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제47회 토론토영화제 미드나잇 매드니스 부문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영화에 대한 예우를 갖춘다고 엄숙하게 보는 분위기라면 해외는 관람 문화가 다르더라. 고함을 지르거나 중간에 일어나서 박수를 치기도 한다. 그런 부분이 색다르면서도 좋았다.
수위가 상상 이상으로 높더라. 시나리오만 봤을 때 이렇게 높은 수위로 구현될 걸 예상했나.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사실 수위에 대해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중요한 건 액션 스타일이 지금껏 봐왔던 작품들과 다르다는 거였다. 전에 없던 액션 스타일을 시도하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도전을 좋아하는 편인가.
항상 새로운 걸 하려고 한다. 모든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시도에 늘 열려 있는 편이다. 캐릭터나 장르, 내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놓지 않는다. 배우로서 영역을 넓혀 나가는 게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다룰 수 있는 무기가 많아야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거 같다. (웃음)
극중 말수 없는 범죄자 ‘도일’을 연기하는데 극 중반까지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더라.
그건 감독님이 일부러 의도하신 바다. ‘도일’이 후반부에 큰 임팩트를 주려면 전반부에 존재감이 덜해야 할 거 같았고 감독님의 뜻도 그랬다. 배우는 감독의 의견을 따라야하니까 대사 톤까지 감독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따랐다. 사실 ‘도일’ 캐릭터의 존재감이 약하기 때문에 연기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대사가 없어서 편하겠다 싶었는데 전혀 아니더라. (웃음)
대사가 많지 않아서일까. 그간 맡아왔던 배역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는 인상은 아니었다.
장르 자체는 내가 안 해본 장르이긴 한데 솔직히 ‘도일’을 통해 연기 변신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 사실 ‘도일’보다 다른 캐릭터들이 더 강렬하고 파격적이다. ‘도일’은 기존에 내가 하던 캐릭터와 많이 동떨어져 있진 않다. 다만 그만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매력이 있었고, 오히려 강렬한 인물들 사이에서 더 독보적인 느낌일 거 같았다.
김홍선 감독이 어떤 디렉션을 줬나.
맨몸 무술, 카포에라, 총기 액션 등 액션에도 여러 형태가 있지 않나. 감독님은 리얼한 느낌의 액션을 원하셨다. 짜여진 느낌을 없애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다. 일부러 액션 스쿨도 다니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감독님께서 대사 톤까지 세밀하게 지정해주셨다. 어떤 작품에선 자유롭게, 편하게 연기하면서 더 좋은 장면을 뽑아내기도 하지만 <늑대사냥>은 김홍선 감독님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작품이니까 감독님의 디렉션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배우 입장에선 연기하다 보면 본인 연기만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감독님은 전체 그림을 보지 않나. 감독님께 많은 조언을 받았고 연기하면서 도움이 많이 됐다.
김홍선 감독이 프리퀄과 시퀄 각본을 집필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작품이 흥행해야 속편 제작이 가능해질 텐데.
물론 <늑대사냥>이 흥행에 성공해야 속편이 나오겠지만 프리퀄, 시퀄을 떠나 이 영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는 작품이다. 국내에선 생소한 액션 스타일이고 장르인 만큼 특별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우리 영화를 체험해봤으면 좋겠다.
데뷔 과정이 독특하지 않나. 강도를 잡아서 뉴스에 출연한 게 배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교회를 다니니까 기본적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한다. 가족 대대로 이어진 모태신앙이라 더 신실한 거 같다. (웃음) 도덕성과 신앙이 일치한다고 할 수 없지만 열심히 신앙을 가지고 살다 보면 나쁜 짓을 덜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강도를 잡은 건 나대는 성격 탓도 있는 것 같다. (웃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많이 차분해졌다. 여전히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지만 현명하게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한 데뷔 과정 덕에 바른 청년 이미지가 강한 거 같다. 학창 시절 시를 써서 문학상을 탔다는 이력 때문인지 문학 청년의 이미지도 있다. (웃음)
문학 청년이라고 하면 차분하고 섬세한 성격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 진짜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웃음)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사교성이 좋다. 남들 시선을 잘 의식하지 않고 단순한 편인 거 같기도 하다. 단순하게 살아야 덜 피곤하더라. 그래서 대중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좋은 이미지로 봐준다면 나쁠 건 없지만 거기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산다. 이미지 관리도 따로 하지 않는다. 대중교통도 자주 이용하고, 잘 꾸미고 다니지 않으니까 오히려 주변에서 좀 관리하라고 할 정도다. (웃음)
지난해 드라마 <조선구마사>에 관한 역사 왜곡 논란이 있었는데.
<조선구마사>를 계기로 많이 반성했다. 지금보다 더 경험이 부족한 신인이었고 비교적 일찍 좋은 가르침을 얻어서 오히려 감사하다. 그 일을 통해 생각이나 태도가 더 성숙해졌고 단단해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서 당황했지만, 그를 통해 가르침을 얻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조선구마사> 이후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다가 최근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늑대사냥> 이후로도 드라마 <사막의 왕>,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내 남자는 큐피드> 등이 공개를 앞두고 있는데.
연기라는 일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들더라. 요즘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시간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게 많다. 운동도 해야 하고 옷 수선도 맡겨야 한다. (웃음)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복싱이나 클라이밍에도 관심이 많다.
배우로서 고민이 있다면.
고민을 별로 하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일해야 정신 건강에 좋더라. (웃음) 물론 나 나름대로 고민이 많이 있지만, 다른 사람에 비하면 적은 거 같다. 내 미래, 내 비전, 앞으로 다가올 것들이 고민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거 같지 않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뿐이다.
장점이 있다면 자기 객관화가 잘 된다는 거? (웃음) 나는 약점이 많고 부족한 점도 많다. 키가 엄청 큰 것도 아니고 외적으로 눈에 띄는 지점도 딱히 없다. 그러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묵묵하게 열심히, 성실한 거 하나는 자신 있다. (웃음) 감독님들도 그 부분을 좋게 봐주시는 거 같다. 방향만 옳다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남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 스스로 내 성장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다. 느리지만 꾸준히, 계속 그렇게만 성장하면 좋겠다.
사진제공_TCO더콘텐츠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