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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할 때 유일하게 과감해진다” <고속도로 가족> 정일우 배우
2022년 11월 7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국민 시트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크게 사랑받은 <거침없이 하이킥>(2006)의 터프한 둘째로 눈도장 찍으며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오른 배우 정일우가 13년 만에 영화 <고속도로 가족>으로 관객을 찾는다. 2018년 (대체)군복무를 마친 후 연극, 영화, 드라마, 예능 등 장르를 넘나들며 거의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서른여섯이 됐다는 정일우. 정신이 아픈 아빠 ‘기우’로 분해 뛰고 넘어지고 구르는 등 몸 사리지 않는 연기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영화와 연기를 향한 긍정적인 반응에 지금까지 이어온 나름의 도전을 이제는 조금 알아봐 주는 것 같다는 그를 만났다. 타고난 끼가 많지 않기에, 그만큼 캐릭터를 파고들고 철저하게 준비한다면서 좀 더 다양한 역을 소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시나리오가 저에게 와서 행운이었어요. 배우라면 누구나 욕심날 캐릭터지만, 잘못 하면 두 번 다시 영화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있었어요. (웃음) 그래서 더욱 파고들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OK 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는 정일우, 정작 수락한 후 이상문 감독을 만나기까지 일주일은 뒤늦은 걱정과 후회가 오갔다고. 이후 이 감독과 만나 ‘기우’라는 캐릭터를 치열하게 다듬어 갔다.

그가 말하는 ‘치열함’이란 뭘까. “연기를 하다 보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타협하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치열함이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기우’라는 캐릭터를 끝까지 탐색해 들어갔던 것 같아요.”

<고속도로 가족>은 어린 남매 ‘은희’(서이수)와 ‘택이’(박다온)를 데리고 고속도로 휴게소를 집 삼아 유랑하는 ‘기우’(정일우)와 ‘지숙’(김슬기) 부부를 주축으로 한 휴먼 드라마. 휴게소 행인들에게 빌린 2만 원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궁핍한 일상에서도 행복한 가족이, ‘영선’(라미란)을 두 번째 만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는 이야기다.

“촬영 들어가기 두 달 전부터 (김) 슬기 배우와 함께 아이들을 만나 과자 먹고 얘기하고 놀면서 친해졌어요.” 극 중 보이는 자연스러운 가족 케미의 비결이다. 충분한 스킨십과 정서적인 교감! 막내 박다온은 정말 놀이하듯 촬영에 임했다고.

“기우는 정신이 아픈 사람이에요. 가족이 곧 친구이자 전부인 그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세상 행복해하고, 굉장히 밝아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공격당한다고 생각하면, 배를 긁는 등 이상 징후를 보여요. ‘영선’으로 인해 가족이 이별하면서 더욱더 이런 모습이 드러나요. 이때 갑작스럽게 보이지 않게끔 서서히 캐릭터를 디벨롭해 나갔어요.” 조울증이나 우울증의 증상, 분노와 발작의 발현 등 병증에 대한 자료와 인터뷰 등을 많이 찾아봤다는 정일우다.

“처음 설정은 아이들과 같이 돈을 빌리는 거로 돼 있었는데, 이건 돈벌이에 (아이들을) 이용하는 걸로 보이잖아요. 그래서 돈을 빌리고 있는 기우에게 아이들이 나중에 합류하는 식으로 변화를 줬습니다.” 뭔가 척하거나 납득되지 않는 연기는 힘들다는 그. 아이를 이용하는 듯한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한다.

재벌 2세, 꽃미남 등 본의 아니게 화려한 캐릭터를 주로 맡아온 정일우에게 이번 노숙자로 변모한 자기 모습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나름대로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긴 머리로 가려고 머리를 붙여 보기도 했는데 결국 제 머리를 좀 길게, 수염도 자르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러운 스타일로 가져갔어요. 실제 휴게소에서 촬영했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던 걸요.“(웃음) 영화는 강원도 팜파스, 예산, 서천 휴게소 등지에서 촬영했다. 촬영 중 뜻밖의 지인을 만났다고. 바로 넷플릭스 영화 <서울대작전>을 찍고 있던 배우 유아인이다. ‘너 여기서 뭐 하냐’고 물었다는 어릴 때 같은 소속사였던 형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는 정일우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별로 개의치 않아 해요. 약간 변태인가요. (웃음) 그 정도 해야 ‘기우’의 극한의 감정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진흙을 바르는 신은 9분 정도의 롱테이크로 촬영했어요.” 기우의 아픈 정신이 발현되면서부터 그는 뛰고, 넘어지고, 구르고, 엎어지고 등 온몸을 던져 연기했다. 특히, 산에서 홀로 진흙을 얼굴에 바르는 장면은 극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데, 롱테이크 촬영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기우의 키워드는 허기라고 생각했어요. 보면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취식은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닌 자기의 공허함과 아픔을 채우는 행위이기도 해요.” 마트털이부터 떡볶이 포장마차 등에서 모 배우 못지않은 처절한 먹방의 현장을 펼친 그이다.

<고속도로 가족>을 총 세 번 봤다는 정일우는 매번 느낌이 달랐고, 많이 울었다고. “처음 볼 때는 아무래도 ‘기우’에 집중해 봤는데,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딸 ‘은희’에 몰입해서 봤어요. (아이들에게) 상처 준 것 같아 미안해, 정말 엄청 울었네요. 세 번 보니 모든 캐릭터가 이해되고, 참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던 걸요.” (웃음) <고속도로 가족>이 과잉 감정으로 흐르며 울음을 쥐어짜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차분한 표면 아래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내 ‘지숙’이 기우를 향해 ‘오빠만 없으면 우리 가족은 안전해’라고 말하는 장면도 그렇다.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이고, 지숙이나 기우에게도 중요한 신이에요. 감정이 가는 대로, 지숙이 주는 대로 받아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아내 지숙의 말에 충격받았지만,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인정하고 떠났던 기우는 병증이 또 발현되면서 다시 가족을 찾아간다. 반가움과 설렘, 기쁨, 충격과 분노, 그리고 좌절까지 정일우는 기우의 낙폭 큰 감정의 스펙트럼을 소화해 냈다.

“그간에 쌓아온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고, 이런 배역을 연기한다면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래서 끝까지 캐릭터를 끌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이런 마음이 장면 장면에 녹아 있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출연한 영화의 연기 호평에 답한다.

“아직 가족들이 영화를 보진 않았어요. 우리 가족은 너무 바빠서 같이 밥 먹을 시간도 거의 없고, 모두 O형이라 모여도 서로 자기 이야기하기 바쁘지만요. 솔직하고 객관적인 감상을 들려줘서 도움이 돼요. 특히 아버지는 제가 나온 작품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보셨을 정도로 응원해 주세요.” 일본 팬 미팅 일정으로 개봉 날인 2일에는 국내에 없다는 정일우, 일본에서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한다.

19세 때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출연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무명 시절 없이 라이징스타로 떠올라 이후 쭉 꽃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정일우지만, 적잖은 시간 나름의 속앓이도 겪었다고 한다. “20대 때는 나름의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좀 더 아프고 상처받았어야 했나 싶어요. 더욱더 단단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연기와 캐릭터로 풀어보고 싶은 갈망도 있고요.”

“좋아하지 않으면 때려 죽어도 못하는 성격이에요. 연기를 너무 사랑하고, 이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해요. 지금은 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게 아직 다음 작품을 결정하지 못했거든요. 빨리하고 싶어요.” 어느덧 30대 중반 정일우는 자칭 “끼가 많지 않은 배우”다. 그래서 더욱더 캐릭터를 분석하고 파고들어가 철저히 준비한단다.

평소 수준급의 요리와 섬세한 팬서비스 자랑하는 그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11월 말에 온 가족이 모여 200포기의 대규모 김장을 할 예정이라는 그에게 정일우는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저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평소 관찰을 많이 하는 편인데 저를 관찰해 보면 어릴 때부터 겁과 조심성이 많았어요. 과감해지는 유일한 순간이 연기할 때예요.”


사진제공. 9아토엔터테인먼트, 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2022년 11월 7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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