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모처럼 만나는 수작’, ‘흥미로운 팩션 스릴러’ 등 23일 개봉한 영화 <올빼미>가 입소문 속에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영화는 소현세자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주맹증’이라는 색다른 소재로 상상력을 입힌 목격자 스릴러다. 처음으로 왕 역할에 도전한 유해진은 의심과 불신의 아이콘 같은 인조로, 류준열은 낮에는 안 보이고 밤에만 보이는 맹인 침술사로 분해 연기에 대한 호평을 끌어냈다. <왕의 남자> 조연출 이후 17년 만에 첫 장편을 선보이는 안태진 감독을 만났다. <빽 투 더 퓨처>를 관람한 1987년 7월 17일 오후 3시 40분,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감독! 데뷔하기까지 영화 그 자체가 뚝심이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공전의 히트작 <왕의 남자>(2005)의 조감독 이후 데뷔하기까지 무려 17년이! 그간 어떻게 지냈나.
비슷한 매일매일이었다. 밥 먹고 시나리오 쓰고, 어느 정도 완성되면 제작을 시도하다가 캐스팅에서 좌절하고, 캐스팅까지 완료했으면 또 투자에서 좌절하는 등… 하하! 긴 준비의 시간을 보내면서 느낀 건 투자사 제작사 감독 모두 작가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신인 시나리오 작가의 페이(고료)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20년간 신인 작가와 신인 감독만 그대로더라. 결국 드라마와 OTT 쪽으로 작가들이 빠져나가, 신인 감독이 직접 글을 쓸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작품을 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다. 신인이라 조합에도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모이기가 힘들고 따라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그간 쓴 시나리오만 해도 여러 편이겠다.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를 포함하면 십여 편 된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와 남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교집합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따로 놀았다면 점점 비등해지면서 교차점, 즉 교집합이 커졌다. 지금은 SF 스릴러의 시놉시스를 쓰는 중이다.
<올빼미>는 지난해 제작 결정부터 촬영, 이번 개봉까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 시기가 늦춰진 영화가 아닌, 프레쉬(fresh)한 영화다.
지난해 9월에 촬영을 시작해서 12월에 마무리했다. 캐스팅이 완료된 후부터는 쉼 없이 달려갔던 것 같다. 찍는 건가 싶었는데 어느새 개봉이라, 아직도 얼떨떨한 느낌이 있다. 어려운 시기에 새롭게 영화를 찍을 수 있어서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유해진과 류준열이라는 믿음직한 배우와 김태경 촬영감독, 심현섭 의상감독, 이하준 미술감독 등 업계에서 내로라 하는 제작진을 만났다. 현장을 이끌면서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나.
사실 첫 연출이라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한마디로 나만 잘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배우들은 알아서 잘하고, 베테랑 스탭들이라 현장에 가면 준비가 다 돼 있어서 (나는) 선택만 하면 됐다. 오래 준비해 온 그간의 시간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훌륭한 작품과 배우, 제작진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행운을 맞은 것 같다. 감사하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올빼미>의 각본과 디테일한 부분을 완성했다고. 과연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
각본도 그렇지만 크랭크업 이틀 전까지 디테일한 부분을 수정했다. 배우와 스탭들이 가만히 두지 않더라. 농담이고 (웃음) 제대로 가고 있는지, 또 허점은 없는지 궁금하고 불안한 마음에 배우와 스탭들의 의견을 끌어내려고 애썼던 것 같다. 듣고 순간 욱하기도 했지만, 돌아서면 바로 고마운 마음으로 바뀌더라. (웃음) 마지막 수정을 끝내고는 ‘이제 안 고쳐도 된다!’라고 소리쳤다.
사실 인조는 능력과 인성 면에서 많은 비난을 받는 왕이기도 하고, 그간 여러 작품에서 재현돼 왔다. 인조역의 캐스팅이 관건이었을 텐데, 처음엔 유해진 배우를? 이런 생각이 들더라. 사실 왕 캐릭터와 선뜻 매칭이 안 되지 않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선입견 때문에 캐스팅한 이유도 있다. 우선 기존의 ‘왕’ 이미지, 그러니까 뭔가 품위 있고 정제된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인 약점 다시 말해 불안과 의심으로 뭉친 왕을 고려했다. 평소 유해진 선배가 지닌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과 상반되는 면모라 (염두에 둔 면이) 더욱 부각될 거로 생각했다.
제안받은 유해진 배우는 ‘왜 나야?’ 이렇게 반문했다고. 어떻게 설득했나.
‘유해진만이 할 수 있는 왕이 있다’ 딱 이 한 줄로 설득은 끝났다. <왕의 남자>(유해진은 ‘육갑’으로 출연) 때 알았고, 이후 한 10년 만에 만났는데 인조가 앉아 있는 거다! 그간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 인사도 없이 이미 인조에 빙의되셨더라. (웃음) 불안과 의심에 가득 찬, 극 중 인조의 눈빛이었다.
초반에는 인조가 아들을 위하는 정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라, 새로운 해석인가 하고 흥미롭게 지켜봤다. 한데 소현세자(김성철)의 독살을 들킨 어의 ‘이형익’(최무성)에게 ‘칠칠치 못하게!’라고 한심해하면서 본모습을 드러내는데… 개인적으로 뽑는 명대사다. 유해진 배우가 인조 캐릭터를 다듬어가는데 여러 아이디어를 냈다고.
아마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유해진 선배가 만든 대사로 기억한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대사 등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 제안을 많이 주셨다. 현장에서는 리허설하면서 바꾼 부분도 있다. 원체 준비를 철저하게 해오는 분이라 여러 버전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그중에서 선택만 하면 될 정도였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댄 팩션 사극이다. 팩트와 픽션 사이의 균형이 관건이었겠다.
<올빼미>의 시작은 실록에 적힌, ‘온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왔다…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는 문구였다. 독살에 대한 의심이 얼마나 강했으면 이러한 글을 실록에 썼을까. 이 호기심을 따라가면서 만들었다. 자료를 조사해 보니, 청에서 변화의 물결을 목도하고 돌아온 소현세자가 신세대라면 인조는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구세대라 하겠더라. 신구 세대가 충돌하는 시대적인 전환점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렇다고 역사를 교훈 삼아 현재에 소구될 어떤 메시지를 많이 보이기보다 장르 영화로 다가갔으면 했다. 스릴러로서 맹인 침술사 ‘천경수’(류준열)가 세자의 독살을 목격한 후 하룻밤 동안 어떻게 난관을 헤쳐 나가고 진실을 밝힐지 장르적으로 담으려 했다. 이러한 장르적 속성을 관객이 충분히 즐긴 후,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 작은 질문이나 생각 하나 정도를 가지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만들었다.
낮에는 보이지 않고 밤에만 보인다는 ‘주맹증’은 팩션을 완성하는 요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시각증인데 어떻게 접근했나.
원안을 받고 가장 끌렸던 부분이 ‘주맹증’이었다. 남들은 못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목격자 스릴러에 어울리겠더라. 우선 실재하는 시각증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진짜 있더라. 그다음에는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 그러니까 불빛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점 등을 알아보려면 직접 만나야 했다. 수소문해서 주맹증을 지닌 분을 만나 궁금했던 부분을 해소할 수 있었다. 보이는 정도가 다 다르고, 많이 보이는 분은 밤에 뛰어다니기도 한다고 해서 자신감을 갖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시각장애인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그분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아예 보이지 않는 전맹은 오히려 소수이고, 개인에 따라 그 보이는 정도가 각기 다르다. 이번 기회에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류준열 배우는 주맹증을 지닌 분의 눈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과연 경수의 눈에서 이런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더라. 멍한 듯한 낮의 눈동자와 빛나는 밤의 눈동자, 차이가 있는데 CG 같은 후반 작업을 거친 건가.
CG 나 어떤 처리도 전혀 하지 않았다. 카메라 앵글을 미묘하게 바꾸면 시선도 달라 보인다. 보일 때와 안 보일 때, 앵글을 계속 바꾸면서 촬영했다. 알다시피 김태성 촬영감독님이 워낙 베테랑이시다.
유해진과 류준열, 두 배우와 작업하면서 느낀 점은.
해진 선배는 워낙 베테랑이라 뭐… 이번에는 캐릭터상 외로움을 작정하고 오신 듯 초반에는 특히 말씀을 거의 안 하셨다. 그런 와중에도 필요하면 보조출연자들 앞에 가서 찍을 장면에 대해 설명해주곤 했다. 그분들은 시나리오를 읽지 않고 오는 경우가 많아서, 이러이러한 맥락이라고 알려주는 거지. 류준열 배우는 주인공으로서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배우였다. 연기뿐만 아니라 현장을 이끌고 조·단역까지 다 챙겼다.
개인적인 질문이다. 어떻게 영화에 입문하게 됐나.
영화 <빽 투 더 퓨쳐> 개봉일 1987년 7월 17일 그리고 3시 40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에서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잠시 회사에 다녔는데 역시 영화가 하고 싶더라. 조금 늦은 30대 초중반에 <달마야, 서울 가자>(2004)의 연출부로 들어갔고, 이후에는 <왕의 남자> 조연출을 거쳤다. 뭐, 긴 시간에 비해 필모가 거의 없다고 봐야지. (웃음) 나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라 그 자체가 뚝심이었는데, 묵묵히 기다려준 가족들에게 고맙다. 앞으로는 2년에 한 번은 꼭 작품을 하고 싶다. 비단 영화만이 아니라 영상 콘텐츠라면 모두 열려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안태진은 어떤 사람인가.
영화 한 편을 만들었고, 더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다.
사진제공. NEW
2022년 12월 2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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