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오감자극 방탈출 게임’, <귀문>을 한 줄로 표현해 달라는 우문에 심덕근 감독이 내놓은 현답이다. 머리를 써서 이야기를 따라가고 미스터리를 추리하는 재미와, 시각 청각 촉각을 자극하는 공포가 만나기 때문이라고. 심 감독의 소개대로 <귀문>은 폐쇄된 수련원을 방문한 심령연구소장 ‘도진’과 세 명의 대학생이 ‘귀문’을 벗어나려고 헤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공포 상황을 다룬다. 과연 그들은 탈출했을까? 2D, ScreenX, 4DX, 4DXScreen 네 버전에 따라 차별화된 뉘앙스와 공포를 체험할 수 있다.
<귀문>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했다. 축하한다. 영화의 어떤 점에 끌렸나.
공포영화가 첫 장편이 될 줄은 몰랐다. (웃음) 범죄오락물 시나리오를 쓰던 중 <귀문> 시나리오의 모니터링을 부탁받았는데 읽어보니 끝까지 몰아붙이는 힘이 있었다. ‘귀문’이라는 독특한 시공간에 대한 설정이 흥미로웠고 비주얼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다. 연출에 욕심이 나서 맡게 됐다.
처음 도전하는 공포인 데다 2D와 SceenX와 4DX 등 특별관 포맷을 동시에 기획하고 제작한 첫 작품이다. 더불어 한국영화 최초로 8K Full 촬영을 시도했다. 여러모로 ‘처음’이라 의미가 큰 작품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컸다. 모니터 하나만 보는 것도 벅찬데 윙 스크린도 같이 체크해야 하는 데다, 윙 스크린에 연출적인 의도를 어떻게 심을지 고민이었다. 2D가 센터 스크린용으로 한 개의 콘티를 본다면, ScreenX는 양쪽 윙이 포함된 3면의 콘티를 동시에 봐야하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다행히 나희석 촬영감독님이 ScreenX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서 프리단계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 1회차 촬영은 정말 정신이 없었고 끝나자마자 문제점에 대해 논의를 한 후 2회차에 들어가니 이후부터는 상대적으로 수월해지더라. 또, 오윤동 총괄을 중심으로 한 CJ 4DPlex 팀이 촬영 내내 머물며 기술적으로 조언해줬고, 이렇게 영화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완성해 나갔다.
김강우 배우가 ‘귀문’을 열고 과거로 돌아가 지박령(원혼)을 해방시키려는 심령연구소장 ‘도진’으로 분해 역시 ‘처음’으로 공포 영화에 도전한다. (웃음) 또 ‘도진’ 외에 귀문을 찾은 세 대학생을 연기한 김소혜, 이정형, 홍진기 배우의 호흡이 좋더라.
(김) 강우 선배는 염두에 뒀던 차라 제작사에서 캐스팅 이야기를 하길래 옳다구나 싶었다. 소혜 배우는 내가 먼저 제안했고 고맙게도 흔쾌히 수락해줬다. 극 중 ‘혜영’은 일행 중 가장 겁이 없고 용감하게 친구들을 챙기는 인물이다. 당찬 모습을 소혜 배우가 하면 어떨지 기대됐다. 정형, 진기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했는데 세 배우에게 촬영 전에 친해지면 좋겠다고 부탁했었다. 그래서 촬영 전부터 미리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 거로 알고 있다. 덕분에 현장에서도 정말 케미가 좋았고, 화면을 통해서도 드러난 것 같아 (아주) 만족한다.
|
촬영하면서 주안점은.
폐쇄된 수련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배경인지라 답답하거나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썼다. 천장을 뚫어 그 위에 카메라를 달아 부감(하이 앵글)을 만들고 이와 상반되는 양각(로우 앵글) 등 단조롭지 않게 보여주도록 다양한 앵글로 촬영했다. 또 도진과 세 친구의 시점에 따라 핸드헬드 속도와 카메라에 담기는 인물의 크기에도 차이를 뒀다.
인물에 따라 조명도 달리했다고
공포영화의 특성상 공간 노출이 많으면 호기심을 떨어뜨릴 수 있어 최소한의 불빛을 콘셉트로 캠코더와 후레쉬 불빛을 메인 조명으로 가져갔다. ‘도진’의 경우 손전등과 그의 몸에 부착한 라이트로 인물을 밝히고 주변은 어둡게 하는 대비가 강한 빛을 사용했다면, 세 친구는 인물 외에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난반사 같은 부드러운 조명을 사용했다. 영화를 잘 보면 인물 및 공간의 크기, 핸드헬드 속도, 조명 등 시점(도진과 세 친구)에 따른 차이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좁혀지는데 이는 영화 후반부의 반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포천에 있는 실제 폐건물에서 촬영했다고 들었다. 공간 활용과 동선 디자인에 고민이 컸을 것 같다. 특히 고려한 점은. 또 때때로 호실의 번호를 부각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보자마자 이곳이다 싶었다. 고딕 양식풍의 성 같은 느낌도 나고 극 중 폐쇄된 수련원이라는 느낌과 매우 잘 어울렸다. 동선은 최대한 한 방향으로 이동하도록 하되 인물에 따라 그 방향을 반대로 했다. 가령 도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였다면, 이후 세 친구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호수가 주는 의미는 극 중 시공간의 뒤틀림이 있기에 이에 대한 약간의 힌트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방임에도 들어가는 인물에 따라 다른 공포 상황과 사건이 펼쳐지는 거지.
영화 속 인물들이 굉장히 추워 보이더라. 실제로도 매우 추운 날씨라 고생했다고 들었다.
한달 동안 촬영했는데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외부보다 내부가 더 추웠다는 거! 폐건물이라 건물 자체의 냉기가 강한 데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난방을 할 수 없었거든. 보면 알겠지만, 극 중 인물들이 봄 가을 옷차림을 하고 있지 않나. 그 안에 옷을 껴입는 것도 한계가 있어 배우들이 정말 고생했다. 처음에는 실내라 입김이 안 나오면 CG로 만들어야 할지 고려했는데 막상 촬영해 보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배우들이 고생한 덕분에 겨울의 차가움과 폐건물이 내뿜는 스산한 분위기가 잘 담긴 것 같다.
지박령 등 여러 원혼이 등장한다. 비주얼적으로 고려한 부분은.
서양의 좀비 같은 모습은 처음부터 배제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양적인 느낌으로 가려 한 것은 아니다.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지박령은 잿빛 피부, 검은 눈알, 생기 없는 표정을 기본으로 무언가로부터 탈출하고자 발악한 나머지 손톱 끝이 다 갈라지고 검은색을 띠고 있다. 원혼에 따라 저마다의 사연을 부여하고 이에 맞춰 세팅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관객이 쉽게 예측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놀라게 하느냐였다. 영혼 중에는 독특한 캐릭터가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누군지 알겠다! 또 단서를 숨겨 놔 퍼즐을 맞추는 듯한 재미가 있을 거라고 예고했다. (웃음) 힌트를 준다면.
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좀 전에 이야기한 방의 번호도 그중 하나다. 또 세 친구의 캠코더 촬영 기록과 도진의 사무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 등이 시간과 관련한 힌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도진’이 들고 다니는 시계 바늘의 움직임도 빼놓을 수 없다. 시계가 클리셰같이 익숙할 수도 있지만, 관객이 별도의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느끼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장치라고 할 수 있다.
2D와 특별관 포맷, 버전에 따라 결말의 뉘앙스가 다르다는데, 서로 다른 버전으로 본 후 갑론을박이 나올 수도 있겠다.
좀 기대하고 있는 지점이다. 끝까지 밀어붙인 후 결말에 이르러서는 ‘어’, ‘어?’ 하고 앞을 되새기는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극장을 나서면서 과연 끝인가, 시작인가 등 관객들이 서로 왈가왈부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 게임처럼 멀티 엔딩 구조는 아니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관객에게 여지를 남겨 놓은 거지. 2D 버전은 <귀문>의 본체라 영화의 의도를 고스란히 반영했다면, 특별관 포맷은 좀 더 편하게 즐겼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잘 보면 시계의 사용 방식도 약간 차이가 있는 게 버전에 따라 바늘의 움직임이 다르다.
네 가지 버전을 모두 관람했을 텐데, 딱 한 버전을 추천한다면? (웃음)
고민 좀 해보자. 음… 4DXScreen을 추천한다. 이유는 기술 시사할 때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와 효과인데도 모션체어의 움직임에 따라 세 번 정도 깜짝 놀랐었다. (만든) 내가 이 정도이니, 관객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귀문>을 한 줄로 소개한다면?
엇! 정말 어렵다. 음… ‘<귀문>은 오감자극 방탈출 게임’, 머리를 써서 이야기를 따라가고 미스터리를 추리하는 재미와, 시각 청각 촉각을 자극하는 공포가 만나는 방탈출 게임이 아닐까 한다.(웃음)
<귀문>을 완성한 소감이나 느낀 점이 있다면.
처음이라 멋도 모르고 덤볐고 너무 재밌고 즐거워 첫 촬영 때도 떨린다는 느낌은 없었다. 후반작업 하면서는 매 순간 신기해하며 많은 걸 배웠는데 막상 개봉을 앞두니 그동안 평온한 마음이 다 무너졌는지 이렇게 떨릴 수가 없다. 그만큼 흥분되고 설렌다. 전 세계 최초 2D와 특별관 포맷을 동시 제작한 작품인 만큼 앞으로 다시는 달 수 없는 타이틀 아닌가. 물론 선택권이 있고 기회가 된다면 공포영화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 이번에 공포 장르의 매력을 새삼 알게 됐다. 영화적 체험을 극대화해 심장박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르가 아닌가 한다. 좀 더 놀라게 할 자신이 생기기도. (웃음)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이연걸과 영화를 찍고 싶어서다. 어렸을 때 성룡과 이연걸이 출연한 영화에 심취했었다. 두 배우의 작품을 보며 느낀 희열과 재미를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다. 내 손으로 만든 영화를 통해서 말이지. 이연걸 배우가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어떻게 CG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꼭 성사시키고 싶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일은.
이 길로 들어선 지 16년 거의 17년 만에 첫 장편을 내놨다. 개봉을 준비하는 요즘이 즐겁고 또 다음 작품을 위해 글을 쓰는 순간, 이제야 하고 싶은 걸 하게 됐다는 생각에 행복하다.
사진제공. 영화인
2021년 8월 26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