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소현세자의 죽음에 감춰진 비밀을 추적하는 팩션 사극 <올빼미>가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했다.
이번 작품의 경우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다룬 만큼 스토리 자체에 박진감이 있고 몰입도가 높다. 많은 배우 분들이 공감하실 텐데 대본이 너무 길면 읽기가 어렵다. (웃음) <올빼미>도 대본이 90 페이지 분량으로 상당히 짧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짧은 대본이 읽기에도 더 좋을뿐만 아니라 완성됐을 때 더 재밌는 영화로 나오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웃음) 결론은 우리 영화가 재밌는 영화라는 뜻이다.
코로나 기간에 촬영을 시작해 짧은 시간 내에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영화가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촬영됐는데 개인적으로도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찍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집중력이 약한 나에겐 단기간에 몰입해서 촬영을 마친 게 좋았지만, 솔직히 당시엔 힘들었다. 예를 들어 다음날 촬영에 문제가 있으면 하루 쉬어가면서 스케줄을 진행하는 게 좋은데 그런 게 불가능한 일정이었고 또 지방 촬영이 많아서 계속해서 이동해서 촬영하느라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거 같다.
‘경수’가 앓고 있는 주맹증은 낮에는 보지 못하고 밤에만 희미하게 앞이 보이는 병이다. 그간 영화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소재일뿐만 아니라 병명 자체가 생소한 병인데.
그래서 주맹증 환자들과 직접 만나 인터뷰도 하고 식사도 같이하면서 캐릭터를 연구했다. 천성이 게으른 편이라 많이 준비하지는 못 했다. (웃음)
우리 작품이 다큐멘터리가 아니지 않나. 고증을 철저히 지키는 것보다 ‘경수’가 지닌 주맹증이라는 병을 통해 사건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가 더 중요한 거 같다. 관객 분들은 이미 내가 주맹증 환자가 아니고 눈이 잘 보인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웃음) 주인공이 맹인인데 앞이 잘 보이는 사람처럼 뛰어다니는 걸 보고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시력이 완전히 소실되지 않은 맹인 분들도 많으시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봐주시면 한다. 또 리얼리티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중요한 걸 많이 놓칠 수 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란다.
극중 침술사로 나오는 만큼 침술도 직접 배웠다고.
‘영화를 사랑하는 한의사 모임’ 회원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현장에 와서 훈련을 시켜주셨고 침을 놓는 법도 알려주셨다. 두루마리 휴지에 침을 꽂으면 사람 피부에 놓는 것과 비슷하다더라. 얼마 전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을 일이 있었는데 선생님께 내가 배운 침술 얘기를 전했더니 ‘이 정도면 본인 침은 알아서 놔도 되겠다’고 대단하다고 해주시더라. (웃음)
영화가 전반적으로 텐션이 팽팽한데, 선배 침술사 ‘만식’(박명훈)과 ‘경수’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그나마 여유가 생기더라. (웃음)
이번 작품이 쉬지 않고 달려가는 영화라서 긴장을 풀 만한 구석이 없는데 명훈 선배님이 나올 때만큼은 긴장을 풀고 보게 되더라. 선배님과 내가 같이 나오는 장면을 보면 내가 평소보다 눈을 크게 뜨고 있는데도 티가 전혀 안 나더라. (웃음) 배우는 눈으로 많은 것을 표현해야 하고 나도 그러려고 애쓰는 편인데 눈이 작아서 어렵다. 그런데 명훈 선배님은 눈이 엄청 크셔서 그 안에 정말 많은 것을 담고 계신다. (웃음)
원손(이주원), 동생 ‘경재’(김도원)을 비롯해 아역 배우들과도 많은 장면에서 호흡을 맞췄는데.
<올빼미> 속 아역 배우들 연기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내가 그 나이 땐 그저 말썽꾸러기였는데. (웃음) 그 중에서도 김도원 배우는 본인 어머니한테 ‘현장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었다’고 얘기했다더라. 하하! (웃음) 그 나이에 그런 말을 한다는 게 황당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 친구의 앞날이 궁금해졌다. 정작 쑥스러워서 나한테 직접 말은 못 하고 엄마한테 털어놓은 게 귀엽기도 하고. (웃음) 이주원 배우는 꼭 나 어렸을 때를 보는 것 같더라. 까불다가도 슛이 들어가면 싹 돌변해서 연기한다. 요즘엔 참 재능 있는 어린 친구들이 많은 거 같다. (웃음)
<택시운전사>(2017), <봉오동 전투>(2019)에 이어 유해진 배우와는 벌써 세 번째 공연이다. 최무성 배우와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만난 바 있고.
해진 선배님이 이번 작품을 하면서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선배 얘기니까 무조건 들으라는 식이 아니라, 조언해주고 나서도 ‘잘 하는 애한테 괜한 소리 한 거 같다’며 미안해 하실 때가 많다. (웃음) 하지만 내 입장에선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얘기해주는 선배가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좋아하는 배우들과 계속해서 같은 작품에 나온다는 건 정말 영광이다. 어떤 작품이든, 그 작품에출연하든 안 하든 새로운 대본을 받을 땐 항상 설렌다. 마치 택배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느낌이다. (웃음) 게다가 같이 캐스팅된 배우들이 유해진, 최무성 선배님처럼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배우들이면 ‘내가 여기 껴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 울컥할 때가 있다.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조감독님, 촬영감독님, 미술감독님은 <침묵>, <독전>, <올빼미>, <외계+인>까지 내 작품을 거의 다 함께 해왔다. 우리나라 최고의 제작진과 계속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참 감격스럽다.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사실 연극 영화과를 졸업하고 나서 나는 내가 이 정도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 그냥 적당히 벌면서 살 거라고 생각했다. (웃음) 지금도 나는 내 인기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감사하게 여기고 조심하고 있다.
소소한 미래를 꿈꿨는데 주연급 탑스타로 자리하게 된 지금, 벅차는 걸 넘어 부담스러운 순간은 없나.
부담보다는 아직도 쑥스러울 때가 많다. 친한 사람들에게는 안 그러지만 원래 눈치도 보고 낯을 좀 가리는 편이다. 단체 사진 찍을 때 가운데 서거나 남들보다 튀는 게 그렇게 쑥스러울 수 없다. (웃음) 나는 부담을 가지면 더 못해서 너무 부담 갖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책임감은 늘 막중하게 느끼고 있다. 내가 불만을 가지거나 스트레스 받으면 겉으로 드러날 거고, 그러면 스텝들에게도 영향이 가지 않겠나. (웃음)
그렇게 수줍음이 많으면 본인 연기를 큰 스크린에서 보는 것도 부끄럽지 않나. (웃음)
원래 나는 부끄러워서 내 작품을 잘 못 보는 편인데 <올빼미>는 재밌게 봤다. (웃음) 내용을 다 알고 봐도 몰입이 되더라. 음악이 덧입혀지고 편집이 더해진 완성본을 보니 내 상상보다 훨씬 더 근사했고, 연기할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이번 작품이 개봉하면서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다. 연기 칭찬은 언제 들어도 좋겠지만, 또 어떤 칭찬을 들을 때 기쁜가.
보통 변했다는 말을 안 좋게 받아들이는데 나는 반대다. 한결 같은 것도 중요하고 또 필요할 때가 있지만 변하는 상황에 맞춰서 나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데뷔하고 나서 변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런 말을 하신 분들이 ‘변하지 않고 한결 같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주목을 받으면 변하는 게 맞다. 안 그러면 병도 나고 인간 관계도 안 좋아진다’고 하시더라. (웃음) 그 말들이 내겐 큰 힘이 됐다. 좋은 의미의 변화였고, 응원이 담긴 말들이었다.
대신 열심히 하려는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 <머니 게임>을 촬영하고 있는데 감독님이 오케이하고도 내가 다시 찍으면 안 되겠냐고 물으니 감독님, 선배님들이 굉장히 좋아하시더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다, 얼마든지 다시 하게 해주겠다’ 이런 분위기였다. (웃음) 데뷔한 지 꽤 됐지만 여전히 ‘재능 있다, 잘 한다, 열심히 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최근 들어 한국 배우들의 글로벌 진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해외 작품에 대한 욕심은 없을까.
지금으로선 내가 먼저 찾아가지 않겠지만, 기회가 온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는 타란티노 감독과 꼭 작업해보고 싶다. (웃음) 타란티노 감독이 동양 문화를 좋아하고 그걸 작품 안에 잘 녹여내는데 차기작에서 동양인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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