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이 판이 그렇게 만만했냐’는 한 평론가가 쓴 영화 <웅남이>의 한 줄 평이 논란이다.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한 신박한 코미디 <웅남이>는 개그맨 박성광이 처음으로 연출한 상업영화다. 시선에 따라 본업이 아닌 부업 다시 말해 잠깐의 외도로 비출 수도 있고, 영역의 확장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웅남이>에 쏟은 박 감독의 시간과 노력, 그 열정과 애정은 ‘진심’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만듦새와 호불호에 상관없이 평가받아야 할 지점이다. 누군가의 인생영화가 될 영화를 언젠가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박성광 감독을 만났다.
개봉을 앞두고 많이 긴장될 것 같다. 기대하는 평가가 있다면.
음… 생각보다 재미있다 혹은 기대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으면 좋겠다. 출연이 아닌 만든 입장이라 더욱더 떨리는 것 같다. 예전에는 예매율만 봐도 대략 흥행 예측이 가능했다는데 요즘에는 흐름이 바뀐 듯하더라. 지금은 입소문이 중요하다고 들었다.
시사회에서 개그맨 이전에 영화감독을 먼저 꿈꿔왔다고 밝혔는데 좀 더 사연을 들려준다면.
사실은 연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고3 때 연기학원을 다녔었다.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는데 다 떨어지고, 재수할까 고민하다가 직접 연기하지 않고 남을 빛나게 해주는 작업도 좋을 것 같아 영화예술학과에 진학했다. 개그동아리를 만들어 무대 위에 올라가 공연하는데 너무 재밌더라. 이후 개그맨 공채에 합격하고, 즐겁게 개그 생활을 하던 중에도 영화 연출에 대한 미련이 마음 한편에 있었던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한 영화 잡지사 기자로부터 초단편영화제가 있으니 한번 도전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벌써 십수 년 전이다. (웃음) 그렇게 첫 영화를 만들어 부족하지만 상영하게 됐는데 사람들이 웃더라. 연기나 개그가 아닌 내가 만든 영화로 웃길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에 이후 30분짜리 단편을 만들기도 했고 꾸준하게 시나리오 작업을 이어왔다.
희극인에서 영화감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코미디언의 활동 무대가 좁아진 요즘 추세에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을까?
개그무대가 사라지기 전부터 영화를 준비해 왔기 때문에 그와는 별개의 문제다. 개그 무대가 좁아졌지만 그만큼 유튜브 등으로 활동 영역이 넓고 다양해졌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스타와 새로운 콘텐츠가 탄생하기도 했고. 만약 무대가 지속됐더라면 그 준비를 하느라 유튜브를 하지 못했을 거다. 이러한 추세의 변화는 기회이자 순리가 아닌가 한다. 물론 다시 개그무대가 생긴다면 돌아갈 거다. ‘개그맨’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개그맨으로 시작했으니 죽을 때까지도 개그맨일 거다. 이번에 영화를 만들면서도 선배나 후배, 동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지 우려가 컸다. 개그맨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언급될 터니 의도와 상관없이 내 성패에 따라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다.
그렇잖아도 (개그)업계의 반응이 궁금했다. 대선배인 심형래, 이경규 등은 나름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분 아닌가!
처음에는 자기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순서를 뺏겼다고 농담하다가, 장난처럼 (개그맨) 위상 좀 올리라고 하기도 하더라. 게다가 CJ가 배급한다니까 배 아프다는 분도 있고! (웃음) ‘꼭 잘 돼라’고 응원을 정말 많이 해줬다. 선배들이 있었기에 이런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다. 일찍이 영화에 도전한 선배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사하고 영향도 많이 받았다. 어머니가 그러는데 어릴 때 내가 <영구와 땡칠이>(1989)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그랬다는 거다. 신기했다고 하시더라. 또 경규 선배는 자기 돈 들여서 하면 안 된다는 교훈도! 하하
장편 상업영화로 데뷔하기까지 그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았을 터다.
단편을 만든 후 짠하고 상업영화로 넘어온 게 아니라 그동안 글을 썼었다. 한 편을 완성해서 제작사를 돌아다녔고 ‘오케이, 하자’는 곳도 있었는데 나중에 ‘개그맨이었어?’ 하고 엎어진 적도 있다. 그러다가 개그맨이 시나리오를 갖고 돌아다닌다는 말을 들은 한 분이 찾아와서, (같이 하기로 하고) 한 달간 수정 작업을 거쳤는데 이후 연락이 안 되다가 어느 영화제에서 만난 적도 있다. 황망한 경험이었다. 이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며 내려놓으려는 순간 지금의 제작사에서 연락이 왔다. ‘웅남이’라는 대본이 있는데 생각이 있냐고 묻더라. 읽어 보고 액션 코믹물로 하고 싶다고 하니 각색을 맡겨 주셨다. 평소 친한 박성웅 선배를 생각하면서 각색 작업했다.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하다니! 인간이 된 아기 반달가슴곰 형제라 너무 기발한 발상 아닌가.
그 설정은 원래부터 있는 부분이었다.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된 순박한 총각이 주인공이었는데 이를 변주해 누아르풍으로 갔다. 성웅 선배가 ‘이정학’ 캐릭터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다. 처음에는 비정한 빌런을 생각했는데 선배가 정학에게도 ‘웅남’ 같은 순수한 면이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 그 결과 아주 악한 캐릭터에서 지금 같은 모습으로 변모했다.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기는 하지만, (웃음) 반달가슴곰과 멧돼지 등 동물을 활용해 허를 찌른 포인트가 영화의 개성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빵 터졌던 부분이다.
그게… 개그맨은 특이한 걸 많이 생각하니 오히려 평범한 생각이 힘들 때가 있다. 약간의 동심이 있는 편이기도 하고. 사실 톤을 어떻게 잡을지, 그러니까 어디까지 가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힘을 덜고 빼고 하면서 지금의 버전이 나오기까지 한 70여 차례 수정했다.
개그맨 안일권 씨가 ‘조폭의 복장과 자세’에 대해 일장 연설하는 시퀀스는 코믹의 하이라이트라 하겠다.
원래는 좀 더 길었던 장면이다. <웅남이>를 만들면서 두 가지 편견과 싸워야 했다. 개그맨이니까 흔히 말하는 ‘쌈마이로 만들었겠지’라는 시선과 반대로 ‘개그맨이 만들었으니 겁나 재미있는 걸 기대했는데 별로 재미없네!’ 이런 두 선입견 사이의 싸움 같은 거다. 숙명 같은 거라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생각한다. 약 1시간 10분을 덜어내서 지금의 러닝타임(1시간 40분)으로 편집했는데 코믹한 부분부터 덜어낼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안 미쳐서 그런 건데 아쉽긴 하다. 개그 무대에 올리는 것 같은 마음으로 일권 선배와 둘이 만들었거든.
코미디를 덜어낸 점 외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초보라 연출력의 부족이 크게 느껴진다. 미장센, 카메라 무빙, 감정 표현 등 부족한 면 투성이고, 이게 눈에 들어오니 그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크다. 지금 다시 만든다면 좀 더 낫지 않을까!
<웅남이>가 캐스팅 맛집이더라. 박성웅, 이이경, 최민수라는 주연 배우 외에도 오달수, 염혜란, 윤제문 같은 베테랑 배우에 백지혜, 서동훈, 한다솔까지 새로운 얼굴까지 발굴했다.
평소 친분과 제작사의 섭외 등 모두가 발 벗고 나서준 덕분이다. 혜란 선배는 당시 넷플릭스 <더 글로리> 촬영으로 바쁘다고 들었지만, 한 번만 얘기해 봐 달라고 부탁해서 성공한 케이스다. 마침 잠깐 일정이 비는 등 타이밍이 좋았다. 선배가 말하길, ‘대본이 신선하고 달수 오빠와 한 번 부부로 호흡 맞추고 싶었다’고 하더라.
백지혜 배우가 연기한 웅남의 동료 경찰인 ‘나라’역은 원래부터 새로운 얼굴로 캐스팅하고 싶었다. 한데 제작사에서 그래도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진 배우가 좋다고 말리던 중 우연히 알게 됐다. 당시 사진을 먼저 받았는데 그때 헤어스타일이 엄청 짧고 강렬해서 만나보고 싶었고 다음 날 만난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했다. 서동훈 배우가 맡은 ‘성 형사’는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로 내가 투영된 인물이라는 생각으로 썼다.
캐스팅의 완결은 마지막 카메오로 출연한 정우성 배우가 아닌가 한다.
촬영 막바지에, 제작사에서 선물을 하나 주겠다고 하더라. 진작에 제안 드렸는데 답을 못 받은 상태였거든. 다른 배우를 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멀리서부터 성웅 형이 너무 해맑게 뛰어오며 ‘됐다’고 환호성을 지르는 거다. 크랭크업 전전날 해당 장면을 촬영했는데 진짜 멋있더라. 그때 우리 여자 스탭들도 웃을 줄 안다는 걸 새롭게 알았다. (정우성 배우와 함께 사진 찍으려) 마스크 벗은 모습을 처음 보기도 했고! 정우성 배우도 연출하는 터라 연출은 어떠냐고, 코미디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둥 영화에 대한 질문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개그맨으로서 코미디가 사랑받는 이유 혹은 코미디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예전에 웃음과 신파는 필수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신파는 모르겠지만, 웃음은 무조건 필수가 아닌가 한다. 이건 누아르 장르도 마찬가지다. 영화 자체가 즐거움을 얻는 콘텐츠라 장르에 상관없이 녹아든 웃음과 코믹은 영원할 것 같다. 숏폼, 미드폼 등 그 포맷은 바뀌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다면 삶이 너무 건조해지지 않을까.
장편을 끝낸 소회라고 할지 소감은. 스킬과 경험 등 많은 걸 얻었을 것 같다.
스케일이 커지니 책임감이 커지고 따라서 중압감도 커지더라.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는 내 생각대로 만들 수 있지만, 상업영화는 투자자 배급사 제작자 등 이해 관계자의 이견을 조율하고 반영해야 하지 않나.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 그러니까 이 장면이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해 납득시키는 일들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또 호흡이 긴 과정이니 초반에 힘을 다 빼면 안 되겠더라. 잘 찍고 싶은 마음에 처음에 너무 힘을 쓰다 보니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는 힘이 다 빠져 기진맥진해지더라. 선택과 집중, 즉 힘을 주고 빼고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알았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처음 만든 초단편영화는 코미디라 개그맨이 만든 영화 같다는 평이 우세했다. 이를 깨기 위해 30분짜리 단편은 내 경험을 작가의 도움을 받아 풀어내서 진지한 정극으로 만들었다. 다음에는 어떤 영화를 할지, 장르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다. 사실 코미디 영화는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대본 작업이 힘들다. 직접 연기하는 걸 전제로 글을 쓰는 건 쉬운데 이제는 배우를 설득해야 하니 그렇다. 지금 어떤 영화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스탭 바이 스탭으로 하나씩 익혀가자는 생각이다.
감독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웅남이>의 목표는 일단 개봉이었다. 장기적인 목표보다는 짧게 짧게 정하는 편이다. 말했듯 스탭 바이 스탭으로 전진하면서 사람들에게 ‘괜찮은’ 감독 혹은 누군가에게 인생영화가 될 영화를 만든 감독이 된다면 참 좋겠다.
당신의 인생 영화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웃음)
<엽기적인 그녀>, <어바웃 타임>, <살인의 추억>, <스타 이즈 본> 등등. 멜로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다음 작업 계획은 어떤가.
확실한 건 없어도 고민은 하고 있다. 미리 생각해 놓지 않으면 텀이 너무 길어지니 시놉이라도 구상 혹은 기획해 놓으려 한다. 무조건 할 거라고 말씀드릴 수 없는 게 (알다시피) 기회를 주셔야 가능한 문제 아닌가. 이번 영화를 잘 마무리하고 그간 뜸했던 예능이나 본업도 가능하면 하고, 혼자 시도할 수 있는 짧은 영상이라도 준비하려고 한다. 또 소속사도 새로 구해야 하고!
사진제공_웅남이문화산업전문회사 / CJ CGV
2023년 3월 29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