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해당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야차>에 이어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로 연이어 관객과 만나게 됐다. 제작은 2017년에 끝났지만 5년 만에 개봉하게 됐는데.
<야차> 때는 좀 대놓고 ‘나 매력 있어!’ 하는 캐릭터 같아서 하면서도 상당히 부담스럽더라. (웃음)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런 부담이 덜했다. 캐릭터 개개인의 매력보다는 어우러짐, 배우 간의 호흡이 더 중요해서 그런 거 같다.
사실 5년 전 촬영을 마치고 그 사이에 한 번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어떤 작품이든 간에 이상하게도 언론 시사 때 다른 분들과 다 같이 보고 싶더라. (웃음) 영화를 보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부모 입장이 아닌 문소리 씨, 천우희 씨한테 이입이 되더라. 답답하고 속상하고 아파하면서 봤다. 만듦새를 떠나 영화가 다루는 사건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났지만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 않나 싶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는 게 참 마음이 아프다.
메가폰을 잡은 김지훈 감독과는 10여년 전 <타워>(2012)에서 만난 바 있다.
김지운 감독과는 <타워>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만남을 이어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학교 후배라더라. (웃음) 작품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원작 연극은 못 봤지만 제목이 강렬해서 관심이 갔다. 시나리오 작업이 순탄치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던 차에 김경미 작가가 합류했고 작업이 빠르게 진행됐다. 그 때 나에게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 시나리오가 너무 강렬했다. <타워>와는 다른 느낌이었고 호기심이 생겼다
독특하게도 가해자 부모의 시선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당신도 학생인 자녀를 두고 있는데, 연기하면서 어땠나.
내가 맡은 ‘호창’ 역은 학폭 가해 학생의 아버지 역할이다. 특별히 ‘만약에 나라면?’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를 대입하지 않고 최대한 시나리오에, 그 상황에만 충실하려고 애썼다. 영화의 주가 되는 문제(상황)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지라 나와 내 아이를 이입하면 괜히 더 어려워질 거 같았다. 복잡함을 덜기 위해 오로지 ‘강호창’에만 집중했다. 관객이 ‘한결’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러한 아들을 변호해야 하는 ‘호창’의 심경에 집중하길 바랐다.
가해자에서 피해자, 또다시 가해자의 부모로 굉장히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 같다.
‘호창’의 상황과 심리를 연기를 통해 명확하게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그러한 것들을 관객의 판단에 맡기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괴물, 악마가 되어가는 부모를 고발하는 영화다. 이런 일을 당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들은 자신이 정의로운 선택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다. 나 또한 이기적인 마음으론 이런 상황이 내게 안 닥쳤으면 싶지만, 정작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정말 무서울 거다. 머리로는 옳은 판단을 내리겠지만 실제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지점이 가장 공포스럽다.
현장에서 대사를 대폭 수정한 경우도 있었다고.
아들을 최후 변론하는 장면이었는데 촬영 막바지에 촬영했다. 내(‘강호창’)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감독님에겐 대사를 직접 써보겠다고 이야기했다. 짧은 몇 줄의 글로 재판장을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혼자 대사를 쓰기 시작했다. 재판장에게 진심으로 호소하고 그 진심이 닿길 바랐다.
주변에는 일부러 대사를 알리지 않았다. 진솔한 반응이 궁금했다. 그래서 리허설도 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변호사 ‘강호창’에서 아버지 ‘강호창’으로 바뀌는 마음이 전달됐으면 했다. 그런 마음을 담아 배우 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연기했는데, 그분이 나한테 조금씩 넘어오는 게 느껴져서 ‘됐다!’ 싶었다. (웃음) 끝나고 술 한 잔 하는데 솔직히 나한테 설득 당했다고 하더라.
엔딩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더라.
상당히 긴 장면이었다. 주저 앉고, 또 다시 힘내서 걸어가면서, 울면서 미안하다고 외치면서 언덕 길을 올라갔다. 그때까지는 ‘강호창’의 마음도 혼란스러웠던 거 같다. 언덕에 올라가 호수를 보면서 ‘호창’은 진실을 묻을지 말지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자식을 지키는 쪽으로 선택을 내린다. 그 순간 ‘강호창’은 악마가 된 거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해석하고 촬영에 임했다.
아들 ‘강한결’ 역으로 나온 성유빈 배우와는 벌써 세 번째 공연이다.
유빈이가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때도 사람 자체가 묵직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린 데도 과묵하고, 생각도 많은 거 같더라. 나이 답지 않게 강직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성유빈이라는 배우, 그리고 그가 맡은 배역을 더 믿게 되는 게 있는 거 같다. 덕분에 여러 정황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굳게 믿는 아버지 역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작품을 하면서 오히려 내가 더 도움 많이 받았다. (웃음) 이 작품이 끝나고 바로 <생일>(2019)을 같이 했는데, 힘든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열심히 하더라. 거기서 도전 정신이 보였다고 할까. 이 배우가 어떻게 성장할지 궁금하다.
문소리 배우와도 <박하사탕>(2000), <오아시스>(2002), <스파이>(2013) 등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번엔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로 만났는데.
문소리 씨와는 원래 친했다. 예전엔 촬영 중에 밥도 같이 먹고 술 한잔 하면서 함께 이야기할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할 땐 둘이 밥 한 번 먹지 않았다. 문소리 씨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 같다. 자식을 잃은 아픔을 가슴에 머금고 있으려는 노력처럼 보였다. 당시엔 그 모습을 지켜줘야 할 것 같아서 감히 말도 잘 못 붙이겠더라. (웃음) 간단한 대화 외에 사적인 얘기는 많이 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준비 과정이 화면에도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천우희 배우는 캐스팅을 위해 직접 나섰다고 들었다.
원래는 아이들의 임시 담임인 ‘정욱’(천우희)이 남자 설정이었다. 그런데 ‘이 배역을 여성으로 가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캐스팅 후보 중에 천우희 씨가 있었다. 보자마자 천우희 씨가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정교사가 아닌 보조 교사, 학생과 친구 같은 선생님, 거기에 내면에 단단한 심지가 있는 느낌? 그런데 천우희 씨가 캐스팅을 한 차례 고사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한 번 매달려보자, 부탁해보자 싶어 연락을 드렸다. 고맙게도 마음을 바꿔줘서 함께하게 됐다.
함께 작업해보니 어떻던가.
여리고 착하면서도 단단, 아니 딴딴한 배우다. (웃음) 예전에 나는 현장에서 굉장히 예민한 배우였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걷어내고 편안하게 하려고 한다. 천우희 씨 덕분이다. <우상>(2019) 때 천우희 씨가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웃으려고 하더라. 안 힘드냐고 물어봤더니 ‘힘들어하면 뭐가 나아지겠어요? 그냥 웃어야죠’라고 했는데 그 대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웃음) 그 정도 경지까진 못 올라가더라도 ‘힘들 땐 헛웃음이라도 웃자’는 마인드가 생겼다.
후배 배우들과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는데, 그들의 발전이 눈에 보이던가.
이 판에서 선후배가 어딨나. 그냥 다 동료지. (웃음) 그들의 어제와 오늘을 내가 어떻게 평가하겠나. 나 발전하기도 바쁘다. (웃음)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학교폭력이 적나라하게 그려지는 만큼 자녀와 함께 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이걸 과연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냐 마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이와 같이 보는 걸 추천한다. 영화가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지만 분명 시사할 점이 있다고 본다. 아이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촬영 후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나.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와 교감하는 과정, 또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외에는 영화를 찍으면서 내 시선이나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거 같다. (웃음) 뉴스를 보면 학교폭력 사건들이 꾸준히 언급된다. 최근 들어 강도가 세지면 세졌지 더 약해지지는 않는 거 같다. 그런 걸 보면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진 않겠지만 계속 건드려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사진 제공_㈜마인드 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