로 수의사인지, 그랬더니 진짜라고 해서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 열망의 연장이라 하겠다.
가족과 평범한 삶의 소중함에 대해 울림이 있었겠다.
영수에게는 가족을 이룬다는 사실이 마치 구원 같은 의미라서, 이미 가족을 구성한 입장에서 감사하고 축복을 받았다고 느꼈다. <가족계획>이 장르성이 강한 작품이라 이런 면에서 깊이 있게 들어가지는 않지만,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들을 다시 환기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이를 낳은 후, 이런 극본에 좀 더 터치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글을 읽으면서 부성과 모성애에 뭉클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할아버지(백윤식)와 철희를 통해 부성을, 영수를 통해 모성을, 그 축복의 감정이 가족을 이루고 나서 좀 더 확장된 느낌이다.
대의를 수호하는 먼 곳의 영웅이 아니라, 주변인을 지키려는 소의의 히어로라 매력적이라는 평이 많다.
그들에게 정의는 가족이 되는 것이고, 가족을 악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개념이다. 가족보호는 인간의 본성이라 이런 부분에 자연스럽게 공감되지 않을까 한다.
배두나 배우와는 첫 호흡인데, 옆에서 지켜본 그는 어떻든가.
두나 씨만의 독특한 아우라가 있어 원래 좋아했고 배우로서 존중해 왔었다. 이번에 마침 기회가 돼서 너무 좋았고 촬영하면서도 ‘역시’, ‘역시’를 연발하면서 ‘이래서 배두나 하는구나’ 싶었다. 사람 자체가 멋있다. 배우로서 어떤 찰나의 순간에는 예민하고 날카롭고,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여유가 있는 분이더라. 레디 액션 하고 슛이 들어가면 카리스마 뿜뿜이라 정말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아들과 딸을 연기한 로몬, 이수현 두 후배에게도 아빠로서 한 말씀 부탁한다.
아들 ‘지훈’(로몬)은 극 중에서도 엄마를 챙기는 착한 아들인데, 딸 ‘지우’(이수현)는, 미래의 내 딸이 저런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웃음) 실제는 굉장히 맑고 밝은 두 친구라 개인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받았다. 순수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배로서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태도나 자세를 더욱더 바르게 하게 되더라. 나를 딱 세워준다고 할지. 특히 현장에서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로몬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사람이 좋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올바르고 착하고 예의 바르고 등등 인간이 진보하는구나 싶더라.
김곡, 김선 쌍둥이 감독님이 연출을 맡았는데, 호흡은 어땠는지.
사실 쌍둥이 감독님은 처음이라 호기심이 자극된 부분이 있었다. 막상 보니 쌍둥이라도 의견과 스타일이 다르시더라. 뒤에서 두 분을 지켜보며,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미 한 번 필터링 되고 시너지를 발휘한다고 생각했다. 두 분 다 디렉팅을 따로 주기보다 지켜보는 스타일이셨다.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한 방향성을 디테일하게 주었지만, 대체로 배우한테 맡기는 편이었다. ‘편하게 하세요’ 이런 느낌이라, 정말 편하게 했었다. (웃음)
<가족계획>이 시청자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현재 가족을 일구고 그 안에서 행복하기 때문에 아는 동생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마치 출산 전도사나 결혼 장려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 젊은 친구들에게 결혼하지 않느냐고 굳이 말할 필요는 없고, 이건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이 아니라도 원가족이 있을 테니 <가족계획>을 통해 그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디즌니+ <무빙>에 이어 두 번째 OTT 작품인데 산업 환경의 변화를 체감하나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더라. 똑같은 프로세스 안에서 연기하니까 크게 체감되는 부분은 없었다.
다른 길을 탐색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데, 과거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제와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서 친구들이 잘 까먹는다고 속상해하곤 한다. 지나간 시간은 그 시간대로 좋다는 생각이고, 지금은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황금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꽃 같고 평화로운, 감사한 순간이 없었다. 지금이 제일 좋고 기대되고 그렇다.
원래부터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인가. (웃음)
성격인 것 같다. 심플한 성격에 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다. 아주 오늘을 사는 사람인 것 같다. 보통 현실적인 생각보다 추상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스피릿, 영적인 부분, 신비 이런 쪽에 관심이 많다. 신비의 세계를 하나 열어 드릴까? 예전에 발리에 머물 때였는데 그때 명상을 한 적이 있었다. 명상의 키워드는 호흡이다. 호흡을 못 하면 그러니까 숨을 못 쉬면 죽는 것 아닌가. 이 의미를 살펴보면 삶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숨을 일부러 쉬는 것이 아니라 숨 쉬어지는 것이듯이 인생 역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거다. 숨을 쉬듯이 인생 역시 살아지는 것, 이것이 인생이자 이 세상을 여는 열쇠라 하겠다.
하고 싶은 역할이나 장르가 있다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굉장히 좋아한다. 장르영화에서는 굉장히 세고 강한 얼굴을 보이지만, 섬세한 영화를 할 때는 또 그렇게 세밀할 수가 없다. 섬세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소망과 열망은 늘 있었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영화나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거든. 하지만 알다시피 배우는 선택을 받는 입장이라, 내 입맛에 맞는 캐릭터를 선택할 수 없고, 마치 카르마처럼 한 번 한 캐릭터와 유사한 캐릭터를 계속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 않았던 캐릭터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느 순간부터 남의 작품을 잘 안 보게 되더라. 보면 또 (하고 싶어서) 속상해서 그런지….(웃음)
배우로서 가장 큰 고민은 무얼까.
연기는 완성이 없고 정답이 없다. 취향에 따라 ‘좋았어, 나빴어’라는 평가가 달라지니 말이다. 평가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도 만족해야 하므로 정답이 없다는 막막함과 동시에 정답이 없다는 데서 오는 자유로움이 있다. 어떨 때는 되게 솔직하고 진실되게 연기해서 스스로 만족했지만 반응은 ‘진실성을 잘 못 느끼겠다’ 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되게 드라이하게 연기한 것 같은데 대중이 의외로 공감해주는 거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고민은 끝이 없지만, 말했듯이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자유롭기도 하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 공개를 앞두고 있다. 그 외에는 아직 정해진 작품이 없다.
사진제공. 쿠팡플레이
2024년 12월 24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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