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콜>을 통해 여성 캐릭터도 충분히 하드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사이코패스나 연쇄살인마가 여성 캐릭터, 여배우도 가능하다는 걸 표현하려 했다. 여배우의 폭발적인 모습을 담고 싶었다. 의도 대로 전종서를 ‘역대급 빌런’ 반열에 올려놓은 이충현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해당 인터뷰는 <콜>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콜>이 공개된 후 반응이 올라오고 있다. 의외의 반응과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여러모로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다. 생각보다 재미있게 봐주신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은 ‘주인공이 너무 답답하다’는 거였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관객이 ‘영숙’(전종서)의 정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보니 ‘서연’(박신혜)이 그와 친해지고 도와주는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나 보더라. ‘나쁜 애에게 왜 잘해주지!’ 이런 심정인 것 같다. (앞날을 모르는) 서연 입장에선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말이지. (웃음)
만들면서 관객의 느낌이나 감상을 염두에 둔 점이 있다면. 즉 영화를 본 후 어떤 느낌을 받았으면 했나.
호러,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에 중점을 뒀고 그 쾌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관객이 감정적으로 서연 캐릭터에 동화했으면 했다. 서연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자신의 집에 살았던 과거의 인물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된다. 그것에서 오는 공포감이나 스릴을 서연 입장이 돼 직접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면 했고 그렇게 유도했다. 영화 외적으로는 여성 캐릭터도 충분히 하드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간 사이코패스나 잔혹한 연쇄살인마 등은 주로 남성 캐릭터가 많아 남배우가 담당해 왔는데 <콜>을 통해 여배우의 폭발적인 모습을 보이려 했다.
<더 콜러>(2011)가 원작이다. 원작에서 끌린 점은. 또 어떤 부분을 더 부각하고자 했나.
사실 타임슬립물 자체가 새롭다든가 신선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현시점에서 어필한 만한 무기라고 할지 매력이라고 할지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다. 한데 <더 콜러>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보통은 타입슬립한 두 인물이 협력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인데 원작은 상대를 죽이는 상황이거든. 서로가 충돌하면서 서스펜스가 형성되는데 그 점이 매력적이었다. 다만 원작이 그 측면을 부각하지 못한 인상이라 그 점을 살리려 했다. 원작은 ‘콜러’ 즉 <콜>의 영숙이 전화를 할 뿐 모습을 드러내진 않아 캐릭터가 약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를 카메라에 드러나게 하면서 인물 간의 대결 구도를 강화했다.
폭발적인 여성 캐릭터의 구현이라는 의도가 제대로 성공한 것 같다. (웃음) 영화 공개 후 ‘영숙’이 역대급 빌런이라는 평가다. 인물이 지닌 색감의 콘셉트를 레드로 잡아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가 본성을 각성 혹은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점차 붉은색의 비중이 커진다. 진득하게 흐르는 피는 물론이고 가발, 딸기, 소화기 등이 그렇다.
핏물도 있다.(웃음) 빨간색이 지닌 자극성 혹은 훅 튀는 강렬한 인상이 영숙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90년대 감성, 흔히 레트로라고 표현하는 데 그때가 지금보다 원색을 더 많이 사용했어서 시대적인 감성과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시대감성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숙이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팬이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기자 주: 이충현 감독은 90년생으로 ‘서연’을 연기한 박신혜 배우와 동갑임)
그가 데뷔했을 땐 너무 어려서 인기를 체감하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울트라맨이야’로 컴백하면서 제대로 알게 됐고, 예전 노래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음악이 너무 좋아 개인적으로도 팬이고 영숙이라는 캐릭터의 일면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빨간색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서태지가 지닌 저항성과 파격성, 펑키함과 노랫 가사 등이 영숙의 상황과 어울렸다. 90년대 문화의 아이콘이라 바로 떠올랐고, 고민 없이 선택했다.
서연-영숙, 즉 박신혜-전종서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 캐스팅 순서 등 관련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박신혜 배우를 오래전부터 봐오면서 정말 함께하고 싶어, 시나리오 단계부터 염두에 뒀었다. 제안을 드릴 때가 마침 드라마를 연이어 촬영 중인 상황이었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좀 쉬고 싶다고 거절해 실망하기도. 시나리오를 마무리할 때 즈음 <버닝>이 개봉했다. 영화를 보고 종서 배우가 지닌 미스터리함과 예측불허함이 영숙과 닮았다고 느껴 제안하니 시나리오가 재미있다면서 흔쾌히 수락해줬다. 이후 다시 한번 신혜 배우에게 부탁했다. 그의 작품을 지켜보며 감정 표현에 탁월하다고 생각했거든. 서연이 감정의 낙폭이 큰 데다 리액션이 많은 역이라 꼭 그가 해줬으면 했다. 다행히 두 번째엔 OK 해줬다.
박신혜 배우는 그간 로맨스 드라마에서 강세를 보였었다. 두 배우에게 어떤 얼굴을 끌어내고 싶었나.
신혜 배우가 워낙 일찍부터 활동한 데다 히트작도 많다. 그를 보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매우 좋은 눈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기존과 전혀 다른 장르라면 그 눈이 또 다른 모습으로 발현될 것 같았다. <콜>을 통해 신혜 배우의 변신을 보여주고 싶었고 마침 그도 다양한 역할에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잘 맞았다. 종서 배우는 <버닝>이 데뷔작이라 신혜 배우만큼 레퍼런스가 많지 않았다. 정확한 논리보다 직감적으로 접근했다. 사실 촬영 전에는 어떤 모습이 나올지 예상이 잘 안 됐는데 막상 들어가니 틀이 없는 가운데 너무 자유롭게 연기하더라. 내가 뭔가를 끌어내기보다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배우를 따라간 편이었다. 여러 면을 보이면 그중 내가 선택하는 방식이랄까. 가령 그가 다섯 번 혹은 열 번 테이크를 간다고 하면 매번 다르다. 결국 내 선택의 문제로 귀결됐다. (웃음)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이 여럿 있고, (악령이나 귀신 등의) 호러가 아닌데도 상당히 오싹했다. 개인적으로 터널 장면, 서연과 아버지(박호산)가 차를 타고 가다 터널을 지나면서 아버지가 사라지는 장면이 제일 무서웠다. 나만의 컷을 꼽는다면.
아버지가 사라지는 터널 시퀀스는 나도 좋아하는 장면이다. 신혜 배우가 상황을 너무 잘 표현했다. 감정을 크게 증폭해 관객에게까지 전이한다. CG와 비용, 음악, 편집 등 여러모로 공을 들인 시퀀스이기도 하다. 후반 작업하면서 애정이 깊어진 장면이 있는데 초반부에 서연-영숙이 힘을 합해 아버지를 살리는 모습이 몽타주로 펼쳐지는 시퀀스다. 그때만큼은 우정이 있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장면이라 더 애정이 간다. 우리 영화 중 몇 안 되는 훈훈한 장면이기도 하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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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시나리오부터 완성까지 얼마나 걸렸나. 또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고 넷플릭스에 공개했는데 그 과정을 간략히 알려 준다면.
시나리오 작업까지 하면 한 3년 정도 걸렸다. 3개월 프리프로덕션에 실제 촬영한 기간은 3개월 정도다. 후반작업에 시간이 걸려 개봉이 늦어졌고 마침 코로나 시기와 맞물렸다. 넷플릭스로 넘어가는 과정에 내가 직접적으로 무언가 손을 걷어붙여 나섰다기보다 간접적으로 여러 상황을 전해 듣는 형편이었다. 올해 3월에 개봉을 준비하며, 당시만 해도 코로나가 이렇게 길게 갈지 몰랐으니 조금만 기다려 보자는 의견이었는데 밀리고 밀려 결국 지금까지 왔다. 더 미뤄봤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다. 어떤 경로 또 어떤 방식으로 선보이든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반면 넷플릭스 공개라 좋은 점도 있을 것인데 어떤가.
많은 인력과 에너지, 시간과 자본 등이 투입한 작업물이라 대중 앞에 공개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OTT플랫폼 공개 방식이 생각보다 많은 분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본다는 것을 알게 됐다. OTT 공개는 일단 콘텐츠 접근성이 좋고, 해외 시청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콘텐츠 감상에 있어 국경을 없애 버린다. 아쉬운 점은 시청 환경이다. 음향, 영상 등 극장만큼 훌륭한 기기를 가정에서 구비하긴 힘들고, 또 처음부터 극장용으로 세팅해 제작했으니 영화를 오롯이 감상하려면 극장 관람이 필수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OTT플랫폼에 퀄리티가 높은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사운드 장비 등 기술적인 면에 점차 관심도가 커지고, 그러면 좀 더 (기기나 감상 시스템이) 대중화되지 않을까 한다.
단편 <몸 값>(2015)으로 주목받은 후 첫 상업 장편 영화 <콜>을 완성했다. 장편 작업 전후 영화에 대한 생각과 태도에 있어 변화가 있다면.
창작자의 입장에선 각본을 구상하고 짜는 등 아이디어 내는 점에서는 장, 단편의 차이가 크지는 않다. 단편이 러닝타임이 짧다고 해서 단순히 장편의 짧은 버전은 아니다. 문학으로 치자면 단편이 시라면 장편은 소설이라는 생각이다. 일하는 환경과 방식에 있어서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장편 작업은 시스템이 매우 잘 구축돼 있어 효율적이나 한편으로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다시 말해 ‘해보고 안되면 말지’가 안 된다. 작업 시간 준수가 정착돼 확실하고 구체적인 그림과 완벽한 준비가 필수다. 현장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장편 작업에 투입돼 나름 빨리 적응한 듯한데, 해보니 영화의 후반작업을 해봤는지 안 해봤는지에 큰 차이가 있더라. 단편이나 독립영화의 경우 대체로 편집 등 후반작업에 많은 공을 들이지 못하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성 감독은 편집, 색보정, 믹싱, 사운드 등 후반작업까지 다 계산해 촬영에 임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몸 값>과 <콜> 모두 스릴러 장르다. 선호하거나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스릴러를 좋아하지만 앞으로 스릴러만 하겠다는 건 아니다. 이제 시작하는 입장이라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고 싶다. 언젠가 음악 영화를 꼭 했으면 좋겠다.
영화에 입문한 계기 혹은 이유가 궁금하다. (웃음)
고등학교 때 처음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 뮤지컬 공연을 본 후 무대에 올라 예술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막상 입학하고 나니 뭘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러다가 선배들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영화를 찍는데 저절로 끌리더라. 이야기를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작업이 재미있는 데다 주변에서도 잘한다고 평가해줬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 작업 중 가장 흥미로운 단계가 시나리오 쓰는 단계다. 이야기를 짜는 작업도 재미있지만, 이를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아주 궁금하고 흥미롭다. (웃음)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준비 중인 게 있긴 하다. <콜>과는 전혀 다른 스릴러가 될 것 같다. 독특한 형태와 포맷을 가진 기존에 보지 못했던 스릴러다. 아직 초기 단계로 (조율이) 오고 가는 상황이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원체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잠자고 영화 보고 그런 시간이 참 좋았는데 영화가 일이 돼 버리니 언젠가부터 ‘저렇게 만들었구나’ 하면서 보게 되더라. 분석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요즘엔 영화보다 해외 스포츠 특히 축구를 자주 본다. 정해진 결말이 아닌 예측불가함이 좋고 단순하게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어 더 좋다.
사진제공_넷플릭스
2020년 12월 17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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